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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ong Dec 22. 2023

스리랑카에 사는 어른의
크리스마스 소원

Ppaarami’s Diary(20)

12월 10일


  스리랑카에서 즐기는 것 중 하나가 날씨 구경이다. 스리랑카의 날씨는 금쪽이 같다. 지랄 맞다. 날씨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한 것이 아니다. 나는 스리랑카의 날씨가 싫지 않다. 말 그대로 지랄 맞다는 것이다. 

  지금은 오후 4시이고 밖은 아직 환한데 폭우에 천둥 번개 콜라보가 상당히 딥하다. 밝은 하늘에 벼락이 내리 꽂힌다. 빗방울은 주먹만 하다. 이 난리통에 새는 유유히 난다. 이런 광경을 어떻게 구경하지 않을 수 있나.

  구름이 오지고 지리게 피어오르는 날도 있다. 해가 무지하게 이글거리는 날도 있다. 그냥저냥 날씨다운 날씨일 때는 말고, 뭐가 됐든 쎈 날에는 베란다 창 앞에 앉아 바깥을 구경한다. 이게 나의 브라운관이고 스크린이다. 우기가 되니 날씨는 퍼포먼스에 스펙터클을 더 한다. 3미터는 되는 코코넛 나무가 부러질 듯 휘청거리고 번쩍 번쩍 버번쩍 리드미컬하게 번개가 치고 벼락이 섬광으로 화답한다.  비가 한참 동안 퍼붓는 날에는 제법 쌀쌀해서 긴팔 카디건을 꺼내 입는다. 남한 면적보다도 작은 조그만 섬나라에서 무슨 날씨가 이리도 현란한지, 구경 한 번 하고 나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하늘에서 번개가 치기 시작하면 자연에 대한 경외심에 입을 벌리고 하던 일을 멈추어 서게 되지만, 조금 지나면 하나 둘 아는 얼굴들이 마음에 떠오른다. 동료 단원들은 무사히 집에 있을지, 침수나 단전의 피해는 없을는지 궁금해진다. 한국에 있는 지인들도 생각난다. 한국의 눈 오던 날, 비 오던 날이 생각난다. 그리고 이어서 아주 자연스럽게 

라면이 땡긴다.


  마침 오늘은 일요일이고 한가로운 오후이며 출출하고, 밥통에 찬밥이 반공기쯤 있다.

그런데 집에 라면이 없다.........

스리랑카에서 신라면 가격은 한 봉지에 4천 원~5천 원 정도다. 한국보다 가격이 3배쯤 비싸서 그렇지, 짜파게티와 불닭볶음면, 사발면 등등 다양한 라면을 살 수 있다. 그러나 게으르고 가난한 나는 라면을 구비하지  못했다. 오늘은 꼭 라면을 사겠다고 다짐하고 하나마트(롤롬보에 있는 한국 식료품 가게)나 잘란카(콜롬보에 있는 일본 식료품 거게)에 갔다가도 가격을 보면 망설이게 된다. 한국에서는 라면을 잘 먹지 않았었는데, 스리랑카에서 굳이 이 돈을 주고 라면을 사서 먹어야 하나 싶다. 게다가 가게에 가는 때는 대부분 비가 오지 않는 낮시간이라서 라면이 땡기지 않는다. 라면을 들었다 내려놨다는 서너 번 반복하다가 그냥 돌아서기 일쑤다. 할인할 때 사겠다면서.


  가끔 하나마트에서 라면을 할인 판매한다. 나는 짜파게티 1팩을 싸게 사고 싶다. 이번 크리스마스이브는 일요일이다. 일요일에는 아무래도 짜파게티가 제격이다. 그래서 짜파게티를 싸게 사고 싶다는 나의 소원이 크리스마스에는 이루어질 것 같다.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비싸게라도 사 먹어야지. 연말연시이니까. 요즘은 매일 비가 오니까.                        


스리랑카의 일반식. 스트링아퍼와 커리, 롤스, 과일과 차. 맛은 좋은데 아무래도 한국의 뜨끈한 맛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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