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paarami’s Diary(37)
12월 1일
스리랑카에 온 이후로 내내 평안했는데, 요즘 가슴이 철렁하는 사고가 자꾸 일어난다. 얼마 전에는 정전으로 마룻바닥을 망가뜨렸다. 내가 사는 집에는 작은 드럼세탁기가 있다. 주말 아침마다 빨래를 하는데, 그날 역시 그랬다. 한참 딴짓을 하다 세탁기가 멈추어 있길래 세탁이 끝난 줄 알고 문을였었다. 그 안에 가득 차 있던 물이 마룻바닥으로 쏟아져 나왔다. 곧바로 닦아냈는데도 마루가 울었다. 이음새가 들떴다. 등에 식은땀이 났다.
오늘은 집 열쇠를 잃어버렸다. 픽미(우리나라의 카카오택시와 비슷한 차량 연결 서비스)로 툭툭을 부르고 쓰레기를 정리하고 있는데 예상보다 툭툭이 일찍 도착해서 나는 허둥댔다. 급하게 쓰레기를 챙겨서 집을 나섰다. 쓰레기장에 들러 쓰레기를 내던지고 툭툭에 올라탔다. 목적지에 도착해 요금을 지불하고 내려서 사람을 만났다. 마실 것을 사고 돈을 내려는데 항상 지갑 안에 있던 열쇠가 없었다. 집주인이 잃어버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것이 기억나면서 뒷골이 당겼다. 만난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문은 잠겨있으니 틀림없이 집에서 가지고 나온 것이다. 쓰레기와 함께 던져버렸나 싶어서 쓰레기장을 뒤졌지만 열쇠는 없었다. 툭툭에 흘린 게 아니라면 더 이상 찾을 방법이 없었다. 툭툭기사를 찾아야 한다. 픽미 앱 어디를 뒤져도 기사의 전화번호는 없다.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어서 기사를 잦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상담사는 기사의 개인번호는 자기들도 모른다며 끊어버렸다. 열쇠가 없으면 집 안으로 들어갈 방법이 없다. 엊그제 현관 천장에 붙어있던 작은 도마뱀이 생각났다 그 동물의 싱할라 이름은 후나이고, 저녁에 후나가 울면 나쁜 일이 생긴다는 속설이 있다. 나이 드신 분들 중에는 후나가 울면 외출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내가 그날밤 후나의 울음소리를 들었던가. 별별생각을 다 하면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카페로 돌아갔다.
그 사람 앞에서 울상을 하고 호소했다. 그가 다시 픽미 핫라인에 전화를 걸었다. 싱할라어로 한참을 이야기하더니 기사의 번호를 알아내고, 기사와 통화도 하더니 여기서 기다리면 기사가 올 거라고 말해 주었다. 기사가 나를 찾아다녔다고도 했다. 뒷좌석에 떨어져 있던 내 열쇠를 발견하고선 나를 태운 곳으로도 가고, 나를 내려준 곳으로도 갔지만 나를 찾을 수 없어서 본인도 난감하던 참이었다고. 기사가 지금은 승객을 태우고 멀리 가는 중이라 당장은 올 수 없지만 오늘 안에 가져다준다고 했다.
웰라워 혼다이
다행이라는 뜻의 싱할라어다. 이렇게 또 한 마디를 배웠다.
이제 기사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오늘따라 가방에 있어야 하는 것들이 없다.
언제나 갖고 다니던 보조배터리가 없다. 휴대폰 배터리는 30%만 남아있다. 늘 가방에 넣고 다니던 낙서를 끄적일 노트도 오늘따라 없다. 읽을 책도 없다. 기사가 언제 올지 알 수 없다. 밤이 늦어서야 올지도 모른다.
일단 밥을 먹고서 마음을 다독인다.
어떻게 매일 좋기만 하겠어. 지난 5개월 동안 이상하리만치 별일 없이 잘 지냈지 뭐. 그래도 좋은 기사를 만나서 열쇠를 찾게 됐잖아.
혼자 잘 다독였는지, 지금은 기사에게 사례금을 얼마를 주면 좋을지를 고민하고 있다. 부디 휴대폰이 꺼지기 전에 와주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