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언트 말 듣지 마세요.

클라이언트 말 '만' 듣지 마세요.

by 비버랩 Beaver Lab

시공은 초반에 나온 시안대로 진행되기 어렵다. 첫 시안은 클라이언트가 말한 느낌을 토대로 디자인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디자이너의 영감이 고춧가루 마냥 팍팍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1차 시안을 바탕으로 클라이언트와 소통을 통해 '이 부분은 수정하고, 이 부분은 제외하고…'와 같은 수정 과정을 거쳐 클라이언트와 원하는 방향성으로 가는 것이 일반적인 흐름이다. 대표님의 말씀을 듣기 전까지는 그렇게만 생각했다.


"클라이언트의 방향성에 맞추는 것도 좋지만, 디자이너로서 공간을 어떻게 해야 더 효율적이고 예쁘게 만들어낼 수 있는지 생각하고 제안하는 것도 중요하다."


초보 디자이너로서 '클라이언트 말을 100% 수용해야지!'라는 생각에 몰두해 있던 나의 허를 찌르는 말이었다. 듣고 보니 그랬다. 클라이언트의 니즈를 파악하고 그에 맞춰 공간을 기획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된 이상 니즈에 맞춘 새로운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 또한 우리의 일이라는 말이 내겐 참 와닿았던 것 같다.


호텔 프로젝트 때도 그렇게 진행했다. 발단은 클라이언트 측에서 중정을 넣고 싶다는 것이었다. 중정이란 건물 안이나 안채와 바깥채 사이의 마당이라는 뜻으로 쉽게 말해 공간 중앙이 동그랗게 뚫려 외부로 구분되면 중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cf94d0298127eaf8809906c23df667be.jpg 중정의 예시 이미지.

중정을 넣으려면 공간이 수직으로 뚫릴 수 있게 전 층의 중정 공간을 따로 빼야 하는데, 이 위치를 어디로 할 것인가부터가 풀어야 할 과제였다. 즉 니즈를 수용하되 디자이너의 영감을 담은 새로운 시안을 제안드려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소소한 문제가 생겼다.


위치를 정하고 시안을 잡으려는데, '그분'이 집을 나가셨다. 영감님(inspiration) 말이다. 빈 공간에 뭘 넣어도 안 예쁘고, 이를 어떡하면 좋나 싶어 떨리는 동공으로 하염없이 모니터만 보던 그때였다. 실장님과 대표님이 레퍼런스와 디렉션을 주셨다. 이런 이미지를 참고해 보는 건 어때요? 이런 식으로 가보는 건 어떨까요?

FScdS_GaMAIeyAU.jpg 영감이… 떠오른다!

아주 멋진 결과물이 탄생했고, 그대로 시안을 잡고 미팅 때도 보여드렸다. 다행히 클라이언트 측에서는 제안드린 시안을 마음에 들어 하셨다. 대표님과 실장님의 가호 덕분에 위기를 만회했다. 하마터면 기한을 맞추지 못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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