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의 마지막을 어떻게 보낼까?/23년8월17일(목)

by 강민수

핀란드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북유럽 국가들이 세계적으로 복지제도가 잘 된 나라들이라고들 한다.

모든 사회적 시스템이 안정되어 있는 느낌이다.

바쁜 것이 없는 것 같다.

나도 마음의 여유를 좀 더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벼리에게서도 걸음이 빠르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발걸음이 너무 빨라서 같이 여행 온 것 같지 않다고...

우리나라에서는 몰랐는데 내 걸음이 빠르기는 한 것 같다.

너무 빨라 날다람쥐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헷갈린다.

분위기에 맞게 걸음을 조절해야 할 것 같다.

장거리 유레일패스를 마지막으로 이용하는 날이다.

"오울루보다 좀 더 위쪽까지 갔다 오면 어떨까요?"

"굿, 아이디어~"

차창 경치를 편하게 무진장 보고 싶은 마음에서다.

왕복으로 갔다 오면 비행기 타는 시간까지 1시간의 여유가 있어 거의 맞았다.

그런데 앞 일을 예측할 수 없다.

만일 연착이 되면 큰일이다.

지난번 열차 사고로 2시간 반 정도의 연착이 발이 묶여 꼼짝을 못 했다.

그래서 가까운 곳으로 한 바퀴 돌고 헬싱키 시내에 있는 무민샵에 가기로 협의.

땅땅땅..!!

체크아웃하겠다고 이메일을 보냈다.

10시 조금 넘어 현관문을 나서니 청소 아주머니가 벌써 대기 중이시다.

샴푸 보충과 TV리모컨 작동이 안 된다는 메일에는 '가물치 콧구멍' 이더니 체크아웃한다는 메일은 빨리 잘도 본다.

벼리는 며칠 전부터 뿔났다.

연락도 되지 않고 불편함을 주니 하루 숙박비를 빼달라고 이메일을 보내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당치도 않는 억지타령인 줄 알면서도 내뱉으면 속이 시원한가 보다.

7일 동안 아파트에 머무는 중 셋째 날부터 샴푸가 없었다.

짜고 또 짜면서 겨우 썼다.

벼리가 문 밖에서 다른 객실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얻어 와서 하루를 썼다.

홍콩 젊은이였는데 조금 덜어주면서 됐냐고 묻는데 더 달라는 말을 못 했단다.

다음날은 퇴실하는 사람을 기다렸다가 얻어 와야겠다고 했다.

유모차에 작은 아이를 뉘고 큰 애는 옆에 데리고 나오는 아저씨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갔다.

"하이, 혹시 퇴실하십니까?"

"오케이"

"우리 방에 샴푸 보충이 안 되는데 얻을 수 있을까요?"

"오케이 팔로미"

다시 자기 방으로 가서 "푹 푹 푹" 오랫동안 계속 눌러 유리컵 반 정도를 담아 가지고 나왔다.

"땡큐 소 마치."

"노 플라브름."

그 양이 엄청 많았다.

미국 아저씨는 땅넓이만큼이나 통이 컸다.

가는 마당에 인심을 팍 쓰고 떠났다.

고마운 아저씨 덕분에 마지막날까지 써도 철철 남아 보충을 해 놓고 나온 셈이 되었다.

주인은 연락두절이고 샴푸를 얻으려고 다른 객실이 열리기를 밖에서 기다리며 두 번씩이나 부탁하러 나갔으니...

나중에 별도의 이메일이 왔는데 내가 요구한 샴푸 보충과 리모컨 문제는 몸이 아파서 늦게 보았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아파트는 깔끔하고 편해서 너무 마음에 들어 잘 지냈는데 이런 불편을 주며 응답도 하지 않는 성의 없는 주인은 처음이다.

다 만족스러운 것은 이 세상에는 없는 것 같다.

내 마음 가짐에 따라 달리 보이니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마음 닦는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

역에서 열차를 타고 2시간 30분 정도 핀란드 평원을 달리며 언제 또 볼지 모르는 이 광야를 마음속에 새겨 보았다.

다시 돌아가는 열차를 타야 하는 역에서는 두 시간 정도의 여유시간 밖에 없다.

역 근처의 쇼핑센터와 다운타운에서 시간을 보냈다.

조그마한 동네는 시골스러워 다운타운도 복잡하지 않아 좋았다.

해물 파스타를 먹고 아이스크림을 쪽쪽거리며 걸었다.

되돌아오는 열차에서 간단한 식사가 제공되었다.

커피와 간식을 먹으면서 편하게 앉아 있으니 여유만점이다.

열차여행의 매력이기도 하다.

짐을 끌며 갈아타고 시간 맞추고 허둥대던 모습이 스쳐 지나가니 먼 옛날의 애송이 시절처럼 느껴진다.

이제 많이 컸다.

유레일패스로 유럽을 누비는 것이 쉽게 느껴지고 어디든 갈 수 있으니 배테랑급이 된 것 같다.

마지막은 항상 아쉬움이 있게 마련이다.

유럽 열차와 이별의 시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힘들었던 것이 훗날 추억거리로 남듯이 돌아보니 소중한 시간이었다.

다시 헬싱키로 돌아와서 무민샵 본점을 찾아갔다.

다다른 곳에는 다른 가게가 영업을 하고 있었다.

여자 주인에게 무민샵은 어디 있냐고 물어보니 5년 전에 이사 갔다고 했다.

"어디로 갔냐?"

컴퓨터로 한참을 찾아보더니 이제는 장사를 안 한다고 했다.

벼리는 그러거나 말거나 이 가게의 패브릭을 만지며 둘러보는 중이다.

'이거 큰일이네... 벼리가 정말 가 보고 싶어 했던 곳인데....'

"어디로 옮겼대요?"

"가게가 없다는데 더 찾아봅시다."

마지막으로 네이버에서 최근 헬싱키 무민샵 방문기가 있는지 확인해 보았다.

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무민샵 방문기가 있었다.

가게를 찾아 다시 돌진.

쇼핑몰 내에 조그마한 무민샵 가게가 있었다.

벼리가 반가워했다.

나는 무민샵은 안 반갑고 벼리가 즐거워하는 모습이 더 반가웠다.

인형을 안고 찍고, 컵을 들고 찍고...

옷을 대어보고 가방도 둘러메고 수첩도 만지고 바쁘다.

나는 쓰윽 한 바퀴 도니까 볼 것도 없는데 벼리는 한 코너에서 한참 머문다.

좀 더 본다고 밖에 앉아서 기다리라고 했다.

가득 웃음을 머금고 이제 다 봤다며 가자고 한다.

한없이 기다려도 벼리가 좋아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

무민은 핀란드 작가 토베 얀손(1914~2001)의 여러 책과 만화에 나오는 캐릭터다.

무민은 초자연적인 괴물 또는 거인의 가족으로 색깔은 희고 포동포동하며 주둥이가 커서 하마를 닮았다고들 한다.

어찌 되었던 유명한 캐릭터이고 핀란드인은 물론이고 다른 나라에서도 사랑받고 있다.

제주도에 무민랜드가 있으니...

우리나라의 아기공룡 둘리 정도 될까?

가격이 전반적으로 비쌌다.

캐릭터값을 확실히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민샵을 나와서 발걸음도 가볍게 손을 잡고 흔들며 역으로 갔다.

공항으로 가는 유레일패스의 마지막 열차를 타고 우리는 공항으로 갔다.

비행기에서 보는 핀란드의 모습과 서서히 나타나는 스웨덴의 야경이 유럽 여행의 막바지를 향해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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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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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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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를 떠나는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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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일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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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와 스톡홀름의 육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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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스톡홀름의 공항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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