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름답던 케이프타운도 서서히 저물어 마지막 날을 맞았다.
밝은 얼굴로 친절을 베풀었고 아름다움을 선사했으며 무시무시함이 공존했던 날들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추억의 여러 페이지를 넘어가고 있다.
저녁 비행기로 요하네스버그로 가야 하기 때문에 무리한 일정보다는 편하게 하루를 보내는 것으로 계획했다.
숙소 주인에게 체크아웃을 알리고 그동안 잘 지냈다는 인사말을 보냈다.
일주일간 지냈던 아파트는 투룸인데 너무 깔끔하고 넓고 시설물이 좋아서 우리 집에서 생활하는 것 같아 묵었던 곳 중 최고의 숙소다.
거실 소파 두 개와 안방 소파 위의 덮개는 우리가 오기 전에 세탁해서 덮어 놓은 것처럼 까슬까슬 거려 청결미가 돋보였다.
덮개와 쿠션은 마 같은 천이었는데 수를 놓아서 군데군데 포인트를 주어 고급스럽고 예뻤다.
6인용 식탁과 마루 바닥은 나무로 온화하고 따뜻한 느낌이다.
침대 매트와 베개도 5성급 호텔 수준으로 꿀잠을 잤으니 베스트 숙소임에 틀림없다.
벼리가 좋아하는 스타일을 거의 다 갖추어서 우리를 만족시켰고 마음에 쏙 들었다.
벼리는 호텔보다 에어비엔비의 아파트를 선호한다.
남은 여행 기간 이런 아파트만 찾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든 집 안을 둘러보고 손을 흔들며 안녕으로 인사했다.
짐을 차에 싣고 숙소에서 멀지 않은 시그너힐을 다시 찾았다.
시그너힐은 테이블마운틴과 라이온스헤드의 사이에 있으며 높은 언덕이라 시내와 바다를 보기에 좋은 곳이다.
며칠 전에 봤으나 또 봐도 멋진 경치와 아름다움은 그대로다.
시내에서 산 쪽으로 바라볼 때 둥그스름하게 우뚝 솟은 게 뭔지 몰라 며칠 전에 찾아보니 사자 머리를 닮았다고 라이온스헤드라고 했다.
라이온스헤드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편하게 보내자고 했던 말은 온 데 간데 없이 산을 향해 발이 움직이는 것을 누가 막으랴...
토요일이라서 사람들이 여기로 출동했는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많이 올라가고 있었다.
우리도 산길을 따라 쉬엄쉬엄 올라갔다.
평평한 황톳길 어서 꼬마들과 손에 손잡고 올라가는 몇 가족들도 있었다.
산의 중간 부분이 지나자 며칠 전에 올랐던 테이블마운틴과 비슷한 지형이 나왔다.
"이크."
그때 깎아지른 듯한 바위 때문에 정상 아래에서 되돌렸는데...
그러나 이 길은 그렇게 험하지가 않아 그 산과 비교가 안 된다.
기묘한 암석들은 제멋대로의 모양으로 누웠거나 솟았는데 오랜 세월을 거쳐 우리와의 만남에 경이롭기까지 했다.
이럴 수가? 위엄 있는 자태...
여기에서 버티며 누구를 기다리고 있을까?
수없이 만나는 모든 것과 벗이 되어 살아 숨 쉬며 기를 뿜어내는 바위들이여..
자연은 우리의 좋은 친구들이다.
내딛는 발걸음을 묵묵히 받쳐주는 흙과 돌과 바위들이 고맙게 느껴졌다.
사다리와 로프 같은 안전시설들도 어느 정도 설치되어 있어서 산에 오르기가 훨씬 수월했다.
바위에 박아놓은 손잡이를 잡고 오를 때는 클라이밍 하는 것 같아 재미있었다.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케이프타운시가지와 테이블마운틴 그리고 해변의 모습까지 아주 아름다웠다.
정상에 오른 사람들이 멋진 장소에서 사진을 찍느라 포즈를 취하며 뽐냈다.
우리는 바다를 바라보며 다정하게 어깨동무를 한 뒷모습을 처음으로 연출했다.
오누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
제일 높은 바위에 올라서서 하늘과 맞닿게 두 팔도 벌렸다.
'흠흠, 싱그럽다.'
더 바랄 것이 뭐가 있으리오.
확 트인 사방이 강렬한 햇빛에 반사되어 빛나도록 푸르렀다.
같을 수는 없겠지만 테이블마운틴 정상 바로 아래에서 하산해서 그때 못 보았던 경치를 한껏 누리며 케이프타운의 광활함을 가슴으로 안았다.
정상까지 아이들이 올라올 정도니 하산길도 순조로웠고 힘들지는 않았다.
왕복으로 약 2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멋진 풍광이 계속 따라오며 아래로 아래로 이어졌다.
우리에게 이 정도의 산행은 우리나라에서부터 단련되어 그리 힘들다고 느끼지 않았다.
라이언스헤드에서 자연이 내려준 보약을 한 사발 마시고 벼리가 한번 더 가고 싶다고 한 보캅마을로 갔다.
알록달록한 색깔로 색칠을 한 마을에 공예품 및 미술품 전시 등이 있어 오늘은 제법 관광객들도 많이 보였다.
며칠 전 차량 내 도난 사고가 있었기에 나는 차량 지킴이를 하고 벼리만 한 번 더 구경을 하고 왔다.
미술품과 공예품이 너무 예쁘고 볼거리가 많아 재미있다고 했다.
보캅마을을 뒤로 하고 벼리의 기내용 작은 가방을 사러 도난 사고를 당한 중앙역으로 갔다.
중앙역 부근에는 버스터미널도 있고 시내 번화가로서 대형 쇼핑몰도 있었다.
그 반면에 도난사고를 당한 주차 지역에는 움막들이 많이 있어 남아공의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을 한눈에 볼 수가 있으니 사회적인 문제다.
이런 어려움으로 살인율이 세계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여기는 더 위험하니 당연히 차를 지키야 했고 벼리는 중악역 시장에 가서 가게 주인들과 협상을 하여 가방을 사 오기로 했다.
신용카드가 없어 미화를 조금 바꿔야 하는데 토요일이라 은행은 닫았고 인출기만 있었다.
주변 가게들을 기웃거리다 이발소에 들어가서 부탁하니 가진 만큼 남아공돈을 바꿀 수 있었다.
그동안 차에서 기다리는 벼리에게 달려가서 교대를 하고 시장으로 보냈다.
벼리가 좋아하는 핑크색 캐리어를 들고 저 멀리서 기분 좋게 오고 있는 모습이 가방도 가격도 마음에 들었나 보다.
새로 사 온 가방에 짐을 옮기고 있으니 조금 떨어진 빈민촌 구석에서 한 여인이 손을 벌리며 달라고 소리쳤다.
울부짖듯이 반복하는 소리가 처절하게 들렸다.
비록 바퀴는 고장 났지만 몸통은 깨끗하고 쓸만하니 물건 보관용으로는 괜찮을 것 같았다.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헝겊을 둘러쓴 그 여인이 채 가듯이 달랑 들더니 가구를 장만한 듯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사라졌다.
벼리와 여행하며 함께 했던 고마운 가방이었는데 누군가에게 쓰인다니 버려지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했다.
자기에게 온 모든 것들은 언젠가는 인연 따라가는 것 같다.
공항으로 가야 할 시간이 조금 남아 며칠 전 비 올 때 갔던 아름다운 와이너리가 아른거려 한번 더 갔다 오기로 하고 그쪽으로 차를 돌렸다.
그때와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주말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와인을 즐기며 시끌벅적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잘 볼 수 없는 낮술의 토론장이자 사교장이었다.
와이너리와 정원을 거닐며 다시 한번 감상할 수 있는 시간에 감사하며 공항으로 달렸다.
국내선과 국제선이 같이 사용되는 케이프타운 공항은 생각보다는 깨끗하고 일의 처리가 매우 신속하게 움직이는 느낌을 받았다.
케이프타운에서 요하네스버그까지는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다.
놀라운 일은 비행기가 탑승구에서 사람이 다 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이륙을 하는 것이며, 남아프리카항공이 국내선인데도 국제선 못지않은 기내식과 주류와 음료를 제공해 주었다.
음식도 맛이 괜찮았다.
그런데 공항 화물 찾는 곳에서는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3번 라인에서 화물이 나온다고 안내되어 있는데 2번 라인에서 조금 4번 라인에서 조금, 이런 식으로 화물이 나오니 승객들은 갈피를 못 잡고 이쪽저쪽을 뛰고 헤매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웃기는 장면이고 처음 겪는 일이다.
아프리카라서 그런가??
다행히 우리 짐은 일찍 나와 셔틀버스를 타고 호텔로 가고 있다.
요하네스버그도 케이프타운 못지않게 무시무시하다던데 조용히 호텔로 고고~~
테이블마운틴을 뒤로하고 라이온스헤드를 오르면서
의사소통 오류로 인한 사진 한 장
라이온스헤드 정상
산 정상에서 시가를 바라보며
하산길의 절벽
케이프타운 시내에서의 길거리 공연
케이프타운 공항
내 화물을 찾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