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초베 사파리 관광을 생각하다가 케냐 마사이마라 사파리가 좋을 것 같아 관광일정이 잡히지 않았다.
오전에는 호텔에서 호캉스로 휴식과 그림을 그리고 오후에는 셔틀버스를 타고 다운타운에 가서 쇼핑을 하기로 했다.
벼리는 목욕을 좋아해 스파욕조에서 뜨끈하게 몸을 담그고 편안하게 힐링하는 시간이다.
뉴스도 듣고 유튜브도 보고 클래식을 켜 놓고 그림을 그렸다.
내 그림을 보며 제일 먼저 좋아하는 벼리를 생각하며 솜씨를 발휘하고 있다.
"와, 우리 신랑 그림 진짜 잘 그린다."
"화가 같네. 짱~~"
아라면서 얼굴이 활짝 피면서 함박꽃처럼 웃는다.
"잘 그리기는 무슨..."
그러나 옆에서 기뻐하고 칭찬해 주며 지지하는 동반자가 있으니 힘이 나고 신이 나는 건 사실이다.
"다음엔 뭘 그릴까?"
생각하며 스케치북을 덮는다.
오후 2시가 되어 셔틀버스를 타고 다운타운에 가서 내리면서 신신당부를 또 했다.
어제처럼 부도를 내지 말라면서 꼭 5시에 우리가 내린 이 장소에 픽업하러 오라고...
다운타운이라 해야 어제 우리가 돌아다녔던 빅토리아폴스의 중심가였다.
이 집 저 집 가게를 돌아보고 갤러리에서 그림을 감상하며 오후의 시간을 보냈다.
벼리는 이번 여행에서 보니 아주 적극적인 성격이 많이 보였다.
짧은 영어임에도 불구하고 가게 주인들과 대화를 시도하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이것저것 질문도 많이 했다.
궁금증도 많고 들어가서 뭐든지 구경하고 이야기하면서 웃으면서 바디랭귀지도 잘한다.
보는 것은 좋지만 물건을 사지 않으면 가게주인에게 미안해서 들어가려니 멈칫거리는 나와 다르다.
이게 남자와 여자의 차이인지 모르겠다.
내가 너무 양심이 고와서 그렇다고 벼리는 말한다.
하나라도 팔고 싶은 상인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서다.
안 사고 돌아서면 얼마나 안타까운 마음이겠는가?
혼자 이리저리 보고 묻더니 밖에 있는 나에게 들어와서 작품들을 보라고 한다.
가게 주인이 화통했다.
엄청나게 무거운 돌로 만든 작품들이 넓은 가게 안에 수없이 많았다.
통돌을 기계로 깎아서 만드는 방법을 들으니 정말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업할 때 돌가루의 먼지가 풀풀 날릴 텐데...
고구려 승려 담징(曇徵)이 맷돌을 만들어 주었다는 기록이 일본서기에 있다.
석수의 기술이 일찍부터 발달하여 일본에까지 전파되었으니 뛰어난 솜씨가 돋보이는 옛 조상인 석수장이가 생각났다.
우리의 기술이 아프리카까지 왔을까?
작품 하나하나가 모두 커서 꼼짝도 하지 않고 제자리를 지켰다.
작품 평균 가격이 우리나라까지 운반비를 포함하여 약 천만 원 정도라고 했다.
우리는 그저 준다고 해도 무겁고 둘 데가 마땅찮아서 안 할 것 같았다.
'저런 대작을 사 가는 사람이 있을까?'
'구매하는 사람은 무슨 마음으로 살까?'
'몇 개를 팔아야 넓은 가게비와 생계유지가 될까?'
'한 달에 한 개만 팔아도 먹고살 수 있을지...' 등등
다른 사람 생계까지 별의별 생각을 다하고 있었다.
걱정도 팔자다.
코리아라는 얘기를 듣는 순간 주인은 북한에 대해 아는 만큼 이야기를 했다.
"아니 아니. 우리는 사우스코리아."
"사우스코리아?"
"오케이"
남한과 북한에 대해 비교 설명도 하고 음식 이야기도 하면서 재밌게 보냈다.
우리나라의 좋은 점을 말하니 이제 알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우리는 처음 보는 사람들이다.
세 사람의 밝은 에너지가 모여 불꽃이 튈 만큼 강한 빛을 내다가 헤어지면서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다른 가게들도 둘러보며 지나가는데 거리에 잠비아 상인들이 많이 보였다.
박스에는 과자와 음료수를, 옷과 신발과 가방 등은 큰 가방에 둘러 매고 다니면서 사람이 보이면 내려놓는다.
짐바브웨 여자들이 모여 옷을 들고 "하하"거리며 살듯 말 듯 하더니 결국 안 사고 내려놓았다.
'한 개 사 주지...'
셔틀버스를 기다리다가 그 광경을 쳐다보고 있으니 벼리에게 다가와 보따리에서 옷을 하나씩 보여주며 가격을 말했다.
주로 2~3달러 정도인데 수준 이하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니 다시 집어넣었다.
기다리는 동안 사 가는 사람이 없었다.
안타깝다.
오후 5시가 조금 지났는데 안 온다.
'오늘도 또? 아니겠지.'
10분이 지나 드디어 약속된 장소에 버스가 도착하니 반가웠다.
조금 늦었지만 약속을 지켜줘서 고마운 일이다.
호텔에 도착했는데 그저께 애들이 내일 보자는 얘기를 했다며 다시 동네로
나가면서 과자와 약간의 음식을 가지고 나갔다.
아이들이 기다릴 것 같아서 나가야 한단다.
놀다가 돌아온 벼리의 말은 이렇다.
눈을 똘망거리며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아이들은 먹는 걸 가져가도 달라거나 눈길을 주지 않고 벼리만 뚫어지게 쳐다보며 좋아하는 게 신기하다.
나누어주면 잘 먹고 차례를 기다릴 줄 알며 고마워했다.
그래서 자꾸 주고 싶고 아이들이 귀엽고 순수하다.
공 던지기, 축구, 배구, 공과 관련된 게임도 하고 춤도 추웠다.
아이들이 춤을 따라 하며 입이 벌어져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좋아했다.
손을 잡아보고 도망가기도 하고 재미난 시간을 보냈다.
놀다가 또 들어와서 육포와 시리얼도 가져가서 나누어 주고 놀고 있는데 어떤 청년이 먼발치에서 싱그시 웃으며 담에 기대어 보고 있었다.
"같이 하자. 형님아."
끼어들어 공놀이를 한 후 청년이 연락처를 요구해서 내 폰 번호를 알려줬단다.
헤어지는데 아이들이 "씨유투모루"
벼리는 "오케이"
돌아오다가 생각하니 내일은 하라레를 가기에 약속을 지킬 수 없어 "오케이"라고 한 게 잘못되었다고 했다.
이제 만날 수 없으니 진짜 작별 인사를 해야 한다며 다시 나갔다.
집으로 다 들어간 아이들을 불러냈다.
"얘들아~"
우르르 아이들이 달려 나오고 동네 어른과 청년도 나와서 외국에서 온 사람의 선의에 호감을 표시하며 모두들 감사의 마음으로 인사를 했다.
"어디서 왔느냐?"
"사우스코리아, 한 번 놀러 오세요."
아주머니와 얘기하며 서로 안았다.
벼리도 이별의 아쉬움을 아이들 한 사람씩 포옹을 하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짐바브웨!!....
아직 개발이 안 되어 문명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어느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을 것만큼 순수한 것 같다.
아름다운 나라로 기억하고 싶다고 했다.
한국에 가면 빅토리아폴스의 동네 아이들이 생각날 것 같단다.
아이들도 벼리를 기억하며 가끔씩 생각을 할지 모르겠지만 외국인과 놀 수 있는 경험은 거의 없지 않았을까?
벼리가 전직 선생님이라서 아이들과 쉽게 친하고 어울려 놀 수 있고 재밌게 해 줄 수 있었나 보다.
벼리의 이야기를 들으니 재미있었다.
아프리카를 다니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이 동네의 따뜻함에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짐바브웨,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