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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혁 Jul 11. 2022

로컬 정책은 때가 필요하다.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그저 환경이 그렇게 조성했다.

"뭐 상관없는거 아닌가?"


사람이 살다보면 저런 일이 있고, 이런 일이 있듯이 장기하의 내면 섞인 목소리가 노래에 감미롭게 적용된 듯한 이 명곡을 그 누가 마다하지 않을까 한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


누군가는 지극히 이 일상을 끝내려고 고군분투하겠지만, 난 아니었다. 때로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찾아갔던 곳은 바로 한강 공원이었다. 난 서울특별시 강서구 마곡동에 거주한다. 부모의 명의를 빌리어 어느덧 함께 지낸 지 5년이 넘었다. 자취는 꿈도 못 꾼다. 돈의 문제가 아니라, 직장은 서울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저 멀리 경기도권으로 이전하기 힘들다는 것은 나 스스로도 잘 알기 때문이다.


최근에 LH 주택청약 홈페이지를 접속하여 나의 조건으로 가능한 아파트나 공공 민간주택이 있는지 확인해보았다. 물론 전자는 당연히 해당사항이 안된다. 신혼부부 위주로 저렴하게 제공된 조건에서 일단 나는 광탈이었다. 면접을 하기도전에 이력서에서 벌써 탈락한셈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묻는다.

"진혁아, 너는 서울에서 사는 게 엄청난 스펙 아니냐"


하지만 스펙이라고 말할 수 없는 부끄러운 점이 하나 있다. 과연 이 집은 나의 명의일까? 그렇다. 사실 내 집은 없다. 부모님의 집이지. 사실 나의 집이라고 부르기도 껄끄럽다. 그 순간 친구의 얼굴은 찌푸려지며 나에게 온갖 질투심 유발하는 말을 내뱉는 게 아니던가.


서울에서 태어나서 서울에서 생활하며 서울생활권에서 그 누구보다 그들만의 리그처럼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은 하나의 스펙이며, 아무리 자격증과 온갖 봉사활동, 여러 포트폴리오로 대기업을 뚫는다 해도 내가 범접할 수 없는 곳에 도달하는 것 아니냐고. 그럼 너는 상대적으로 다른 지방권 사람들보다 잘 살고 있는 게 분명한 것이며 거기서 네가 짜증 섞일 목소리는 아니라는 말투였다.


사실 이 친구의 말에서 나도 일부 공감하는 바가 있다. 제 아무리 내가 힘든 일이 있어도, 지방권 친구들과 다른 점은 분명했다.


집값이 상당히 올랐던 2008년 기점으로 당시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집 사지 마세요. 지금 투기 열풍입니다. 지금 구매하면 낭패입니다."

"이부망천입니다."

"지방권으로 떠나세요."


수도권 투기과열을 잠재우겠다고, 심지어 서울 내에 1000만 명이 넘는 인구를 지방으로 분산시키겠답시고 당시 정권에서 했던 멘트였다. 덕분에 지역차별이 더 생겨 오히려 탈수도권을 지향했던 분들이 대거 양산되었다. 여기서 탈수도권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말이었다. 지금 2022년 기점으로 점점 서울의 인구는 나날이 하락하고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제3기 신도시 기점으로 서울 인구의 10프로 이상이 신도시로 향했던 것은 분명했으며, 심지어 사설 양옥집이나 정원주택을 찾기 위해 수도권 외곽에서 이전하신 분들이 많아졌다.


'서울의 인구 분산 정책은 실패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은 점차 고달펴졌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면 서민에 대한 경제적 조치와 부동산 정책에 대한 반감심이 오히려 더 증가했다. 이로 인해 젠트리피케이션을 운운했던 사람들은 때를 잘 맞추어 시위를 하기 시작했다. 장소는 적절하게 정부의 언론 탄압이 덜 했던, 그리고 당시 공감대를 많이 샀던 장소를 주축으로 이어졌는데 그곳이 바로 지금의 '연희동'이었다. 당시 김영하 작가님이 궁동공원 인근 어느 연립주택에서 거주하고 있었는데 당시 여러 작가들이 이 기회를 노려 정부의 현 부동산 정책에 반대하는 여러 시민단체와 합세하여 자신들의 프로젝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로컬 프로젝트'였다.

그리고 때를 잘 맞추었다. 그리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서울 곳곳 탈수도권을 지향하는 분들이 대거 등장하였다. 나름 서울의 다양한 문화재와 소실되고, 잃어버리고, 무참히 망각되어 사라지는 것들을 기록하는 분들이 등장했다. 수도권에서 거주하고자 했던 분들은 연희동 작가들과 이 시민단체가 연합해서 기획하고 주관하고 심지어 행동으로 이어가는 패턴에 분명 어떠한 울림을 받았음이 분명했다.


오늘날 연희동의 여러 소상공인들은 이 날을 기억한다.

2017년, 기어코 터질뻔했던 부동산 투기 과열이 점점 확정되고 활성화되면서 남들이 몰랐던 정부의 탈수도권 지향 정책이 이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는 처음에는 단순히 언론 방해를 자극하는 찌라시로 자극될뻔했지만, 점차 진실을 요구하는 분들의 시민연합단체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또 하나의 큰 장을 이루기 시작했다.


"우리가 거주하는 집이라는 게 돈독히 그에 걸맞은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로부터 투기와 투자, 심지어 상업적인 용도로 확정되길 원하지 않습니다. 허나 정부가 그런 짓을 지금까지도 이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누구를 위한 심보입니까? 우리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저 환경이 그렇게 조성했습니다. 이제 당당히 아웅거리는 상황을 벗어던지고 우리를 다시 한번 더 지켜봐 주세요. 집 공급이 어렵다고, 과열되었다고 사람을 분산시키면 그걸로 장땡인가요? 정부는 잘못이 없다고 하지만 이는 누구를 위한 저질적인 정책입니까?"


당시 어느 시민단체의 대표가 했던 이야기였다. 이분의 직업은 70년 넘은 전통 가게를 3대손 이어받은 젊은 사장님이셨다. 이분의 과거 일상, 그동안 자신의 거처였던 이 집이 통째로 사라질지도 모르는 아찔한 순간에 숨 막히는 연설이 계속되었다.


"정부를 위해 열심히 고분하게 세금도 바쳤고, 저희 집 가게를 정부 지자체에 맡겨 다양한 방면으로 홍보를 도와준 것은 참으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이제 떠나라니요. 단지 탈수도권이 답이라는 당신들의 정책은 저에게 너무 너그럽지 못한 용서 아닙니까? 저뿐만 아니라 100년 동안 무수히 이 자리를 자리 잡은 분들에게 한마디 해주십시오. 용서란 말을 그저 공문 종이쪼가리 하나로 대체한 당신들은 공무원 자격도 없습니다."


마지막 말이 굉장히 일리가 있었고, 나도 듣는 순간 숨이 턱 하고 막혀버렸다. 용서란 것을 그저 서면으로 인허가하고 결재하는 매우 형식적인 것으로 우리를 갉아먹는 것. 너무 슬픈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이 분들의 노고는 여전히 지속된다. 지금 탈수도권 정책을 지향하는 분들은 잘못이 없다. 단지 그렇게 만든 사회와 환경이 기존에 있던 분들에게 어떠한 영향력을 전파한게 분명하다. 적어도 사람들이 살았는데 그런 사람들이 사라진다는 것은 너무나 슬픈 일이며, 또 하나의 소중한 장소가 버려지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적어도 우리를 기억해주려는 사람이 생길까? 단지 비석이 생겨 그 자리를 대변하는 것만으로 우리의 일상은 여기서 멈추길 바라지 않는다.


이래서 로컬이 필요함이 절실한 이유이다.

<어반플레이>라는 기업에서 파생된 이 로컬이란 것은 시골과 탈수도권을 지향하여 또 하나의 지방 활성화를 위한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에서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지만 정부는 이를 외면하고 있다. 얼마나 고질적인 문제인지 아직도 망원동과 연희동, 그리고 지금 만선 호프 관련 이슈로 핫한 을지로가 대표적으로 언급된다.


그래서 묻습니다.

아직도 당신들은 서울에서 살고 싶은가요?

서울특별시라는 이 전제 하나만으로 높은 세금과 여러 정책의 노예에 구속받아 허덕이며 희망고문을 받으며 내일이면 잊힐 인프라에 살고 싶은가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서울 사람은 스스로 반성합니다. 사람마다 이해적인 관계가 얽힌 건 분명하겠지만 어느 한편에 쏠리지 않고 온전히 저의 개념이 딱 박힌 글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작성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사실 마지막글은 저의 주관성이 개입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서울에 대한 이면을 비판하는 글이 맞습니다. 그래도 상관없는 게 아니라는 분들은 꼼꼼하게 읽어주시면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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