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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혁 Sep 05. 2022

9월의 장마

회색빛 도시에 비가 내리고

서울에서도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기상청 예보도 없이 아주 잘- 대한민국 전역에 덮쳤다. 어떤 징조가 있으려나. 조심스럽게 검색창에 '비가 갑자기 내리는 이유'를 쳐본다. 불과 소싯적에 비가 내리는 이유는 딱히 없었는데.. 그저 하늘이 내려준 운명의 절실함과 어떤 사람들의 간절한 염원이 새록새록 내려가 무지개를 꽃피운 느낌이다. 잔잔히 뽀개져 한방울 두방울 꿈이 이루어지는건가.


나의 일생 일대기를 들쳐보면 무지개 피는 날이 많지는 않았다만, 가끔씩 무지개 피는 날은 유일무이하게 행복한 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한다. 예를 들면 엄마가 오는 길에 피자스쿨에서 피자를 사주신다거나, 짱가가 꼬리를 흔들며 하루 종일 나를 반겨주는 날, 헤헤벌떡 하면서도 혓바닥을 좌우로 왔다갔다 치근덕대면서까지 말이야. 아, 진짜 좋은 사건은 또 있다. 길을 가다가 우연치 않게 만원을 발견한 날. 하지만 인근 카페의 어느 손님이 흘려놓고 간 그 지폐의 흔적까지. 이걸 나한테는 행운이라도 부르기도 뭐 하지만 그 사람에게는 좋은 행복한 사건이라고 치부하자. 난 적어도 양아치가 아니었거든!



하염없이 걷다 보면 느닷없이 반겨주는 맑고 맑은 빗소리가 그동안 회색도시에 썩혀왔고 묵혀두었던 감성을 내려놓고 분산시켜준다. 종잇조각처럼 날려 어느샌가 마음 한편이 시원섭섭하지만 너무 상쾌한 나머지 나 또한 이 비 내리는 감성에 취해 골목 곳곳을 누벼본다. 흰색 신발은 서서히 현실에 적셔지기 시작하듯이, 깨끗했던 필라 에어포스 또한 서서히 더러워져간다. 때묻은 검은색 조각조각이 밑창에 깊숙이 낄 때까지 속보를 한다.


속도를 높이다보면 어느새 도착한 나의 소중한 장소는 송정역의 막걸리 골목이었다. 부장님과 대리님들 거뜬히 취하셔서 어디론가 이동하시는데 거기로 가시면 본 집이 아닐거라고 확신하지만 오늘은 봐주자. 그들의 인생은 오늘도 하염없이 힘듦이 가득했기에 나 또한 이 축축한 거리를 음미하며 이동하는거지.


누구와 다를 바 없이 그랬던 것 같다. 살다 보면 비 오는 날이 그리 썩 좋은 상황은 아니었지만 일주일 동안 비 온다고 하니 이내 체념하고 조용히 상기하면서 걷고 있거든.



'우리들의 블루스' 마지막 화를 시청했다. 눈물이 앞에 도란도란거렸다. 이슬 한 방울이 뚝 떨어질 때 갑작스럽게 부모님께 연락한다. 그동안 서운했던 감정은 없었지만 자식이라고는 표현 1도 못하는 내숭덩이 나라서 더 미안한 나머지 "사랑합니다."이 한마디로 귀결되었다.


부모님은 나이로 따지는 게 아니었다. 어쩌면 책임감과 애정, 그리고 부모애라는 이 사랑 표현 하나로 열심히 살아가심이 분명하다.


비 오는 날 조용히 파전 골목을 지나가며 그분들을 위해 전화 안부를 전한다.


"어.. 엄마 파전 드실래요?"


"아빠 막걸리 좋아하시죠? 제가 사갈까요? 여기 지평 막걸리 싸게 판매하던데. 아니 소주 말고"


웬일이냐며, 평소에는 그렇게 표현도 안 하던 아들이 30대가 되어서 자랑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어필하고 자기들의 마음을 일일이 챙겨준다며 나를 칭찬해 주셨다.


어버이날 이후로 느껴본 진심 어린 감정이었다. 비 오는 날이다 보니 더 감성이 짙어진 것 같다. 걸음걸이가 느려질 수밖에 없는 촉촉한 땅을 밟으니 다시 생각할 기회가 많아진다. 그동안 업무적으로 치어 살았던 나를 다시 되돌이켜주는 좋은 존재가 여기 있었네.



비는 항상 옳다.

정답은 없다.

비가 왜 오는지에 대해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 아니면 어쩌면 내일까지 행복한 사건이 펼쳐짐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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