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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혁 Sep 07. 2022

기획서따위 쳇

<청년마을 프로젝트>

뭐야? 이 글을 적으려고 켰던 메모장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뿔싸. 저장도 못하고 금세 날려버린 나의 기획 시나리오는 물거품이 되었다.


지랄났다.

화난다.

열불난다.

모니터 깨부셔?


이미 엎질러진 나의 운명이자 숙명이었다. 그냥 조용히 저장 버튼 누를걸 괜히 남자의 허세랍시고 임시 저장도 안 되는 어느 메모 플랫폼에 2페이지나 작성하고 날려버린 난 스스로 자책을 하는 중이었다.


이윽고 마감 시간이 돌아오자 나에게 딱 던져지는 한 마디 카톡.


"진혁씨, 전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바쁘시더라도 금일 오후 8시까지 기획 시나리오 완성본 발송 꼭 부탁드릴게요. 급한 용무가 있으신데 오늘까지 제가 확인할 일이 생겨서 꼭 부탁드립니다. 피드백은 메일로 정성스럽게 남겨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퍽이나. 나도 얼른 작성하고 싶은데 그럴 용기마저 사라지고 의욕은 점차 하강하고 있다.

갑작스레 인지부조화 현상이 나를 옭아맨다. 아니아니 이러면 안 되지. 다시 작성하려고 노력했다. 그나마 반쯤 저장된 녀석들을 다시 꺼내본다.


[로컬 기획안... 목차... 계획안... 예산안... 프로젝트 세부사항란...]


뭐 이렇게 거창하게 작성할 이유는 없었는데 저 멀리 타지에 있는 로컬 관계자(분이라 읽고 관리자가 맞을 듯)가 나의 기획안이 로컬 노선에 일관적이고 보편적인 맥락에 상응하는지 궁금했나보다.


뭐. 아니나 다를까. 반쯤 날려버린 메모장을 부랴부랴 작성해놓고 대충 피드백을 내놓았다.


"진혁씨. 오늘 분명 저녁 8시까지 부탁했는데 그렇게 시간이 어려웠나요? 미리 말씀해주시지. 바쁜거 뻔히 알고 있어요. 괜히 제가 일 떠맡긴 게 아닌가 싶어요."


"아닙니다. 제가 얼른 다시 정리해서 이 기획안 다시 제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꼭 오후 10시까지 다시 완성 후 저에게 메일 하나 보내주세요! 부탁드릴게요!"


"네네"


뚝-


(순간 열받아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싶었다.)


하지만 대학생활의 융통성 있는 나의 기지를 다시 펼쳐내어 이윽고 오후 9시 52분에 마감 정리를 하였다. 순간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한 번 더 PDF 파일 변환 확인 후 퀵 메일로 발송하였지. 다시는 이런 일을 겪고 싶지 않다며 나에게 투덜투덜거릴 때 그 관계자는 나의 메일을 확인했지만 아직 답장이 없는 것으로 보아 불안감이 싸악 내 전두엽을 강타하는 느낌이랄까.


'아니 왜 답장이 없지? 늦게 보냈다고 삐졌나?'

'적어도 대꾸는 해줘야지 괜스레 불안하게 아오'

'이게 그 유명한 메일 읽씹인가?'

'읽고 샤워 중인가? ..?'


아무튼 이상한 상상마저 할 때 그 관계자의 카톡이 급하게 내 휴대폰을 강타하였다.


X톡!


불안한 나의 마음은 역시.

그 관계자의 장문의 카톡은 반쯤 잘린 채 나의 휴대폰 상단에 일정 시간 동안 떠다녔다. 뒤에는 뭔가 중략된 느낌의 미사여구가 난무했고 그냥 감성적인 답변이 아니길 간절히 바라며 침을 꼴깍 삼켰다.


"진혁씨 고생했어요. 아니나 다를까 바쁜 와중에 이렇게 괜히 제가 일을 더 추가한 게 아닌가 싶어요. 사실 청년마을 프로젝트라는 게 비대면 미팅이 많고 업무가 과다해서 아마 개인적인 시간을 많이 뺏길 수도 있어요. 그리고 정기적인 미팅을 하려면 일정 지역에 거주해야하는게 맞고요. 하지만 진혁씨는 아직 저희의 정식 멤버가 아니고, 남은 프로젝트가 있다고 하시기에 1개월간 잔여 계약 기간을 드리고 외주 업무를 드리는 것. 알고 계시죠? 아마 생소하실 피드백일겁니다. 만약 이 기획안이 통과된다면 그리고 진혁씨가 시간이 된다면 로컬 프로젝트를 떠나서 꼭 저희 마을에 한 번이라도 방문하여 놀러 왔으면 좋겠습니다. 늦은 시간 죄송해요. 괜히 서두만 길게 쓰고 장황하게 감성적인 표현만 난무했네요. 결론은 통과입니다. 애썼습니다. 그럼 나중에 뵈어요. 시간은 조율되면 그때 알려드릴게요 :)"


끝.


시마이.


그래, 내가 원하던 청년 마을 기획 면접이 끝났다. 내가 그토록 갈구했던 로컬 기획안을 겨우 작성하였지만 중간 사고를 유발해도 용서를 해주셨던 타지 관계자분께 너무 감사할 따름이다.


정식적인 멤버는 아니지만 조만간 떠날 듯하다.

마지막 시간이 조율된다면 말이지. 인연이 된다면 말이지.


전라도로.


#갓혁의일기 #청년마을 #로컬크리에이터 #로컬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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