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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혁 Dec 30. 2022

공주는 처음이지만 말입니다.

나홀로 공주

때는 12월 15일, 오전 7시


어쩌다 공주에 갔던 이야기이다. 최근에 영화 '시동'을 보다가 문득 주인공 박정민(양아치 주인공)이 말 한마디를 툭 던진게 내가 공주로 출발한 계기가 되었다.


"사장님 여기서 만 원으로 갈 수 있는 곳으로 표 하나 뽑아주세요. 아 웬만해서는 일반으로..."


:<


시작은 간결했다. 그렇게 박정민은 집 떠나 개 고생한다는 저 멀리 군산까지 간다. 청춘 영화라 읽고 인생 뉘앙스 에세이라 읽고 싶다. (사실 양아치의 리틀 포레스트 여정이라 읽고 싶다.) 그렇게 나 또한 이 속박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급작스럽게 새벽 5시에 예약한 공주행 온라인 티켓을 간직한 채 부랴부랴 새벽 7시에 밖으로 나섰다. 때는 2022년 두번쨰 눈이 내린다는 12월 15일 아침이었다. (첫번째 눈은 아마.. 3월인가? 기억이 가물하다.) 깊게 생각했다. 아니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괜하고 헛된 생각으로 예약한 게 아닌가 내심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미 버스는 출발했다. 오래간만에 9호선이 내심 반갑기만 하다. 속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을 비웃을 생각은 없었다. 이날만큼은 '일탈'한다는 생각으로 공주로 무작정 떠났기에 모든 외부적 통제는 걷어내기로 했다. 심지어 그날따라 끼여 탔던 오전 7시 45분 지옥철이 왜 이리 반가웠을까?


영화 시동을 보면 박정민의 일생 일대기를 엿볼 수 있다. 아직 18세인 양아치 주인공은 앞으로 어떠한 사건이 기다릴지 스스로 예측을 못 했지만 말이다.


나이를 불문하고 사람은 책임감이란 속박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한 사회의 암묵적인 규칙 사이에서 난 스스로 모든 것을 집어던지기 위해 꽤 고군분투했다고 자부한다. 아니 솔직히 도피라 읽을란다. 1박 2일이면 그냥 스스로 자기합리화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마곡나루역에서 경부고속터미널행 9호선을 타면 대략 30분이 소요되는데 그 짧지만 강렬했던 시간 동안 다채롭고 무드한 생각을 많이 했다. 참으로 억지스럽지만 불과 10월부터 시작해서 11월까지 행했던 나만의 결과물을 다시 되짚는 시간임은 분명했다. 남들이 보면 저 녀석 기획안만 작성하고 남들이 미처 알지 못할 프로젝트에 신경 쓰는거 아니냐 의아하겠지만 그러한 걱정과 염려마저도 외부로 집어던진지 오래였다. 이윽고 동작역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한숨 가벼운 마음으로 다음 목적지인 터미널 역으로 도착하길 내심 기대했다.


터미널은 생각보다 사람들이 북적였다. 목요일이지만 정장을 입은 샐러리맨들, 기나긴 내셔널 지오그래픽 배낭을 메고 터미널 내 분식집에서 요기를 하는 어르신들이 선명하게 보였고, 가끔씩 대학생들로 추정되는 친구들도 10번 - 15번 출발지에서 조용하게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제각각 사연이 있기에 어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기다렸던 것이 분명하다. 난 그러한 분들에게는 그저 한낱 소시민에 불과하겠지만, 주인공이 되기로 했다. 일명 나홀로 여행하는 남자로 칭하고 싶다. 사실 여행이라고 읽어야 할까?


예전부터 드는 생각인데 나는 지방이나 타지역으로 넘어간 적이 거의 없었다. 그래봤자 나름 지역 브랜딩이 있는 속초, 강릉, 제주도가 전부였을텐데 말이다. 스스로 물었다. 난 왜 하필 공주로 가는 것일까? 정답은 딱 하나였다. 바로 무심코 던진 박정민의 말 한마디가 미지의 세계로 이끌었다는 것이고, 나 또한 그 히피스러운 녀석에게 마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어쩌면 가상의 이 인물 또한 현실을 살아가는 젊은 새싹의 발악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처음부터 썩은 새싹은 없다만 환경 변수에 따라 나도 그렇게 바뀌지 않을까 문득 What if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목적지도 정했겠다. 인근 지하상가로 가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기로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유명한 백반집으로 예상되는 곳이자 어느 노부부가 운영하는 아기자기한 2평 남짓한 손칼국수 맛집이었지만 나보다 앞장선 사람들이 이미 그 자리에서 테이블 만석을 자리하고 있었다.


5분을 기다리며 오늘의 뉴스를 보며 인고의 순간을 맛보았지만 의자에 엉덩이를 앉히는 것만으로 버거운 내가 과연 이 시간에 무엇을 하나 스스로 불편함을 만들었다. 결국 다시 1층으로 올라가 인근 편의점에서 4000원짜리 햄버거와 우유를 구매했다. 전자레인지 돌려가며 아침을 요기하니 함바집이 떠오르더라. 맛은 그냥 그랬다. 뭘 씹어도 코로나 후유증이라 그저 달콤함과 담백함이라는 미각이라도 일컫기 뭐 한 것들에게 지배 당한지 오래였고 무의식의 식사 시간을 마친 후 이윽고 도착한 공주행 일반 버스에 탑승하게 되었다.


버스는 아늑했다. 거의 반년 만에 타보는 경부 고속도로행 버스는 서울 탈출러에게 안성 맞춤이었다. 돈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잠시 접어둘 수 있는 좋은 기회이자 달콤한 시작이었다. 스마트폰을 잠시 비행기 모드로 맞춰놓았다. 어차피 이른 아침부터 나에게 연락 올 사람은 없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미니멀리즘이란 것에 한껏 취해보려고 한다. 남들이 크리스마스 트리로 집을 장식할 동안 난 이 버스만큼은 온전히 하와이로 출발한 승객의 아지트처럼 가만히 그리고 편안하게 있을 예정이었다.


사람들은 조용하게 자신의 터를 만들려고 고군분투할 동안 나도 그렇게 살아가려고 할 테니까 이날만은 제발 날 말리지 말아달라고 스스로 합리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변수 가득해서 참 보기 좋다.


유난히 가지각색 사유를 하기 좋았던 그 날의 연속을 담아야겠다.


목표를 높게 측정하면 실망도 커진다.

사람은 기대감이란 기본 감성이 있거든.

대신 단계를 천천히 밟고 가봐.

기대감은 주식이랑 같거든.

마음 타이밍에 따라

너의 행동, 말 그릇은 달라진다.


_1215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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