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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혁 Mar 29. 2022

구십도 쉐어하우스

제주에서 배운 소소한 것들

이 글은 3월 잠깐 다녀온 저만의 제주도 일지입니다. 그저 편안하게 보고 감상하시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현재 제주도에서 홀로 거주하시는 분들과 홀로 여행오신 분들의 소식을 자주 접하고 싶어요. 그래서 이 글을 쓴 취지도 있습니다.


<노래 추천 : 우효 - 민들레>


떠나라 진혁아. 생각이 온전히 정상적이지 않을 때 너만의 방법을 추구하는 그런 곳으로 말이야.


3얼 14일 야간 따릉이를 타고 집에 도착할 무렵 내 귓가에 들려왔던 누군가의 간절한 소리.

알고 보니 그 소리는 사람의 소리가 아니었다. 그저 나의 몸속에 자리 잡은 누군가의 염원이었지.


마음이 말했다. 진중하게, 그리고 아주 정중한 예의를 갖춘 사람처럼.


"넌 어리숙해. 그 나이 먹고도 본인이 하고 싶은 걸 찾지 못해서 속으로만 싸우고 난리더냐. 내분이 왜 일어나는지 알아? 그건 '이성'과 '감성'의 차이에서 비롯되거든. 그러니까 떠나라."


뭔 개소리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바라던 장소로 이동하라는 의미였던지 아니면 단순한 탈피, 탈출, 도피의 과정을 겪으라는지 그 누가 알겠는가.


어쨌든 나만의 방법을 강구하기를 바라는 나의 '마음'의 명령에 따라 조심스럽게 짐을 싸고 어디론가 이동했다.


예전보다 감미롭지 못하게 떠난 여정. 그러나 나는 제주도라고 해서 특별하다고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이번 여행.. 아니 여정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냥 어디론가 도피하고 싶었다. 삶에 찌든 내가 누군가의 톱니바퀴로 지낼 것이라는 모순점을 발견한 이후 적극적으로 '나만의 색'을 찾기 위해 강구하고 도를 닦았다. 누군가가 그랬다. 그래서 어쩌면 네가 지금 가지고 있는 색깔은 그렇게도 나쁘냐고. 그렇다면 왜 그렇게 살고 있냐고 말이다.


사실 누가 그 답을 제시해 줄 수 있겠는가. 그저 나의 마음 한편에 있는 작디작은 앙금이 서서히 곰팡이처럼 스멀스멀 꽃피우기 시작했다는 걸 짐작했을 무렵이지 뭐.


3월을 만끽한 제주도의 색깔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불과 작년 2021년 12월에 떠났던 나 홀로 여행, 그러나 그 과정에서는 단순히 혼자 여행 코스에만 집착했다. 홀로 떠나는 여행이 쉽지가 않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미리 예측하고 제작하고 꼼꼼하게 구성했던 기록물이었지만 사실 지금 다시 보면 '누군가'를 위한 코스였지. '나'만을 위한 여정의 길이 아니었다.


인생의 길이 있다면 그 누가 제시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해답'을 줄 수 있다만, '정답'은 본인이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어쨌든 에어서울을 타면서 그러한 생각이 무궁하게 내 머릿속을 꽉 잡기 시작했다.


멀미할 것 같았다. 갑작스러운 식은땀과 초조함이 밀려왔다. 비행기 출발과 동시에 얌전히 잠만 자던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기에는 처음이었다.


어쩌면 실수였을지도 모른다. 도대체 왜 제주도로 갔을까. 왜 그냥 떠났을까. 순순히 모든 약속과 일정을 파기한 채 떠난 제주 여정.



하지만 그러한 고통은 1시간도 안되어서 끝났다. 온전히 제주 땅에 착륙하는 비행기 날개를 벗 삼아 여럿이 갈라놓은 야외 논밭 풍경을 구경하자마자 나만의 감성은 다시 예전, 작년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회귀하고 싶은 본능이었을까. 아니면 그동안 참아오다가 터져버린 울분이었을까. 감성은 비로소 행동으로 이어졌고 이내 속으로 삭혀있던 아우성이 폭탄처럼 '야호!'로 바뀌기 시작했다.


"우와, 야호!"


삭막하고 조용했던 에어서울 비행기 내에서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느낌이었다. 다만 그 분위기에서 조용히 '풉'하고 웃었던 어린 녀석과 눈이 마주쳤을 때, 마치 순수했던 나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고마웠다. 그 꼬마 녀석 적어도 내 마음을 알았을까. 10프로라도 알았으면 넌 성공할 거야. 그러니까 다시 울분을 빗겨나가 나의 옛 감성, 초심을 부여잡고 제주도를 기록해 보마. 고맙다.



현각이 형이 보고 싶었다. 5년전 같이 필리핀 가이드 활동을 했던 형님인데 제주도에 정착한지 어느덧 3년이라고 한다. 무소식이 희소식이 되고 싶다만 사람 마음이 애간장을 태우는 걸 어찌겠는가. 그 명언의 틀을 깨부수고 나는 무작정 그 형님이 있는 셰어하우스로 이동했다.


'구십도'라는 이름에 걸맞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사실 수치에 따라 마음과 행동이 변하고, 인생이 바뀌지 않을까 싶었다.


1도가 2도가 되고, 3도와 4도.. 그리고 점점 각도가 높아질수록 사람이 맞이하는 수많은 환경의 노출점과 변곡점은 하나의 과정이나 뜻깊은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형님 또한 이 과정을 겪었고, 그렇게 여행을 오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소식과 감정을 공유하며 안락함을 전달해주고 싶었기에 자신의 아지트를 만들었겠지.


하마터면 울뻔했다. 1년 만에 처음으로 만나서 말이다. 내심 나의 속마음을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벌써 떨리는 나의 손과 얼굴 표정에서 그 형님 또한 이미 느꼈을 것이다. 허나 내일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으러 가야 한다는 아주 처참한 소식과 함께 '술'을 마시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덜컥 주저앉아 버렸다.


'아, 그럼 왜 부른 거야. 너무하네.' 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그래, 형님 그래도 얼굴 보니까 기쁘네. 난 좋아. 그래도.'


이 마음이 먼저 들었던 것은 어쩌면 잘 살고 있었단 말이잖아. 사람이 가지는 마음 감성 차이는 한 끗과 한 장 차이라는데 충분히 이해했고 나 또한 납득했다. 그동안 고생했다는 생각과 함께 이 형님은 분명 큰 결실을 이룰 것이라는 나만의 자신감 있는 어조를 만들고 말았지. 아무쪼록 형, 만나서 반가웠어. 아니, 앞으로 또 계속 반가울거야. 그리고 고마워.



사장님이라고 부르기도 참 어색했던 현각이 형. 쉐어하우스에 모인 사람들과 함께 형의 빈자리를 대신해주었다. 내일 당장 검사 맡으러 가야 하니 술은 당연히 금지요, 밥도 금지이다. 시한부 인생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지만 오늘은 그러했다. 그 공허한 마음을 대신하고자 내가 주인공 자리를 대신 맡을 테니 형은 잠깐 쉬고 있어야 해. 그래야 해.


그리고 모르는 게스트분들과 그렇게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성산 구십도에서 말이다.


<다음화에 지속됩니다.>

구십도에서 만난 사람들. (brunch.co.kr)



#갓혁의일기 #구십도 #제주일지 #제주일기 #나홀로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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