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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혁 Apr 01. 2022

나만의 파도를 만들다.

제주 이호테우 올레길을 따라서


날씨가 좋았던 3월의 어느날.


봄이라는 산뜻한 계절이 감싸는 그 황홀한 순간에서 나의 기분 또한 오락가락하였다. 요 근래에 번아웃이 자주 오는 증상이 많아졌다. 아무래도 생각 속에 머물렀던 나만의 감성이 서서히 밖으로 나오려고 아우성을 치고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감성을 속이기 싫었다. 잠깐 밖으로 나가보았다. 현각이형과 마지막 인사를 기약으로 나중에 다시 오기를 간절히 기대했다. 어느 순간 내가 도착한 장소는 여전히 사랑스럽고 담백함, 그리고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는 하나의 장소였다.



당시 애월에 잠깐 볼 일이 있다는 친한 게스트 형님과 차를 타고 나는 이호테우에 내렸다. 잠깐이었지만 바다 향기를 맡으면서 그 형님과 진지하고 소소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혼자 여행에 오게 된 계기와 함께 가족과 함께 일하는 일터에서 자주 얽매였던 가족과의 갈등 이야기, 마음의 평화가 찾아와야 하는데 쉽지가 않았기에 더욱 멀리 떠나고 싶었던 일상에서의 탈출 이야기까지. 듣고나면 사람 사는 일상은 그렇게 멀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체감할 수 있었던 그러한 일상 도피 스토리를 듣자하니 나 또한 그런 비슷한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애월의 추억이 깃든 나의 이야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2016~2017년, 제주 한달살이에 로망을 꿈꾸고 육지안에 있는 서울에서 급하게 탈출했던 사회 초년생의 씁쓸한 이야기가 욜로 자극을 불러일으켰다. 사실 예전 욜로라는 의미는 그렇게 썩 좋은 의미가 아니었다. (You only live once = 너의 인생은 한 번이다. 고로 즐겨라.) 이 말 자체가 외국의 어느 유명한 여행자의 순례길 중 인터뷰에서 유래되었지만 점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는 달콤함을 찾아 일상을 회피하며 남들에게 이기적으로 보이는 순수한 양아치 놀음의 사람으로 대상됨이 분명하더라.


난 욜로가 되고 싶어서 제주도로 갔지만 오히려 그 지역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의 생각이 온전히 바뀌기 시작했지.


그래서 이즈음에 내가 제주도에 온 이유도 나의 편견과 오만을 깨뜨리고 싶어서..



그리고 형님은 급히 애월로 이동하였다. 인스타 프로필을 서로 공유하며 스토리로 잠깐의 소식을 소통하기로 하면서.


이호테우 인근 장소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예전 자전거 도로가 살짝 비포장도로였기에 울퉁불퉁한 감촉을 느낄 수 있었던 자연의 풍미, 그리고 로컬의 풍부한 느낌.


그러나 현재는 오히려 깔끔하고 편리한 포장도로로 바뀌어 옛 느낌을 물씬 받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해녀 아주머니들의 집과 쉼터가 있던 곳곳의 작은 집들이 사라지고 '해녀들을 위한 사랑의 시' 작품들이 연달아 이어졌다. 그래도 지나가면서 나의 추억이 깃든 장소를 구경하는 재미는 덤이었고 그렇게 사색하며 홀로 이호테우 해변 둘레길을 따라 걸어가 보았다.



저 멀리 보이는 푸른 바다를 보면서 잠깐 미래 생각을 고심히 해보았다. 천천히 아주 적절하게 보폭을 유지하며 파도 소리가 내 귀에 빗나가지 않도록 노력했다. 흩날리는 건조한 야자수의 잎이 부딪히는 소리가 사근사근하게 들려왔고 저 멀리 어선이 이동하는 엔진 소리와 나의 발걸음은 마치 하나의 제주도 감성 노래를 만드는 듯하였다. 덕분에 사운드클라우드를 틀어놓고 카더가든과 바이바이배드맨 노래를 들으며 고민 없이 이동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상념이 무미건조하게 사라지면서 온전히 나의 의미를 찾아간다는 과정이었지.



인근 해안가에서 바다를 서성이는 고양이를 마주할 수 있었다. 조용히 자신의 서식지를 찾듯이 재빠르게 해안 돌담 사이로 이동하던 그 녀석을 보면서 '나의 집은 어디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현타가 찾아왔다. 하물며 동물도 제 자리와 보금자리가 있지만 인간들에게 집이란 조용하고 아늑한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찾기 어렵다는 점이 참으로 슬픈 현실이었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투기 수단이었을까, 아니면 미래를 위해 자본주의에 쪄들어가는 우리의 미래 모습일까, 아니면 그게 인간의 본능일까.


'나의 집은 어디 있을까. 진짜 집 말이다.'


배꽃 모양의 파도를 품은 이호


그렇게 주변 곳곳을 구경하면서 발견하게 된 최적의 사진 스팟. 사람들이 없었던 점은 최고의 시나리오였고 덕분에 이 근처 자연적인 돌담 의자에 앉아 파도 소리를 들으며 가방에서 책을 꺼내보았다. '걷는 사람 하정우'라는 책을 보면서 배우 하정우가 영화배우에서 감독이 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걷기를 통해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고 그 감정을 일기로 작성하는 상황까지 모든 게 나와 비슷한 내용이었다.


비록 나는 배우와 감독도 아니다. 하지만 걷기를 좋아하기에 가끔 하정우 배우 영화를 보면서 나의 인생 또한 이분과 거의 비스름하다고 느끼곤 했다. 책 한편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우리가 걷는 이유는 건강도 있지만, 거기서부터 맑고 긍정적인 미래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걸어야 한다.'


맞다. 이건 팩트였다. 단순히 편한 일상을 보내고 싶어서 차를 타며 어디론가 이동하는 것은 나에게도 편하겠지만 그 힘든 역경, 그리고 한 땀 한 땀 흘리는 나만의 결실의 노고는 미래를 바꿀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분명했다. 수치화시킬 수 없지만 믿어진다. 그렇게 느껴진다. 그래서 오늘도 걷는다.


이호테우 해변 근처 흰색, 빨간색 등대 (올레길의 상징이었다.)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서 있어서 친근한 등대들. 제주 한달살이를 하면서 마음의 평화를 위해 스태프분들과 자주 찾아왔던 장소였고 특히 밤에 빛나는 저 등대 아래에서 함께 맥주를 마시면서 미래 이야기를 즐기며 앞으로 성공하자는 기약을 했던 기억이 난다. 어렴풋하게 상기되는 그 당시 철없고 미래에 대하 불신과 불안이 없었던 나를 기억하노라면 그때가 그립기는 하다. 제주도라기보다는 그 당시 항상 웃고 있던 바보 같던 내가 그립다.



고공 승진하는 어느 비행 물체를 보기도 하고, 때로는 평소에 걷지 않았을 해안가 방조제 거리를 걸어보며, 마지막으로 저 멀리 아이와 아빠가 함께 웃고 떠들고 있는 풍경까지 고스란히 동영상에 담아보고 사진을 찍어보았다. 아이는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제주도라는 이 지역에 대해 궁금한 모양이었다. 평소였으면 가족과의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 예전의 나를 보면서 이 아이는 그래도 행복하겠구나 생각이 들었지. 요근래에 부모님 생파를 하면서 나의 미래와 일상 이야기도 진지하게 말씀을 드렸는데 그제서야 나에 대한 오해를 푸셨던 부모님을 바라보면서 역시 소통이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가족이라고 편한 존재가 되면 안 되겠더라. 가끔씩은 선을 지키며 예의 있고 품격있게 남들에게 행하는 태도처럼 겸손해야 하는 중요한 사이가 '가족'임은 분명하더라.


불효자는 울었지. 그리고 앞으로도 꾸준하게 표현하며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저의 생각을 겸손하게 어필하겠습니다. 대신에 마음의 문을 자주 열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부모님.



바다가 가지는 흥건한 염분의 농도가 짙어질수록 나의 감성 농도 또한 증가되는 희한한 느낌이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아니 지나가면 안 되겠다. 또 갤럭시 폰을 들고 여러 사진을 찍어보았다. 아이폰보다 미치지 못하는 화질이지만 그래도 괜찮다. 금손이 아닐지언정 나의 감성이 녹아든 사진이야말로 진짜 '가치'가 있다는 의미잖아.


사진에도 '내면'이 숨겨져있다. 그 내면은 무시할 수 없다. 내면이 가지는 나만의 품격과 생각, 가치관은 사진에 오롯이 반영되었고 사진을 통해 그 사람의 심정과 심리까지 파악할 수 있다. 참으로 신기한 물질적인 증거물이 바로 사진이었다. 외면으로 예쁘다고 칭찬했던 철없던 나의 20대 학창 시절로 돌아간다면 너무나 창피하겠지. 창피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그래서 앞으로 사진에 나의 느낌과 생각, 깊이 있는 감성을 담아보되 부정적인 느낌의 색감과 아우라보다는 더욱 시원하고 털털한 그리고 긍정적인 스토리가 담겨있을 듯한 사진을 찍어봐야겠다.


<다음 화에 이어집니다.>

4월 제주도에서 듣는 감성 노래.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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