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양양 여정
마지막 일정. 그러나 속초의 마무리를 양양으로 간다니. 사실 낙산사는 속초에서도 그렇게 유명한 곳이더라. 가셨던 분들의 진득한 후기를 읽고,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낙산사는 꼭 가봐야 한다고 한다. 물론 종교적인 이유로 환생적인 구원을 바라는 염원이 섞인 느낌을 물씬 받고 싶다면 말이다. 허나 나는 그러한 이유로 가기보다는 3월 마지막 낙산사에서 맞이하는 사유를 잔뜩 느끼고 싶었다. (사실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사람들 중 절실한 불교 신자가 계셨다. 덕분에 템플스테이란 것을 해보고 싶었다만, 아쉽게도 그저 여정 동선에 잡기로만 했지.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_.)
굉장히 껄끄러운 코스였다. 탑승시간과 기다리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최소 40~50분 걸렸다. 난 운이 좋았다. 상도문돌담마을 정류장으로 뛰어가서 1분 뒤 바로 도착했던 7번 버스를 타고, 설악산 입구 정류장(설악항 근처)에 내렸는데 바로 건넜더니 방금 도착했던 9-1번 버스를 탑승하여 재빨리 카드 단말기에 태그를 하려는 순간, 기사님이 급하게 말리셨다.
"이거 속초-양양 버스입니다. 어디까지 가십니까?"
"낙산사 갑니다."
-띠익
아하, 시와 시를 연결하는 시외버스였다. 시내버스만 타다보면 무조건 단말기부터 태그 하는 나의 습관은 여전했다. 그런데 그것 또한 이해해 주시던 기사님께 감사했다. 아마 기본요금이 나오는 걸 방지하기 위한 말씀이셨겠지. 충분히 납득이 간 후 바로 양양으로 이동했다.
영산전 방향의 이름 모를 행운 호수가 보인다. 중간 달마의 그릇에 동전을 던지면 행운이 온다고 한다. 그리고 매화가 한참이다. 서서히.
그런데 지도와 다르게 버스가 상당히 빠르게 이동했다. 대부분 경유를 하지 않고 바로 직행하는 느낌은 뭐랄까. 마치 제주도에 다시 온 느낌이었다. 사뭇 레이서 경기를 펼치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당시 시간은 오후 4시 30분이었고, 낙산사 입장시간은 5시 30분이었다. 난 속으로 기사님을 응원했다.
시외 요금을 내면서 힘들게 양양까지 가서 낙산사 입구가 닫혀있는 형상을 상상하노라면 끔찍했다. 더군다나 나는 1분 1초가 아까운 상황이었다. 사실 속초로 다시 돌아갈까 내심 걱정을 했다. 그 이유는 오후 8시 이후 속초행, 양양행 버스 간격이 길고 실시간 버스 어플에서도 안뜨기 때문이란다. 이 이야기는 그 기사님께서 직접 말씀하셨던 내용이었다.
오죽하면 온라인 버스 어플이나 지도 믿지말고, 현지 버스 기사님께 물어볼 정도라니.. 말 다했지. (사실 속으로 걱정했던 것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일몰을 구경하기 어렵다는 속보였다. 당시 비가 차츰 내리기 시작했다. 눈이 오더니 어느새 다음날부터는 사분사분한 비가 내리더라.)
다행인 건 내리자마자 바로 10분 컷으로 낙산사까지 도착했는데 시간이 무려 오후 5시 15분이었다. 15분 감축했던 기사님의 의지와 노고에 감사드릴뿐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면 기사님도 급한 용무가 있으시거나 당연히 일찍 양양에 도착해서 한 타임이라도 쉬는 게 인지상정일수도. (이건 충분히 납득했지.)
아무튼 도착하자마자 낙산사 표를 끊었다. 요즈음은 식당 키오스크처럼 잘 되었더라. 무인 매표소에서 4000원 입장권을 끊고 천천히 낙산사 방향으로 올라갔다.
난 신기했던 게 낙산사만 있던 게 아니었다. 주변 곳곳을 배회하다 보면 낮고 고즈넉한 한옥 기숙사와 식당, 카페, 심지어 어린 동자들이 잠시 머물다가는 호수와 개울가도 존재했다.
인근 스님에게 또 말을 걸기 시작했다. 내심 죄송했지만 당시 고양이에게 밥을 주시는 스님이셨기에 여유로운 모습을 뒤로한 채 말끔히 말을 이어갔다.
"저, 스님 여기가 낙산사 맞죠? 혹시 추천해 주실 만한 곳이 있나요?"
"본인이 가고 싶은 곳에 가면 되지요- 서두르지 마세요. 낙산사 정상까지 가려면 어차피 곳곳을 다 둘러야 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낙산사 스님은 굉장히 친절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아니 설악산 신흥사 어느 문화해설가인 겸 스님이셨던 분도 굉장히 차분하고 담백한 어투와 어조로 이야기하시던데 원래 스님들의 이미지가 이런 거였구나 내심 깨닫게 되었다. 그들의 속내음은 잘 모르겠다만 사람을 대하는 표현력과 맞이하는 태도와 어조, 이미지는 굉장히 깨끗했다.
물론 나는 불교신자도 아니고 어느 종교에 몸을 담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한국의 전통적인 곳에 왔으면 불교의 따스한 차라도 마셔야 할 것 아닌가. 그게 아니더라도 스님과 소소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굉장히 나에게 큰 여운을 받게 하였다.
덕분이라고 할까. 급했던 마음은 이내 다시 차분해지고 나의 발걸음 또한 사뿐해지면서 곧 일몰이지는 낙산사를 향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근 모녀가 노란색 종이를 가지고 어디론가 이동하면서 이런 말을 조곤히 속삭였다.
"부처님, 세상 모든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더욱 저의 지인과 가족들에게는 한도 끝도 없지요. 그게 욕심이라면 제가 기회주의자라도 용서를 달게 받겠습니다. 부디"
행복이 이기주의라는 말, 순간 가족을 위해 본인이 이기주의가 되겠다는 말. 허나 지극히 자신의 가족과 지인들을 끔찍이 사랑해 본 적이 있었는가.
난 스스로 또 깨닫게 되었다.
그 말이 진리라면, 아니 순리였다면 나 또한 창피할지어다. 평상시에 수치화하지 않았던가. 모든 것을 통분하고 분모화하고 숫자로 표현하지 않았던가. 나 나태롭고 위태로워서 살짝 다리가 휘청거릴 뻔했다. 알고보니 그 모녀, 회색 단련복을 입은 걸 보니 템플스테이하러 오신 분들인가 보다.
코스 : (1) 다래헌(식당, 카페, 템플스테이 휴식처) - (2) 영산전 - (3) 해수관음공중사리탑 - (4) 낙산사 (염원, 기념 포스트잇 달기) - (5) 칠층석탑 - (6) 산신각 - (7) 의상대 (일몰) - 복귀 / 1시간 30분
사실 이 코스는 내가 정한 코스가 아니라, 인근에 인포메이션 문화해설가님이 친절하게 포스트잇에 정리해주신 내용이었다. 자세히는 팸플릿에도 있다.
내가 다녀온 대표적인 코스 설명을 하면 다음과 같다.
(1) 다래헌에서 따스한 쌍화차와 대추차, 그리고 호박으로 만든 차와 죽이 있으니 그걸로 속을 달래주고 올라가도 좋다고 한다.
(2) 애피타이저로 속을 달래줬다면 가운데 호수를 끼고 보타락, 지장전, 그리고 거대한 불교 의식을 하는 영산전으로 가보라고 한다. 특히 영산전 주위에는 불교 공인들과 관람객들, 절실한 불교신자들의 염원이 담긴 연등 종이들이 휘날린다고 한다. 굳이 보태자면 그 느낌 자체가 신선하기 짝이 없어서 발걸음이 사뿐해진다고 한다.
(3) 해수관음공중사리탑으로 이동해보았다. 영산전에서 뒤로 한참 꺾어 올라가야했다. 이때부터 낙산 (70m)의 산자락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한다고 생각하고 차분하게 하늘을 보며 올라가본다. 사리탑은 이 낙산사를 건립하고 보존, 보전하셨던 역대 스님들의 사리가 봉안되고 보관된 곳이었다. 하나의 명예로운 전통 사학이 아닐까 한다.
(4) 10분-15분 정도 더 걸어가야 낙산사가 보인다. 낙산사는 불교 공인들의 염원을 하는 곳과 동시에 자신의 복을 되돌아보기 위한 신성한 장소이다.
(5) 낙산사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낙산 정상으로 보이는 산자락이 보인다. 곳곳에는 다양한 행운의 돌탑이 쌓여있다. 그 보는 맛에 또 넘어가본다. 마침내 도착한 곳은 낙산사 칠층 석탑이다. 보물 제499호라고 한다. 그만큼 신성시되는 곳이지.
(6) 그 옆 산신각으로 이동해본다. 동자들의 웃음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아마 불교 학후를 위한 교육 시설일까.
(7) 다시 다래헌으로 꺾어 돌아가면 의상대라는 곳이 보일 것이다. 일몰을 보기 위한 마지막 장소이다.
영산전은 대표적인 낙산사 불교 사찰이라고 한다. 여행을 하면서 불교 공부를 한다고? 솔직히 난 내심 기뻤다. 관광통역안내사 교육에 앞서서 미리 실습을 한 느낌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론적으로 배웠던 모든 것들은 눈 감고 아웅 거리며 도서관에서 역사 공부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하필, 한적한 절과 울창한 소나무, 그리고 스님들의 사리가 봉안된 탑을 보고, 연등회를 연상케하는 염원 종이를 보다니.
인생사 속세가 어디 있을까. 그렇게 고심하던 나는, 경쟁 사회에 찌든 내가 아닌, 단순한 자본주의에 찌든 내가 아닌, 어쩌면 이곳이 유토피아였지.
그저 겸재 정선과 관동별곡을 읊조린 정철이 대단할 따름이다.
역대 조상신들을 모시던 곳이 있다. 사실 정확한 명칭이 기억이 나질 않는다. 임금님의 어진(초상화)를 보관하는 곳이 아닌, 역대 스님이라는 점에서 평범했지만 신선한 느낌도 동시에 받았다. 그들의 노고가 없었다면 낙산사가 오래 지속될 수 있었을까.
그렇게 천천히 낙산사 방향으로 올라갔다. (역대 조상신들이 모여있는 영적인 존재들을 믿는 사람들이 있을까. 이러한 종교적인 생각을 지닌 채.)
도착하면서 저 드넓은 동해 바다를 코로 들숨했다. 이윽고 기쁨의 한탄이 터져 나올 법한 광경은 지속되었다.
삼족섬의 두 가지 복
삼족섬은 예로부터 한국과 일본, 중국의 세 나라에서는 재복을 가져다주는 재물신으로 항상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현재 심사정이 그린 삼족섬은 하마선인도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을 정도이다. 삼족섬은 사실 다리가 세 개에 불과한 두꺼비인데, 전설에 의하면 깊은 연목에서 살면서 함께 사는 주인에게 돈이 있는 곳을 알려주어 부자가 되게 한다고 한다.
또한 마음대로 모습을 바꾸거나 이디든지 날아갈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이 있어서 주인이 가고자 하는 곳은 어디든 데려다줄 수 있다.
해수관세음보살님께 예불을 올리고 삼족섬을 만지는 사람한테는 여행복과 재물복을 준다는 전설이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을 전달한다면 저 거대한 돌 아래 두꺼비를 만진다고 재물복이 쏟아지려나 의심을 하기 바빴다. 허나 종교를 논한다는 것은 정치를 논한다는 것과 같다. 심지어 엄마, 아빠 둘 중에 누가 제일 좋아라고 물어보는 것과 같다.
즉, 선택 불가능하고 논리적이지 못해 오히려 우유부단적인 순간의 감정이로다.
그래도 어찌겠는가. 선택한다면 난 그나마 60프로 복을 가져준다고 믿으련다. 당시 순간은 불신론자(나) 또한 신적인 존재를 영위하고 받기로 했다. 어디까지나 나만의 종교적인 신념 철학이었다.
비익조의 전설
해수관음상 복전함은 상단, 중단, 하단으로 나뉘어 있는데, 각각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를 상징한다. 하늘은 상징하는 비익조는 연리지와 더불어 부부간의 금슬과 연인과의 사랑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상징 매개체이다. 비익조는 극락세계의 아미타불 부처님 전에 산다고 한다.
그래서 극락구품도와 같은 아미타불 후불탱에도 역시 비익조는 자주 등장한다. 예전에는 사찰의 큰 대문에도 미소 짓는 비익조들을 가끔 그려놓았다.
비익조는 사랑하는 두 인연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또한 비익조는 가화만사성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따라서 해수관세음보살님께 절을 올리고, 비익조를 만지고 가는 부부와 연인들은 가족들의 화목과 사랑을 이룬다고 한다.
종교를 떠나서 만물 공통 보편적인 사랑의 미학과 가치관은 어딜 가나 똑같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랑과 화목의 가치 타당성은 여전히 아름답다. 그러면 무조건 만지고 가야지.
그래서 나는 3번이나 두꺼비(삼족섬)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내심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어딘가 마음의 풍족함을 느끼게 되었다.
사실 그걸로 된 거였다. 내가 재물복이나 사랑복을 바라겠는가. 그저 행복과 화목이라는 그 상징 하나만으로 여기에 온 것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큰 뿌듯함을 받고 갈 테야.
'한 사람이 한 번씩만 치세요'
저 거대한 대로 이 종을 한번 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다만 순서가 있었다.
일단 해수관세음보살님께 예불을 올린다. (직접 무릎을 꿇거나 아니면 서서 절을 해도 좋다.) 그리고 마음의 위안이 놓이면 이내 옆에 보이는 거대한 종을 '한 번만' 친다. 2번 이상 치면 그 복이 날아간다고 한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이기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하니 참고해야 한다.
해수관세음보살님. 저의 소원은 말입니다.
2022년 새로운 시작, 행복의 결실을 맺길 간절히 기대.
-갓혁-
나 또한 조그마한 소망과 염원이었지만 4월의 끝자락에는 좋은 일이 있길 기대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염없이 예불을 하였다. 사실 절차나 관례를 모르겠지만 주변 사람들 또한 절실한 마음을 가졌기에 표현했다는 점에 대단한 용기를 드리고 싶었다.
신발을 벗으며 순수한 보살님께 절을 하고 나서야 '왜' 내가 그토록 '아름답고 소중한 사람'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이것이 불교 용어에 따르면 '회개'라고 한다. (자아성찰과 반성만 있는게 아니었다.)
순간적인 성찰을 하늘에 불태워 날려버렸고 나의 심성 또한 천천히 착해짐을 인정하노라.
사실 예불 후 잠깐 느낀 게 있었다.
사람은 성선설이 아니라, 성악설이 맞기는 하나보다. '환경'이 그렇게 사회화하도록 하는 것뿐, 우리가 교육을 받는 것 또한 사회에서 악해지지 말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원통보전은 자비로 모든 중생의 괴로움을 구제하고 극락왕생의 길로 인도하는 관세음보살을 모신 건물이다.
낙산사 담장은 경계를 구분하거나 시선을 차단해 내부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울타리이다. 고유어인 담과 한자어인 장이 합쳐진 것이며, 원장, 장원이라고 한다. 낙산사 담장은 기와와 흙을 섞어 쌓은 와편 담장이다. 조선 세조가 1467년 낙산사를 고쳐 지을 때 처음 만들었다.
담장이라는 말은 결국 합성어이지만 중국과 한국 고유의 불교 융합을 의미하기도 하며, 때로는 한국적인 호국 불교를 의미하기도 한다. 호국불교란 왕권 강화를 위한 불교를 상징한다. 즉, 절대 권력을 상징한다는 것은 당시 조선시대가 청나라에 대항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사용되었다는 의미이다.
내 생각이지만, 당시 낙산사 건립의 의도는 호국불교를 통해 명, 청나라와의 관계를 개선하며 한편으로는 조선의 당위성을 높이려고 했음이 아니었을까.
이 또한 지나가겠지만 잊히지 않겠죠.
부단히 노력해야죠.
긍정과 행복 둘 다.
전통적인 색의 절묘한 조합은 그대로 이어받길 바라지. 한편으로 절제미와 굳셈이 그대로 보이는 색깔의 절묘한 조합은 말로 형용하기 어렵다.
이래서 평소에 한옥을 구경하다보면 한국의 전통적인 미에 대해 한 번 더 곱씹게 된다. 불교 사찰 또한 평범한 서민들의 한옥에서 비롯되었기에 그들의 염원이 물씬 담긴 것은 덤이다.
회자정리 거자필반.
사람만 다녀오고 오는 게 아니다. 내가 맞이하던 찰나와 포착된 풍경까지 그렇게 염치도 없이 의식의 흐름도 없이, 우연하게 다가온다. 아니 이미 다가왔더라.
우리가 평소에 알고 있던 모든 일상의 리듬은 사실 내가 원하지 않을 때 조용히 다가온다.
사랑, 하염없이 다가온다. 의식의 흐름도 없이.
화목, 알지도 못할 때 천천히 다가온다.
우정,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미 옆에 있다.
이 모든 것들의 삼위일체는 오롯이 저 말로부터 비롯된다.
그래서 기억하자.
회자정리 거자필반.
내가 싫은 사람이 떠나면 언젠가는 그 사람의 뒤를 이어갈 분이 다시 나에게 온다.
내가 좋은 사람이 떠나면 언젠가는 그 사람의 뒤를 이어갈 분이 다시 나에게 온다.
내가 좋은 사람과 싫은 사람이 동시에 떠나가면 역행적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인생 모른다.
어차피 갈 사람은 가고, 다시 올 사람은 온다.
그게 불교의 순행적인 원칙이자 진리였다.
고양이들이 또 터를 잡았다. 하지만 사랑스럽다. 행복해 보인다. 나도 행복했다. 이런 곳에 온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일상의 연속 중에 하나임이 분명하다.
일몰 보기 좋다는 의상대에 눌러 앉았다. 사실 하루 종일 2만 보 걸어서 잠깐 쉬고 싶었다. 이내 노트북을 키고 와이파이가 반쯤 열린 틈을 타서 나의 기록을 하나하나 정리해보았다.
꽤 멋진 말을 많이 듣고 보고 즐겼던 '낙산사' 여정이었다.
설악산에서 만난 현자와, 눈 자락 덮인 내원암 스님, 그리고 김선 문화해설가님의 말을 융합해서 설명을 고려했을 때 너무 초조하지 말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침에 짜증 섞인 스트레스가 날지라도 그 또한 내가 살아가고 있음에 근거한다. 죽으면 이런 소소한 자극들조차 받지 못한다는 맥락이지.
그래서, 진혁아 너 또한 열심히 살아가고는 있구나.
하물며 인생의 한 곡선에서, 그것도 30대 초에 홀로 속초 여행까지 다녀오고 아주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게 놀라울 따름이다.
이 글을 적노라면 내가 참 많이 다니면서 사유를 하긴 했나보다.
그동안의 노고와 결실이 뼈저리게 아프지 말고 행복해지길 간절히 바라면서, 이만 글을 줄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