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한 도전인걸 알았지만, 그래서 더 추억이었지.
생각해보니 버킷리스트를 다 실현했던 3월의 어느 날이었지.
속초에서 무엇을 할까 스스로 생각해보고 곱씹어 보기도 하고 때로는 스스로 성찰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이제 앞으로 나에게 남아있는 일정은 밤늦은 시간대에 다시 서울행 버스터미널까지 가야했다.
인근 낙산 터미널에서 서울행 버스가 있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해 보았지만 전혀 잡힐 기미가 안 보였다. 아니- 애초에 이미 막차는 내 앞에서 순식간에 지나가던 상황이었고 순간 식겁한 나는 인근 편의점 사장님께 조심히 물어보았다.
"사장님, 혹시 낙산에서 서울 가는 버스 끊겼나요? (내심 걱정이 많았지만 이내 침을 한 방울 꾹 삼키고)
"아이고, 방금 지나간 게 마지막 차에요. 어쩌나, 속초나 양양까지 가야 하는데 지금 8시 이후부터는 배차간격이 40분 정도 되걸랑."
"아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혹시 실시간으로 확인은 어렵죠?"
"그렇죠. 밤늦은 시간대에는 버스 기사님들이 바쁜가 봐요. 어떻게 할거여. 청년. 여기 게스트하우스 하나 있는데 하룻밤 묵고가-"
"하하하, 아닙니다. 그럼 여기서 양양이나 속초까지 몇 시간 걸리나요?"
"응? 버스 기다릴거야? 차라리 택시 타고 가지-"
"아뇨, 걸어서요."
순간 담배를 무시던 사장님은 5초간 하염없이 멍하니 나를 바라보더니 어이가 없단 듯이 헛웃음을 외치시고는 웃으셨다.
"하하.. 그럼 그렇게 해봐요. 사실 동해쪽 자전거 도로도 잘 돼있으니 차만 조심하고 한번 걸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젊은 게 좋구먼."
(칭찬인지 아닌지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어차피 지금부터는 온전히 생존 본능이 온몸에 곤두 잡힌 나였다. 이때부터 느꼈다. 이게 말로만 듣던 '무계획 뚜벅이 여행'이구나.
그리고... 순간 어느 여행 기사에 작성될 낙오된 30대 청년이라는 큰 글귀가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벌써부터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나는 어째서 천천히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었다.)
그렇다 일단 여기서 미아가 되어도 (사실 그런 경우는 없잖아.) 잘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는 이야기가 있잖아. (비유가 너무 극단적이잖아.)
어쨌든 말이야. 내가 찾아간 곳은 2인 식당이 난무했던 여느 관광지처럼(낙산이 그런 건 아니었지만, 난 홀로 왔기 때문에 대부분 1인 식당이 없다.) 난 조용히 홀로 밥을 먹으며 어떻게 집에 갈지 고민할 곳을 찾아다녔다. 마침내 도착한 곳은 인근 '해맞이 기사식당'이라는 곳이었는데, 아주머니분께서 친절하게 백반 세트를 권유해 주셨다.
"혼자 오셨어요?"
"네, 혼자 왔습니다. 혹시 여기서 서울까지 가는 버스 없나요? 아까 인근 편의점 사장님께 물어보니 속초나 양양시내까지 가라고 하셔서.."
"하이고, 이미 지나갔지. 그분 말이 맞아요. 버스도 지 꼴리는 대로오니까 그냥 인근 숙소에서 하룻밤 자던가 하세요-"
"아뇨, 먹고 양양까지 걸어가려고요."
역시나 아주머니의 반응 또한 '이 새끼 뭐 하는 놈이지?'라는 생각을 하셨을지도 모른다. 5초간 띵하고 울려온 나의 말 한마디에 아주머님도 이내 정신을 차리고 이 말을 건네주셨다.
"젊은 게 좋구먼."
(아니 난 젊어서 그런 게 아니라, 진짜 택시도 안 잡히고 버스도 도통 언제 올지 모르니 내심 걱정만 가득했다고....)
어쨌든, 실시간으로 시외나 서울행 버스터미널 앱을 켜고 계속 찾아보았지만 여전히 낙산을 경유하는 버스는 안 보였고, 결국 마침내 내린 극단의 결과는 바로 양양으로 가는 뚜벅이었다. (이때부터 느꼈다, 나의 극단적인 체력과 정신력을 테스트할 아주 좋은 시간이라고- 누가 이기나 보자, 세상아!)
속초.. 아니 양양의 마지막 만찬이라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뜨끈한 된장국과 여러 반찬들, 특히 키조개 무침과 꼬막무침은 내 입맛을 돋게 하였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갑자기 아주머니가 서비스로 조기를 하나 구워주셨다. 특별한 만찬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뚜벅이로 양양까지 걸어간다는 무모한 도전 이야기를 듣자마자 아주머니가 한숨을 내쉬면서(사실 내 기분) 기분 좋으라고 건네주신 서비스였을지도.
아아아아 속초와 양양 사람들 너무 착하잖아. 이런 관광지에도 마음 포근한 사람들이 있다는 점에 한 번 더 두턱대는 가슴을 움켜잡고 밥을 맛있게 먹었다. 이 또한 하나의 배려였겠지. 감사합니다.
유튜브 영상 찍으려고 별짓 다했지만 결국에 왼쪽 필라 신발에 바닷물이 적셔졌다. 순간 짜증이 확 밀려왔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 추억이잖아!
시작되었다. 마지막 양양의 밤바다를 마지막으로 20분간 해수욕장 근처를 거닐면서 다시 마음을 부여잡고 양양으로 천천히(아니 사실 재빠르게,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이동하였다.
사실 난 평소에 뚜벅이를 자주 하는 사람이라 실시간 어플이 알려주는 저 시간대보다 20분 더 감축된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어차피 양양에서 서울까지 가는 버스가 밤 11시 30분이었다. 당시 시간은 오후 8시 30분 정도. 그러니까 내 계획이 뭐였냐면 말이지.
오후 8시 30분 - 오후 9시 30분 (양양 시내까지 걷기)
오후 9시 30분 - 오후 11시 20분 (카페에서 힐링 및 양양 시내 투어)
오후 11시 30분 - 양양 버스터미널 입장 후 서울 출발하기
다음날 새벽 2시 - 고속 터미널 도착
이걸 과감히 도전하려고 노력했던 나였고, 충분히 가능성 있다고 생각했다. 중간에 아무리 늦어도 1시간 공백이 있기 때문에 느긋하게 이동하기로 했다. 어차피 양양까지 걸어가는 방면에 사람들이 없을 거라는 생각도 당연히 들었고, 마스크를 느닷없이 벗기도 했다. (그렇게 고생이 시작되었다. 왜 하필 마지막 날에 이런 시련이? 아니야 다 추억이야 ._.)
역시나 밤하늘의 펄-
합천 시골 외갓집에서 맛보았던 별들이 속속 나오기 시작했다. 똑같은 데자뷰였을까- 아, 추석과 설날이 그리운 이유는 무엇일까.
인근에서 거름 피우는 냄새가 확 나오기 시작했다. 느닷없이 그 방면으로 고개를 돌렸고 순간 무의식적으로 걸을 뻔했다. 신선한 공기가 내 코를 자극했고 이내 발걸음 또한 여유로워지기 시작했다. 차들은 여전히 양양 시내나 속초 사이를 이동하며 천천히 걷는 나를 무시한 듯 보였지만, 이 또한 나만의 사색을 즐기기 위한 또 다른 시간이었다.
걸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행의 취지는 저번 강릉과 다르게 조금 더 생산적인 일들이 많았던 여정이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사람들과 노곤히 이야기를 했다는 점은 또 나만의 일기 작성에 도움이 되겠지. 인문학적으로 말이야.
-버킷리스트를 다 채웠으니 다음은 어떤 이야기를 기록해볼까.
-다음날 떠날 사람들과 진득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꽤나 도움이 되었어.
-여행이라고 읽고 힐링 여정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한편으로 모든 걸 정리해 보았을 때, 앞으로 4월의 나에게 들려주고 영향력을 발휘할 좋은 계기가 되었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어서 오세요, 양양에.
얼마나 걸었을까. 인적이 없고 점점 차량의 수도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다시 내비게이션을 켜보았을 때 40분 정도 소요된 시간이 보였고, 바로 앞에는 나지막이 불이 켜진 건물들이 내 시야에 확 들어왔다. 드디어 양양 시내에 도착한 느낌일까.
순간 평창 군부대에서 겨울에 행군했던 당시 상황이 떠올랐다. 힘들었지만 결국 그렇게 싫어하던 자대로 복귀했던 2013년의 추억들. 이게 사람의 귀소 본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양양은 나의 집이 아니었지만 그저 사람들이 있다는 그 하나만으로 나의 마음은 안전하게 달래주었다. 덕분에, 이 모든 역경을 견딘 나에게 박수를 치기로 결심했고 결국 속으로 '무야호'를 10번 외친 듯하다.
순간 표지판이 번쩍이면서, 양양 시내에 온 걸 환영한다는 문구를 보자마자 감격의 눈물을 흘렀다. (사실 힘들었다기보다는, 내가 이 힘든 1시간의 무계획 뚜벅이를 일궈냈다는 그 자신감과 성취감이었지.) 그리고 바로 지도를 키고 인근 어디 밤늦게까지 하는 카페가 있는지 체크를 해보고 그곳을 향해 이동하였다. 이내 사뿐해지는 내 발걸음은 춤을 추듯 날아갔다.
탐탐과 스타벅스 등 나름 유명한 브랜드 카페들이 있었지만, 굳이- 양양에서도 그 안락함을 찾겠다는 심보를 버리기로 했다. 마침 난로와 연탄으로 디피가 되어있던 어느 고즈넉한 카페를 찾았다. 사람들도 꽤 있었다. 드디어 사람들 사이에 내가 생존했다는 모습을 드러내는 것인가. (엔프피 특징은, 그냥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행복하다-)
굳이 감격의 외침을 그들에게 알릴 필요는 없었다. 흐뭇해진 나의 눈가 주름이 그들에게 선해 보였을 때, 이윽고 사장님이 커피를 주문하시겠냐고 물어보셨다.
"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 주세요!"
1시간 동안 목을 축이지 못해 갈갈했던 나의 목구멍에 한줄기 희망이 들어왔다. 시원하게 밀려오는 커피를 말로 형용 못했지. 행군 끝나고 갓 돌아온 신병이 정수기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것처럼 말이야. 어쨌든 잠시 무거웠던 가방(당시 가방 10kg, 뭐야 단독군장 겸... 행군이네)을 재빠르게 뿌리치고 얼른 내가 그동안 모아두고, 추억이 깃들었던 굿즈와 팸플릿, 리플릿을 꺼내보았다.
속초의 추억들이 들어있다. (양양은 왜 빼냐-)
정리를 해보았다. 속초의 리플릿과 팸플릿, 소호 259에서 받은 자석 굿즈와 명함, 그리고 고구마쌀롱에서 구매한 엽서, 속초 동명동 마스코트 사진들, 풍경과 골목길 담벼락이 깃든 로컬 사진, 낙산사 영수증, 그 외 기사식당과 면사무소에서 먹은 장칼국수 영수증까지.
이 한마디로 나의 추억으로 되살려짐이 분명하다. 기록을 하기로 했다. 얼른 집에 와서 나의 기록 유산물에 붙여질 생각에 흥미진진했다. (허나 집에 오자마자 뻗은 나를 생각해 보니, 역시나 게을렀구나!)
그렇게 흐뭇하게 사진 찍다 말고 사장님께서 조심스럽게 물어보셨다.
"손님, 저희 마감시간이에요- "
시계를 보니 아직 10시인데, 이렇게 일찍 끝낸다고? 아, 알고 보니 코로나 타격이 급격하게 상승했던 터라 영업시간을 일찍 줄이기로 했다고-
인스타그램에 공지가 떴지만, 사실 그것조차 확인하지 못한 나를 반성한다.
이내 반쯤 울상이 될 뻔한 나였지만, 인근 조용한 양양 시내를 한 바퀴 둘러보고 나서야 겨우 오후 11시가 되었다. 30분 남은 상황에서 인근 버스터미널로 이동했다.
양양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 기다리기.
얼마나 기다리고 있을까. 속속 마지막 양양행 막차를 기다리는 사람 2-3명도 보이기 시작했다. 캐리어를 끌고 온 사람으로 보아하니 이 분도 홀로 뚜벅이 여행 오신 걸까, 아니면 비즈니스 업무로 오신 걸까.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싸클 노래를 키며 잠시 눈을 감았다. (사실 조금 피곤했다. 하지만 긴장된 터라 잠은 오지 않았다.)
빵빵 거리는 누군가의 사이렌 소리를 들었다.
"손님, 서울행 마지막 막차입니다."
"아, 네네. 감사합니다 !"
순간 기쁨의 환호가 터질 직전의 나를 보자마자 기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지.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나요? 늦은 시간에 서울 가는 게 좋은 게 아닌데"
"네 그런 일이 있었던 여정이었답니다."
뭐, 카드 단말기에 티켓을 태그하고 삐익- 처리되는 순간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16번 오른쪽 버스 좌석에 앉아 천천히 마음을 내려다 놓았다.
그리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냥 편해서 말이지.
그렇게 끝난 걸까. 이내 10분 동안 인스타그램을 하다가 잠에 들었다.
도착하니 기사님이 날 깨우고 있었다. 거의 반 실신 직전이었다나 뭐라나. 어쨌든 그 우스갯소리가 즐거워질 때쯤, 겨우 집에 도착하였고 마침 엄마가 남겨 놓은 메모지를 보는 순간 나는 빵 터졌다.
엄마는 당시 내가 속초에 가있는 동안 친구와 함께 제주도에 갔던 모양이다.
5만 원 두고 갈 테니 맛있는 거라도 먹으라는 그녀의 잔소리 .. 아.. 아니... 어림직한 목소리가 이내 들려오는 듯하다.
글씨가 날린 걸 보니 엄마도 꽤 놀러 가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그렇게 속초 여행 끝.
나중에 에필로그 작성해야겠다.
<다음화에 마지막화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