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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혁 May 14. 2022

한요한개론

가사 속에 그의 인생이 녹아들어갔다.

락커이면서 동시에 힙합퍼 한요한을 기억하는, 중간지점에 있을 당신들을 위해 이 학개론을 펼칩니다. 지금 시즌철 대학교 축제라서 갑자기 올려봄. (사실 감성 충만하라고)


순수하고, 원초적으로 락커이고 싶었지만 대한민국이라는 음악 획일적인 사회에서 락커라는 업종을 꾸준히 지키면서 돈을 번다는 것은 참 쉬운 일이 아니었다.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락을 대표했던 밴드를 꼽자면 그나마 윤도현 밴드(일명 YB), 크라잉넛, 트랜스픽션, 서태지 밴드, 울랄라세션, 버스커버스커 등 최소 4-5명이 모여 밴드가 활성화되었다는 점에서 현재의 락커들과 다소 차이가 있다. 한요한은 스스로 락을 대표하는 힙합퍼가 될 수 있을지 고군분투했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자신의 정체성을 서서히 밝히기 시작했다.



네 숨결


대표적인 노래 습작 중에 하나였다. 평소와 달리 한없이 재미없던 일상에 자신의 의미를 되살리기 위한 노래가 고스란히 보인다. 너의 숨결은 자신의 '인생의 미래' 상황이면서 동시에 '사랑하는 연인들에 대한 진득한 관계 완성'을 의미한다. 스스로 처참하게 무너지는 과정을 아프지만 달콤하면서 직설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이 참으로 대단했다.


가사 중 일부

우린 젊음을 낭비했지

서로의 진실에게 말이야

화난 얼굴로 맞이했지

너의 진심에게서 말이야

혼탁해진 우리 마음에

온기를 다시 넣어두자

말라비틀어진 나의 마음에

니 숨결을 뿌려주라

니 숨결을 뿌려주라


의의


서로를 사랑하면서 서서히 지워지는 모순점을 이겨낸다는 점은 참 쉬운 게 아니다. 여기서 사랑이란, 연인 관계뿐만 아니라 친구, 그리고 가족과의 모든 부분 요소를 포함한다. 한편으로는 망가진 자신의 일상이 누군가로부터 본인이 구사회생하길 간절히 바랐던 요망이 아니었을까 한다. 특히 현 청년들이 현생에서 치근덕거리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연애 과정에 비유하여 결국에는 자신의 업보를 인정하며 끝에는 추락하는 청년들을 다시 부여잡으며 밝게 빛나는 나를 다시 잡고자 했던 한요한의 짙은 의지가 보인다.


교훈


당시 2020년 3월에 발매한 무려 코시국 3개월 차 이후 노래였다. 미리 예상을 했다듯이 이 노래가 가지는 직설적인 의미인 '소통의 부재'와 더불어 진득한 의미를 지닌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편도 기준'을 적절히 섞은 상황이 참으로 기가 막혔고 코가 막혔다. 3번 이상 곱씹다보면 이내 사랑 노래가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당시 20대 후반에 들었던 노래였고,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내가 진심으로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책임감을 절실히 다 하고 있는지 그 모습을 보여주고자 만들었던 노래 같다. 마치 내 현생을 대변하듯이 한요한 또한 당시 청년들이 얼마나 힘든 사람 관계를 지니고 있는지 넌지시 보여주고 있는 행태였다.


1.2GB


N드라이브 기억하시는 분 계시는 분? 지금은 MYBOX로 바뀌었다. 일종의 클라우드 저장소라 보면 된다. 2018년 기점으로 명칭과 보관 정책 바뀐 듯하다. 그전에는 핸드폰에서 자연스럽게 연동될 수 있도록 설정만 하면 그날그날 찍은 사진이 자연스럽게 N드라이브로 이동했다. 오늘날 따지면 마치 갤럭시의 ONEDRIVE 같은 느낌이다. (실제로 원치 않는 술주정 사진도 찍혀있다.) 한요한은 그때 아무리 철이 없어도 의미가 짙었던 당시 사진들을 실수로 (아니면 고의적일지도) 클릭하여 당시 감성을 대변했던 노래를 작성하였다. (마치 이 느낌은 구남친이 여친한테 전화하는 생뚱맞은 상황이다.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무시하지 마, 상대방에게 엄연히 스트레스 일수도 있다. 하지말자... 누구한테 이야기함..?)


가사 중 일부

1.2기가 때문에

너와 나의 예의를 깨

일단 자동 동기화 해제를 누르고

다시는 안 쓸래

몇 분 뒤 내 lcd엔

빨간색 이름이 찍혔지 메시지엔

왜 전활 했냐 묻네


의의


당시 아찔하게 반쯤 취해있던 한요한은 결국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녀에게 전화를 건다. 그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감성이 돌연하게 머릿속을 지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내 자기 편에 있던 여자친구와 전화가 될 리가 없다. 그럼에도 당황하지 않고 이내 엔 드라이브를 펼치고 즉각적으로 2016년 당시 사진들을 무의식적으로 구경하기 시작한다. 불편했던 자신의 기억은 현재였고, 과거에는 만연 행복했던 자신의 표정이 도중에 페이드아웃된다. 한요한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뿌듯한 나머지 스스로를 속이지 않기로 작정한다. 한 번 더 그녀에게 전화를 했지만 여전히 받지 않는 그녀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남기고는 조용히 자신의 엔 드라이브를 지운다. 1.2기가는 그대로 쓰레기통에 잠시 버려진다. 이내 영구적인 삭제와 함께 추억은 이때 기점으로 끝나기로 결정했다.


교훈


술이 원수다. 술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그리워지고 다시 한번 용기를 가지게 된다. 하마터면 한요한처럼 망연자실하는 자신의 모습이 보일까 봐 꽤 노심초사했던 과거가 떠오른다. 그 당시에는 내가 무엇 때문에 (어떤 이름 모를 무의미한 자신감과 자존심이 동시에 솟구쳤는지) 그러한 돌발 행동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절대 술 마시고 폰을 함부로 누르지 말자. 사람에 대한 예의지가 기대치에 대한 후회도가 그만큼 비례하는 법이더라. 20대로 돌아간다면 추억으로 남겠지만 당사자에게는 꽤 고통스러운 트라우마로 변질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Go away


커드 코베인이라는 유명한 사람이 있다. 또한 이 사람이 속한 너바나라는 유명한 외국 밴드가 있다. 그는 유명세에 걸맞지않게 결국 자살한다. 스스로 원망하고 인생에 대한 후회가 자만했던 이유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처음에 한요한은 이 노래를 듣고 스스로 망연자실한다. 하지만 망연자실할 여유를 떠나기 전에 스스로 묻기 시작한다. 과연 내가 이 망할 사회에서 스스로 일궈낼 수 있는 기쁜 사건이 존재할지 말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한탄과 하소연이 가득한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결국에는 이겨냈다. 하지만 작품은 그렇게 좋은 이미지가 없었다. 누군가를 잊기 위한 후회 가득한 첫 마디가 시작되었다.


가사 중 일부

왜 생각을 되새기는데

반복하는 나를 멈춰

소년은 시간을 건너

너와 나는 중심에 섰죠

제발 살아가게 좀 나를 버려지게 둬

그게 안 된다면 나를 도망쳐


의의


작중 정말 간단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말로 설명했던 가사였다. 하지만 본인이 느끼는 감성을 이렇게 쉬운 단어로 표현하다 보니 오히려 힘든 상황을 역으로 부푼 듯하다. 마지막에는 제발 꺼지라는(go away)라는 다소 자조 섞인 말을 연거푸 외친다. 그 뒤에 있어서 한요한은 스스로 절망과 자책을 이어가기보다는 오히려 그녀(아니면 사랑하는 사이)에게 제발 꺼지라며 이 상황을 만든 상황에 대해 회피하고 책임회피를 하는 성향을 글로 표현하였다. 일부러 작성한 의미는 아닌 듯하다. 중간에 '소년'이라는 의미가 감성 어리고 짙게 표현된다. 아직 순수했던 본인이기에(그렇게 스스로 느꼈나보다. 때묻지 않은 연애란 그런 것인 듯.) 살아가기 힘들도록 왜 자신을 갈구하고 아프게 하는지 그 근본 이유를 묻게 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그 '소년'은 정답이 없다. 한요한은 그렇게 자신만의 망상을 만든 셈이다.


교훈


인간관계란 당연히 어렵다. 하지만 그 과정을 어떻게 이겨내는지가 참으로 중요하다. 누군가는 친구들과 술로 풀거나, 아니면 색다로운 취미 생활(등산, 암벽등반, 자전거 등)로 자신의 일상을 조금 더 편안하게 이겨내려고 하겠지만 다 제각각 사연에 따라 하소연의 농도가 다를 뿐이다. 차별이 아닌 차이라고 했다. 사람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기준은 차이에서 비롯된다. 이해관계의 상충성이 존재하니까 당연한 건다. 숨을 쉰다는 것 자체가 힘들다는 억지 섞인 하소연을 펼치지만 해결책은 끝까지 이루어지지 못한다. 알고 보니 그 사연은 그 누구보다 본인이 잘 알 테니 말이다. 사람 관계는 참 어렵다. 그래서 재미있다. 대미를 장식을 사람의 모순점을 극복하는 그날까지 우리 모두 Vamos.


동창회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 당시 순수했던 본인을 감미롭게 표현하였다. 간만에 어느 동창회에서 술이 떡이 되어 인사불성이 되었던 한요한은 이내 택시 대리를 겨우 잡고 집에 간다. 장소는 서초구였다. 새벽의 밤공기는 여전히 서늘했다. 창문을 잠깐 열어 멀미를 억제하고자 했다. 기사 아저씨께 적당히 속도 유지하며 가자며 설득시켰다. 그리고 이내 도착하자마자 바로 앞에서 본 모습에 숨겨놓았던 모든 후회와 기쁨을 순식간에 구토해버린다. 하지만 전화해버렸던 그녀와의 진득한 시간이 너무 아름다웠고 소중하여, 다시 한 번 더 네가 보고 싶어 연락을 취한 뒤 그녀를 향해 머리가 아픈 채(숙취) 철떡서니없이 이동한다.


가사 중 일부

동창회 끝나고 대리를 불렀지

서초구 서초동이요

아저씨는 다 알지

속이 울렁거렸어 취한 것 같았어

후회할 거 알면서도

난 전화를 걸었어

hey girl 나 요한 집에

잘 가고 있어?


의의


미리 불현듯 힘들었던 미래에 비해 과거는 다소 아름다웠던 한요한의 연애관이 담겨있다. 아픔은 비로소 행복이 된다는 말도 안 되는 말을 뒤로한 채, 오히려 반대로 행복한 그 시절이자 철없던 그 상황이야말로 자신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인터뷰 중 한요한이 이런 말을 한다.


"과거에 만연했던 경험 있으신가요? 그게 1년 전이던, 2년 전이던, 아니면 더 오래되었어도 그 상황이 후회가 되지 않는다면 지금 잘 인생 잘 살고 있는 겁니다. 적어도 추억은 하나 만드셨네요."


교훈


때로는 옛 기억에 추억이 매달리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현재를 바라보면서도 한편으로는 과거를 회상한다. 그 이유는 그 사랑했던 사람들과의 관계라기보다는 그 당시에 어렸던 나를 다시 회고하는 좋은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성숙해지면서 스스로 남들과 다를 것이라는 부질없는 이야기는 언제나 변수가 될 예정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변수마저도 아름다운 순간이 있다. 과거는 단지 아름다운 우리의 성숙과정이 아니었다. 그 당시 대표했던 우리의 웃음기가 머금었던 순수한 시절이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나의 2017년. 엔 드라이브를 돌려본다. 그때 서로 행복해하던 사람들과 나의 관계는 여전히 순수했다. 여전히 입꼬리가 쭈욱 올라갔던 나의 미소는 아름다웠다. 그래서 참으로 순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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