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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혁 May 13. 2022

기리보이학개론

가사 속에 그의 인생이 녹아들어갔다. 

오늘 성균관대 인문캠 축제에서 기리보이가 등장했다. 미리 알고 간 나도 대단했다. 사실 나 기리보이 엄청 팬이다 (ㅎ)


시간은 대략 오후 9시였다. 성대 친구들 (일명 skku 스꾸)이 기리보이를 열광할 정도면 말 다 했다. 물론 나도 그중에 한 명이었다. (다시 대학생이 되고 싶어 호응도 해보았지만 체력이 뒷받침이 안된다.) 친구 녀석은 싸이라도 왔으면 좋겠다고 서성거렸지만 자연캠(수원)에서 이미 공연을 한지 오래였다. 지난주 5월 4일 싸이 9집 영상이 최초로 유튜브에 올라왔다. 아무튼 지금은 홍보할 여력도 없다. 왜냐하면 기리보이에 대해 일기를 작성한다.


5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기리보이라는 연예인이자 가수, 그리고 프로듀서를 본 첫 상황이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한때 우리 대학교 무대공연하러 왔을 때였지. 그때 당시에는 무명으로 다른 가수들 피처링을 해주거나 믹싱, 녹음해주는 일종의 감독 역할을 자진거수했던 연예인이었는데 2016년부터 점차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마치 지드래곤과 같다.


일종의 암시였을까. 사실 무한도전 때 잠깐 나왔었다. 아이유와 지드래곤, 태양, 그리고 유재석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심지어 그 옆에 자이언티까지 있었는데 기리보이의 존재는 그렇게 확 뛰어나던 느낌이 아니었다. 다소 외관적으로 보았을 때 '아 얘는 딱 봐도 음향감독 인턴 느낌이다.' 이런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때 한참 자신의 명곡을 만들 때 입지를 조금 더 넓히기 시작했던 노래가 있었는데 바로 '호구'였다.





호구


자기를 깔보는 여친에 대한 감성을 대변했다. 지금은 구설수가 넘치는 진지한 이야기가 오고 가겠지만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사실, 기리보이가 힘든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프로듀서로 전향할 때 남들과 타협해야 성공할 수 있었던 음악세계에서 수수료 0.01프로를 조금 더 올리기 위한 청년 중에 한 명 또한 기리보이였다.


뭐라도 성공해야하는 시점에서 자기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관계에서 사람이 더 예민해질 수밖에 없던 상황은 그 누구보다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럴 때일수록 옆에 있는 돈독한 여친이 위로를 해줘야 하지만 이미 클럽에서 놀고 있는 상황을 들으면서 마음의 상처는 물론이고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며 자신의 하소연을 가사에 담은 노래이다.


그게 지난 과거여서 망정이지, 어쨌든 1년 동안 다시 제정신을 차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기 시작했다. 결국에 자신의 작품을 이렇게 표현했지만 인터뷰에서는 그렇게 썩 좋은 내용이 아니며 심지어 자기도 마음이 불편하다고 했다. 완벽한 작품으로 어그로를 끌기 위한 하나의 작품이 아니었다.


가사 중 일부


가슴의 찢어짐을

이기는 건 너

답장의 기다림을

이기는 건 너

너 그래 너 바로 너야

필요할 때만 넌

나를 사용해도 좋아

너 정도 여자

만나려면 어디까지

감당해야 하니


교훈 : 사랑 관계는 장난이 아니다. 있을 때 잘하자. 특히 힘들 때 도와주는 관계가 진득한 관계이다. 사랑하는 관계일수록 더 그런 것이다. 누구 하나 이해한다는 말은 버려두자. 이해를 하기 전에 사람 상황에 따라 적절히 판단하며 상대방을 위로해 주는 게 당연한 이치인데 그것조차 모르거나 공감대가 없다면 애초에 연애를 바라지 말자.


의의 : 이 노래를 들으면 기리보이가 그 당시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랑 관계를 글로 표현한다는 것, 그리고 감성 어린 진실적인 마음으로 대변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게 아니다. 그 누구도 사랑을 하다 보면 싸울 수 있는 게 삶의 지혜이자 이치이다. 누가 잘못됐다고 보면 안 된다. 그저 사람 간의 소통의 부재요, 오해의 편견 입지요, 아니면 극단적인 차별일 수도 있겠다. 물론 맨 마지막 후자면 감당하기 어렵다. 아.. 이 글은 내가 2년 전에 겪은 나의 연애관과 비슷해서 적어본다.





호랑이 소굴


한밤중에 호랑이 소굴로 가는 정상적인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기리보이는 그 반대로 생각했다. 호랑이 소굴로 가야 자신의 이 힘든 시점을 잠시나마 도피할 수 있다고 믿었다. 여기서 호랑이 소굴은 '서울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일종의 도피처이자 유토피아'이다. 그러니까 호랑이 소굴이 아닌 평화로운 초식동물이 살고 있는 공간은 사실 '서울'이라는 점이다.


이게 말이 되냐고 물어보겠지만 나도 어느 정도 공감이 간다. 역설적인 표현이라고 할까. 가끔 문학 공부하면 때로는 글쓴이가 도대체 왜 이런 말을 썼는지 10번 곱씹어야 이해한다. 기리보이는 이 노래에 자신이 얼마나 의미가 불분명한 존재이며, 현실로부터 도망가고자 했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중간에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하는 재키가 등장한다. 재키 또한 호랑이 소굴로 가고 싶었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호랑이 소굴로 도망가는 기리보이를 디스하는 노래였다. 그러니까 깔보는 피처링이 넌지시 얹혀있다.


오히려 이 노래를 기획했던 기리보이가 인터뷰를 한다. 연예인 또한 서울의 이면성에 사로잡혀 본인의 가치관이 정직하진에 대한 유무를 궁금해하는 중이라고 한다. 가치관의 변화가 서울이라는 매개체에 의해 점점 사리분별이 어려운 점을 기리보이 본인과 재키라는 타인을 중점으로 비교 설명하고 있다. 참으로 역설적이되 재미있다. 이제서야 이해한다.


가사 중 일부


너무 빠른 세상에서 걸어 다녀

계속 벌어 나는 계속 벌어

몇 번 넘어져도 나의 커리어는 떳떳

또 멀어져 가네 나의 고향 서울

멍청해지지 돈을 벌면

친구들은 하나둘씩 떠나가

...


날 조용히 묻어줘 서울 아닌 곳에

그때라도 맘 편히 쉴 수 있게


교훈 : 어느 대한민국 사람처럼 서울이라는 희망찬 곳은 마치 하나의 성공담의 일부로 작용될 수 있겠지만, 사실 반대급부를 의미한다. 소시민과 정치인들도 서울 하면 환장에 죽 쑤지만 연예인이라고 다를 바가 있을까. 하지만 난 참 스스로 반성하는 기회도 가진다. 서울에 하나의 집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은 물 건너 갔지만, 왜 자꾸 서울을 고집할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싶다. 일종의 성찰을 바란다면 이 노래를 듣고 나를 다시 반성하게 되었다. 서울은 그저 허구였다. 그저 성공의 과정 중에 하나였지 결과가 아니었다는 점이었고 만약 결과가 된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모순점과 힘든 과정이 있었을지 스스로를 비판하고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의의 : 도시하면 보통 삶의 성공을 의미하지만, 한편으로는 애매한 불안과 극심한 스트레스를 제공해 준다. 그래서 이러한 아찔한 곡예에서 벗어나기 위한, 불분명한 미래를 지닌 서울에서 도피하기 위해 기리보이가 서울에서 도망가고자 선택했던 곳이 바로 '호랑이 소굴'이다. 한편으로 슬프지만 이게 정상적인 생각을 지닌 우리들의 보편적인 내심일수도 있다. 이해한다. 최근에 기리보이가 오은영 금쪽 상담소에 출연한 적이 있다. 그때 스윙스 형한테 담배를 던졌다고 하소연을 하며 스스로 자책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별것도 아닌 상황이었다. 물 놀이를 하는 과정에서 스윙스가 계속 재촉하니 본인이 화가 나 스윙한테 담배를 던졌다는 썰인데 아무리 독자들이 화나고 그렇게 예의 없다고 편견을 가지겠지만, 도시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어지간한 스트레스가 당연하다고 느꼈던 장면이었다. 연예인이라고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나 또한 호랑이 소굴로 가고 싶다. 호랑이를 잡아 그 자리를 내가 대신하고 싶다. 기리보이처럼 말이야.




하루 종일


그래도 평소같이 마음이 편해지는 날이 있겠지. 비록 과거의 힘든 나였지만, 그게 기리보이였다면, 더군다나 하루 종일 고심했던 일상을 던져버리고 훌랄라 떠나고 싶은 그 마음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날에는 평소처럼 누군가가 보고 싶은 날이 있기 마련이다.


본인을 호구로 보았던 그 여느 때가 떠올랐는지 다시 기록을 남겨본다. 역시 사람은 추억이 미화되나 보다. 현재진행형으로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 그것 또한 하나의 허구였다. 이미 떠나간 그녀를 그토록 미워했던 기리보이는 이내 다시 침착하게 글을 적기 기록한다. 그동안 그녀와 함께 했던 여러 추억을 다시 곱씹으며 사진첩을 보면서 옛 기억에 회상된다. 하루 종일 그녀를 기억하기 위해 이 글을 적어간다.


가사 중 일부


하루종일 너와

너무 세게 안다가

갈비뼈를 부러뜨릴 뻔했어

빠른 시일 안에

너를 갖고 싶어

어떻게 하면은 되겠니

술을 약간 마셨지만

혀는 꼬이지 않고

술에 힘을 대여했어

일은 꼬이지 않고


교훈 : 지나간 시점에 다시 돌이킨다는 것은 이미 늦은 것이다. 마치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과거로 돌릴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이제서야 느낄 수 있다. 그녀를 놓치지 말았어야지. 그날 화났더라도 이해하고 넘어갔어야지. 왜 그랬지. 남자는 단순하다. 헤어지고 그 당시 상황에 대해 열불나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결심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서서히 생각이 달라진다. 여자와 정반대였다. 기리보이 또한 그런 감성을 지닌 채 스스로 한탄하기 시작한다. 어쩌면 우리 인생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의의 : 연인이든 뭐든지 간에 사람 인연은 시작과 끝에 대한 정답을 알기 어렵다. 그래서 인문학자, 혹은 인류학자, 문학 계열 전공분들이 사람 관계를 그렇게 절실히 매달리면서 인정하고 이해하라고 달달 볶으시는 이유가 있다. 고대사부터 시작해서 현대사까지의 모든 과정은 사실 사람에서 사람으로 시작된다. 우리는 그조차 모른다. 돈이 사람이 없을 때 확 튀어나올까. 점점 AI 화 되어가는 사이버펑크 시대에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할지 그 맥락 또한 넌지시 담겨있는 노래이다. 인연을 떠나서 친구들, 가족들, 심지어 그토록 싫어했던 전 여자친구와 상사까지 나의 헛된 중점에서 서로 상용 작용을 했다는 점은 무시 못 한다. 그래서 인간관계가 어렵다는 것이다. 기리보이는 이 노래를 다시 부드럽고 은은하게 풀어냈지만 사실 가사 속을 잘 살펴보면 얼마나 후회하고 자신의 용서를 바라고 바랐는지 이해할 수 있는 맥락이 숨겨져 있다. 있을 때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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