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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혁 May 12. 2022

대한민국 프리랜서 화이팅

갓혁의 일기




정녕 맞다는 직업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하고 달려왔던 우리들이었을까. 세상은 그렇게 밝은 미래와 감성이 깃든, 마치 일본 버블경제처럼 1980년대를 대표하지는 않았다.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우리는 본인의 의지와 열정을 불태워가며 누구도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마저도 부딪히고 깨뜨리려고 노력했다. 불과 50년 전 이야기로 거슬러간다면 그때 그 젊은 분들의 성공담이 우리 현 청년에게 통할지는 모르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청년을 대표한다는 누군가의 억압적인 목소리와 불신 섞인 인간들의 목소리에서 한 평생을 살아왔다. 뼈를 갉아먹으며 곱씹으며 어느새 30대 초반이 된 나에게 잠시 통찰력을 깃들게 해줄 새로운 사람들이 필요했다. 그런 사람들은 내 인근, 심지어 근처에 머물지는 당연지사 의구심만 들 뿐이다. 나는 누구였을까. 그리고 우리는 왜 함께 이 사회를 부둥키며 헤쳐 나아가는 것인가. 본질적인 질문에 앞서서 프리랜서라는 직업관에 대해 잠시나마 설명을 하려고 한다.


1. '월급루팡'은 꿈에도 꾸지 마!


불과 며칠 전, 어느 어르신이 나에게 한 말이었다. 당연히 우리 부모님은 아니었다. 한 명의 자식이라도 이 문드러진 사회에서 살아남겨야 하는 게 부모님의 이치이자 마지막 책임감이라고 설명하셨다. 그럼 누군가의 걸걸 섞인 말투였을까. 내 주위 사람 이야기였다. 내 지인 중 한 명이자, 나와 가장 오랫동안 함께했던 친구의 부장님이 이 말을 했었다. 정작 본인은 그 나이를 처먹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 왜 본인은 대리라는 직급으로 가기 전까지 허무맹랑한 말과 현실성이 덜떨어진, 이중적인 말을 들으며 일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죄책감이 들었다고 한다.



죄책감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친구야. 난 이 말을 듣자마자 5초간 멍 때렸다. 과연 이게 사람이 할 말인가. 그 부장이라는 녀석의 콧 방망이를 한대 치고 싶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은 더욱 겸손해지고, 심지어 본보기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공인적인 행동을 일조해야 하는 게 아닌가? 친구 녀석 나랑 술을 마시더니 어느새 눈가에 짜증 섞인 눈망울을 연거푸 흘리더라. 30대라서 울지 못한다는 것은 다 헛소리이고 개소리이다. 우리는 아직 젊다. 오히려 돈을 벌려고 들어온 사회적인 시스템 안에서 그저 나사 바퀴 조이는 산업혁명 노동자처럼 살아가라는 의미인가? 지금이 무슨 쌍팔년도 세대도 아니고 참으로 열불 나는 소리만 일삼고 있었다.


이 말에 일조 섞인 친구의 말이 더 가증스러웠다. 아니- 사실 세뇌당했나 싶었다.


"그래도 앉아서 따박따박 돈 벌고 얼마나 좋냐. 아무리 상사나 그 윗대가리가 개 난리를 피워도 나는 하나의 톱니바퀴인 걸 어쩌겠냐. 그래도 조금만 버텨야지."


이게 현생을 살아가는 장그래인줄아나. 본인이 피해자이면서, 보이지 않는 사회적인 약자에 속하면서 이 말을 펼친다는 게 참 마음이 아팠다. 그렇다고 말이야. 나도 할 말은 아니다. 프리랜서라는 직업을 이 친구에게 꺼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야, 프리랜서라서 더 좋은 줄 아나본데. 너 그거 좋은 거 같긴 해. 차라리 월급루팡해라. 나 있잖아. 요즈음 슬럼프 와서 작업이고 일이고 뭐고 다 안되는 거 너도 알고 있을 거야. 아니 몰라도 된다. 그냥 그 자리에 앉아서 네가 할 수 있는 데에 만족하고 살아가면 그게 좋은 거야. 당분간은 네가 위너야. 난 당분간 루저 할게."


이 말이 사내 녀석들끼리 위로한답시고 했던 말이었다. 소주를 연거푸 마셨다. 마시고 마시다 보니 본론적인 본능 섞인 서로 간의 하소연이 들끓기 시작한다. 친구 녀석, 조만간 대리 승진할 모양인데 부장이란 녀석은 계속 여자 꼬시며 부킹 나이트에 데려간답시고 자기를 따라오라고 한다. 짜증 난다. 갑자기 짜증 난다. 이 친구 여자친구 있는데 또 할 소리인지 모르겠다. 친구 입에서 전해지는 인용 섞인 말이라도 짜증 났다. 순간 앞이 컴컴해졌다. 당장 그 부장을 내 앞에 고이 모셔 원퍼치 쓰리강냉이를 날리고 싶을 심정이었다. 이 말이 내 표정에 드러났는지 나에게 또 하소연을 하는 친구였다.


"넌 그래도 편한 시간대에 작업도 할 수 있고, 스케줄 조율 가능하고, 특히 사람 관계 연연하지 않잖아. 마지막이 제일 강점 중에 장점 아니겠냐. 회사원은 항상 쓰레빠 게레빠야. 알다가도 몰라. 내가 저 사람 윗사람 아랫사람 치근덕거리며 사내 영업을 하는 건지, 아니면 황제 뒤치닥거리는 내시 놀이를 하는 거지. 참 말세야."


"그래도 고민이 있으면 좋은 말 아니겠냐. 야, 심지어 고민 없는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도 없어. 더군다나 일을 하다 보면 너뿐만 아니라 다 똑같은 이야기하잖냐. 난 솔직히 말해서 공감대가 없어서 미안하기 그지없다. 사실 이게 단점이야."


2. 프리랜서는 친구가 없다.


이 말을 듣자마자 친구는 무슨 개소리냐고 나에게 눈꺼풀을 슬쩍 올리더니 노려본다. 짜증 섞인 말투라기보다는 의아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이지. 사실, 말이다. 나에게는 일적인 친구가 없다. 그러니까 사업적이고 비즈니스적인 파트너는 있지만, 함께 위로하고 다독여주는 프리랜서 친구가 없다. 이 말을 들었던 친구가 또 이야기한다.


"일하는데 무슨 친구가 필요해. 상명하복 몰라? 그냥 시키는 대로 따박따박하고 돈 벌어가는 게 직업관이야! 프리랜서이든 회사든 말이야."


"친구야 네가 뭘 잘못 아는 거 같은데.. 회사는 그래도 회식이라도 하면서 형식적이라도 으쌰할려고 하잖아. 더군다나 경력적이나 공채 시즌으로 들어온 신입들도 함께하는 그러한 팀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너도 이해하잖냐. 그런 소소한 하소연 자리가 나중에는 실적으로 쌓일 때 행복을 누리는 게 넌 참 부러운 건데... 프리랜서는 그게 아니라고. 회식이 있겠냐. 업무적인 힐링 요소가 있겠냐. 그렇다고 갑자기 술 마시자고 내가 팀장 대변해주는 것도 아니라는 거야. 그저 비즈니스적인 만인의 관계라는 것뿐이야."


나도 순간 욱했다. 사실 내 말에 정답은 없다. 아니 없을 수도 있다. 회사원이 들으면 빡칠만한 이야기를 내가 친구에게 해버렸다. 요즈음 젊은 꼰대라고 하지. 내가 점점 그렇게 변해가나? 조언 아닌 격언을 해주고 싶어도 현실 섞인 TMI 요소가 너무 가미되어 결국 친한 친구에게 마저도 갑을 관계가 형성될 뻔했다. 난 순간 그 상황이 싫어서 냉큼 소주 잔을 들고 짠-을 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점은 프리랜서라는 직업은 정말 그 생존 ZONE에서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발악이 '신뢰'일 수도 있겠다. 내가 담당하는 회원에 대한 신뢰, 그리고 같이 작업하는 사람이자 파트너에 대한 신뢰, 마지막으로 나에 대한 신뢰. 결론적으로는 일을 같이하는 사람에 대한 친근한 관계가 아니기에 '신뢰'라는 방어막을 나에게 씌어 일에 몰두할 수밖에 없더라.


친구에게 하나 예시를 알려줬다. 대학 과제 때 만났던 모르는 사람들과 한 팀이 되어 과제 프로젝트를 한다면 내가 친한 친구와 하는 과제 과정과 과연 같을 것인지에 말이다. 당연히 아니겠지. 오히려 모를수록 서로 존댓말을 하고 예의범절과 대우를 다 해주며 심지어 상대방이 지각하거나 결석해도 너그럽게 관용을 베풀어야 하는 게 대학교 과제 중 일부였고, 그 상황을 통채로 이어받은 게 프리랜서 업무란 의미였다.


그제서야 친구는 조금 이해하는 듯했다.


"그러니까 네가 하고 싶은 말은 친한 관계보다 어색한 관계라서 더 외롭다 그 말이지?"


"그렇지. 그게 정답이지."


결론이 나왔다. 프리랜서는 외롭다. 그냥 외롭다. 일적으로도 외롭다.


3. 회사원과 프리랜서가 만나서 놀 확률은?


아침 7시에 출근해서 9시까지 칼출근하고, 출근 도장 찍는 순간부터 업무 시작인 회색 빛깔의 네모 공간. 바로 회사이다. 어떻게든 시간은 가겠지. 그리고 저녁 6시가 되었다. 자, 이제 밤에 무엇을 할지 고민을 해보고 찾다 보니 여자친구나 남자친구와 함께 놀러 간다. 아니면 친구와 함께 인근 여의도 공원이나 사람들 인적 드문 야외 공원가에서 노상을 깐다. 이 정도면 약과겠지. 더 심각한 상황을 연출해 볼까. 갑자기 과장님(팀장일수도)이 회식을 하자고 하신다. 그럼 어쩔 수 없이 가야겠다. (사실 지금보다 옛날이 더 심했지. 나도 알아.)


동대문 인근 자그마한 고깃집에서 10대 여명이 모여앉아 어색한 분위기에서 먼저 상사가 기운 차리고 으쌰하자고 응원의 소주를 따라준다. 그리고 어떻게든 한 모금, 두 모금하더니 이내 대리급부터 분위기를 휘어잡으며 신입들은 어찌할 줄 모르겠지만 이내 분위기가 펴진다. (나도 다 겪어보았던 3년 전 야야기이다.) 그리고 일과 관련된 이야기를 조금 할까 하다가 이내 신입들의 표정을 바로 낚아챈 팀장님은 자기 집에 키우는 고양이나 강아지 이야기를 하신다. (심지어 이름도 뽀삐라고 했다. 내가 기억해.) 대리님은 그 상황이 너무 웃겼는지 순간 풉하다가 과장님 눈총을 맞고 이내 잠잠해진다. 그 가운데에 있는 계장급 되는 주임님들 또한 눈치를 잠깐 보다가 신입을 따로 부른다. 담배를 피우며 넌지시 이야기를 하신다.


"일 한만해? 개같으면 말해. 다 이해해."


이 말 한마디에 천편일률적인 모든 상황 요소가 다 담겨있다. 곧이곧대로 이야기하다가 나락 간다. 그게 회사였다. 어쨌든 잘 참았다면 10분 동안 일상 노가리나 주식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들어간다. 아- 하마터면 이 비타 500이나 가스활명수를 놓칠 뻔했다. 냉큼 자신의 고민거리를 들어준 주임님께 드렸더니 이내 표정이 쓰윽 환해지신다. 역시 사람 관계는 아부에서 시작된다. 다시 술집 계단으로 올라가거나 내려간다. 내려갈수록 어질어질하다. 어떻게 이 시간을 버틸지 막상 궁리하지만 정답이 없다.


"과장님이 취하면 된다. 그게 정답이다. ㅋㅋㅋ"


그렇다. 이게 정답이었다. 어쨌든 과장님이 취하면 된다는 소리와 함께 과장님 얼굴을 내심 지켜본다. 그렇게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과장님이 나를 쳐다보며 불만 있냐고 장난 섞인 술 주정을 하신다. 군대나 회사나 똑같다. 곧 전역할 말년 병장이 신병이나 이등병한테 잔소리를 해도 애교 섞인 말을 하지만 상병이나 병장한테는 진중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만 한다. 다 똑같다.


아마 이미지 관리인가? 아닐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신입들이 싫어한다면 다음날 막대한 트라우마로 초래할 수 있고, 회사 일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줄 수 있기 때문이겠지. 어쨌든 그렇게 과장님이 드디어 취하고 자기는 안 가겠다고 난리 브루스를 친다. 하지만 대리급 형님이 곱게 보내버렸다. 속으로 나이스한 마음만 머금은 채 당장 편의점에 가서 가스 활명수를 구매하여 드린다. 다행이었다. 인근 1+1 상품 이벤트를 했으니 망정이니 아니었으면 내 통장 잔액도 살아남지를 못한다.


자, 이게... 나의 회사 업무를 끝낸 후 고충이자 하소연이었다. (사실 생각해 보니 추억은 미화된다.)


프리랜서로 돌아가 보자.


그냥 하루하루가 부질없다. 만날 사람을 만나고 싶어도 내 친구들 대부분이 회사원이고 심지어 카페 자영업을 하고 있어서 늦게 끝난다. 그렇다면 여자친구와 함께 놀아보자. 여자친구는 회사원이었다. (왜 과거형을 쓰지?) 지금도 그럴 것 같다. 특히 장거리 연애라서 만나기가 힘들다. 하지만 주말에 시간을 내서 만나면 기분이 상쾌하다. 모처럼 여자친구와 카페 투어를 했다. 하지만 밤낮 섞여 프로젝트에 몰두한 나의 몰골을 보면서 답답해하는 여친님을 보니 괜히 내가 미안해진다. 그럼 잠깐 쉬다 가자면서 인근 경기 좋은 뷰 카페에서 1시간 노가리를 까며 쉬기로 한다. 하지만 이내 내 체력이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아니 도대체 새벽에 뭐 하길래 몰골이 그래... 너 나 몰래 다른 사람이랑 온라인 미팅하니?"


"그럴 리가 있니. 난 너밖에 없어. 그렇게 오해하면 나 서글퍼 엉엉"


와, 생각해 보니 전여친도 그렇고 전전여친도 그렇고 여친도 그렇고 주말여행을 가면 내가 힘들어했다. 그냥 나를 보면 그렇게 느껴진다고 하나. 그래서 나는 평일에 만나서 놀기를 간곡히 부탁했지만 사실 그게 쉬운 게 아니었다. 그럼 어찌할까 하다가 결국에는 내가 시간 될 때 여자친구 보러 가기로 했지. 오히려 이게 속 편했다. 차라리 내가 힘들다는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야 상대방도 편해지지. 그건 당연한 예의가 아닐까 싶었다.


여자친구 뿐만 아니라, 친구를 만나도 그렇다. 뭐 남자끼리 뭘 하겠는가. 축구하거나 등산하다가 술을 마신다. 그러다가 친구는 벌써 졸리다고 하고 나는 새벽에만 눈이 초롱초롱해진다. (왜 여자친구랑 있을 때에는 안 그러니? 그게 애증 표현이더냐..) 주식, 부동산, 정권교체 (애매하다) 이런 정치 썰 풀다가 이내 자버린다. 부질없다. 그래서 4명 이상 만나야 재미있던 친구들과의 만남이었다. 하지만 말이야. 결국에 이 두 개의 공통점은 이걸로 정의된다.


결국 프리랜서는 혼자가 편해


아주 극적인 대답까지 몰고 갔지만 이게 해답일 수도 있다. 정답이면 큰일 나지. 사실 내 주위 프리랜서 일하는 건너 건너 사람들도 이게 맞다고 한다. 놀고 싶을 때 놀면 그게 좋다. 하지만 회사원은 다르다. 시간 제약이 있으니 말이다. 프리랜서가 놀고 싶은 말은 새벽이다. 남들이 잘 시간에 놀면 재미있다. 그때 놀면 재미있다. 이때 아니면 내 정신과 육체 힐링에 해롭더라.


...


이 이야기를 1시간가량 물고 꼬투리 잡고 친구와 열변 섞인 썰을 푸니 어느새 새벽 1시였다.


친구는 바로 택시 타고 가버렸다. 다음날 일정 차질이 있으면 안 된다고 한다. 이내 외로워졌다. 여친한테 카톡한다. 잠을 자야 한다는 말과 함께 아웃되버린 그녀.


외롭다 프리랜서.


하소연할 데가 없어서 여기에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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