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 헤라 가블러는?

연극 헤라 가블러를 보고 느낀것.

by 김애옥

헤다가블러 연극을 보고나서.

잔상이 며칠갔다.

배우 이혜영과 배우 이영애 헤라 가블러.

확연히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왜 명동예술극장에서 진행하는 이혜영 헤라 가블러는 전석 마진이고 마곡LG아트센터 이영애 헤라가블러는 널널한 빈자석이 있었는지.


두연극을 비교해보자면,

헤라 가블러는 단지 사회억압당한 여성의 기준은 아니였다는것.

타고난 자질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판단했다.나는.


이영애의 헤다 가블러는 예쁜,매력있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강도한 가블러였다. 그래서 연극중에 디오니소스의 화관을 쓰고 예쁜얼굴을

확대하여 빔에 쏘여지는 그 장면들이 그저 우습기 짝이없다.


예쁜얼굴이 뭐라고.

그렇게 나는 비판하고 싶다.

아무리 외모지상 세계관이 만연해 있다지만 연출자가 극의 해석을 오인한건가? 아니면 현시대적 맞춤형으로?

실망 그자체였다.


그래서 다시 10여년전에 봤던 이혜영 헤라가블러를 보고싶어 예약을 하려 했으나, 모두 매진. 고양아람누리에세 하는것도 매진이라 볼 수없었다.


헤라 가블러의 그 독창적인 성향.

유아독존형이라고 해야하나?

자기안에 갇혀있지만

외부와도 쉽게 자신을 내어주지않는

뚜렷한 선은 없지만,

공동체 안에서 자신을 내어주지 않는 그선과

자기 자신안에서 자신을 바라볼 수 없는 그선.

두개의 선상에서.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아래도 내다보지않고

앞만보고 내달리는

어린아이처럼

매우 단순한

아니, 심플한

자기애.


난 이영애 헤라 가블러에게서 그 두개의 선을 발견 못했다.

그저 예쁜얼굴만 바라본 상태.

내가 왜 이연극을 보러온거지?

하는 나에게 보낸 메세지.


결론은

여성의 아름다움은 외모에 당연히 있다.즉 보여지는것에 의한 타인의 판단으로 아름답다는걸 쉽게 느낄수있는것.


여성의 또다른 매력은 외모가 아닌, 그다른곳에서 엄청난 아름다움이 내재해 있다는것을 본연극을 통해 알게된것.


그래서 나는

헤라 가블러가 나이고

내가 헤라 가블러라는것을 나혼자 확신한다.

확신하게된 동기는

오리지널. 극본의 헤라가블러를 전율이 오게 연기한 이혜영 헤라 가블러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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