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두 미소

by 산속

3

그의 말은 가시 같았다. 내뱉는 족족 내 마음의 연약한 곳에 박혀 생채기를 냈다. 분명 아파야 하는데, 그 가시가 박힌 자리를 타고 전해지는 그의 체온에 자꾸만 마음이 흔들렸다.
​밉다, 원망스럽다, 다신 보고 싶지 않다.

수천 번을 되뇌었던 다짐들이 그의 떨리는 손끝 하나에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고 있었다.
​"차라리 끝까지 나쁜 놈이지 그랬어. 왜 이제 와서 그런 눈을 하고 사람을 흔들어?"
​나는 젖은 목소리를 감추려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도현은 물러나지 않았다. 그는 한 걸음 더 다가와, 내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나지막이 읊조렸다.


​"가시 돋친 말이라도 해줘서 고마워, 우리야. 무관심보다 그게 훨씬 낫네."
​"오빠...!"
​"네 마음이 흔들리는 거 보여. 내 가시적인 말들이 네 안에 어떻게 박히고 있는지도. 그러니까 도망치지 마. 이번


겨울은 내가 네 숨을 막는 게 아니라, 네 숨을 지키러 온 거니까."
​도현의 손이 마침내 내 어깨에 닿았다.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 오직 그의 손바닥에서만 뜨거운 열기가 전해졌다. 나는 그를 밀쳐낼 힘조차 잃어버린 채, 밀려오는 파도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흔들리는 건 파도일까, 아니면 여태껏 굳건하다고 믿었던 나의 증오일까.


도현의 손이 어깨에 닿는 순간, 내 심장은 비명이라도 지를 듯 요동쳤다. 그의 체온은 가시적인 말 뒤에 숨겨진 진심처럼 뜨거웠다. 무너질 것 같은 내 마음을 나조차 감당하기 버겁던 그때, 멀리서 낯익은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한우리!"
그 소리에 마법이라도 풀린 듯 도현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멀리서 검은색 SUV 한 대가 모래사장 근처에 급히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남자는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넘기며 우리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나의 오랜 친구이자, 이곳 바닷가 마을의 유일한 보건소 의사인 '재하'였다.
"전화는 왜 안 받아? 한참 찾았잖아."

재하는 내 어깨를 감싸 쥐며 자연스럽게 도현과 나 사이를 갈라놓았다. 재하의 시선이 차갑게 굳어 도현을 향했다. 도현의 얼굴에 머물던 그 쓸쓸한 미소 역시 순식간에 사라지고, 서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우리 씨 아는 사람입니까?"

재하의 물음에 도현은 대답 대신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마치 '이 남자는 누구냐'라고 묻는 듯한 강렬한 시선. 나는 재하의 옷깃을 꽉 쥐며, 도현을 외면한 채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 모르는 사람이야. 그냥 길을 묻더라고."


그 순간, 도현의 입가에 묘한 비웃음 섞인 세 번째 미소가 걸렸다. 아까보다 훨씬 더 차갑고 날카로운 미소.
"모르는 사람이라... 거짓말은 여전하네, 한우리."
재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나를 사이에 둔 두 남자의 시선이 공중에서 팽팽하게 맞붙었다. 겨울 바다의 파도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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