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을 전전하며 지켜낸 아이가 어느덧 자라, 자기 몸집만 한 가방을 메고 학교라는 커다란 세상 앞에 섰습니다. 교정 한편에 든든하게 뿌리내린 커다란 느티나무는 마치 그동안 이 아이를 지켜온 나의 시간들처럼 묵묵히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입학식 날, 아이는 처음 마주하는 운동장과 교실 앞에서 가슴이 터질 듯 설레는 표정을 짓습니다. 이제 막 시작되는 아이의 세상은 느티나무의 새잎처럼 찬란하겠지요. 하지만 그 곁에 선 엄마인 나의 마음은 자꾸만 아려옵니다.
아이가 학교에 간다는 것. 그것은 이제 내 품을 떠나 세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간다는 신호이며, 내가 아이의 우주였던 시간이 조금씩 줄어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소아과와 내과를 오가며 노심초사했던 그 힘겨운
시간들이 느티나무의 나이테처럼 내 안에 새겨져 있는데, 아이는 어느새 이렇게 자라 홀로 서기를 준비합니다.
아이는 가슴 뛰는 시작을 맞이하지만,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내가 짊어져 온 ‘엄마’라는 산의 무게를 다시금 실감합니다. 아이의 사회생활이 시작되는 그 입학식은, 어쩌면 엄마인 나의 품이 조금 더 넓어져야 한다는, 또 다른 성숙의 예고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은 야속하리만큼 빠르게 흘러, 어느덧 아이의 졸업식 날이 되었습니다. 학사모를 쓰고 의젓하게 서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순간, 참아왔던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말았습니다.
그 눈물은 단순히 아이가 자랐다는 대견함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지난날 소아과와 내과, 정형외과를 전전하며 버텨온 나의 고단했던 시간들에 대한 위로였고, ‘나’를 지우고 ‘엄마’로만 살아야 했던 그 먹먹한 세월에 대한 보상이기도 했습니다.
아이가 받은 졸업장은 사실 우리 둘이 함께 써 내려간 훈장이었습니다. 아이가 한 학년씩 올라갈 때마다 나의 인내심도 한 뼘씩 자랐고, 아이의 키가 커갈수록 나의 무기력증은 조금씩 단단한 책임감으로 치유되었습니다. 교정에 서 있는 느티나무가 더 굵은 나이테를 새겼듯, 나의 영혼에도 ‘엄마’라는 깊고 선명한 무늬가 새겨졌습니다.
졸업식장을 나서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깨닫습니다. 내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과거의 나’는 이제 없지만, 대신
세상에서 가장 큰 산이 되어 한 아이의 우주를 지켜낸 **‘지금의 나’**가 여기 서 있음을.
엄마라는 존재는 세상에서 제일 약자일지 모르나, 한 생명을 완수해 낸 이 순간만큼은 그 누구보다 강인한 존재였다는 사실을,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비로소 인정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