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내 몸에서 열 달을 품어 낳았을 때, 나는 오만한 착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내가 낳았으니, 이 작은 생명의 시작부터 끝까지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자만심이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며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업무 능력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행동의 결이 다르다는 것을요. 타인을 대할 때는 그토록 조심스럽게 관찰하고 존중하던 그 당연한 이치를, 왜 내가 낳은 아이 앞에서는 잊어버렸을까요.
아이를 나의 소유물이나 나의 연장선으로 보았던 나의 시선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모릅니다. 내가 설계한 대로 움직이지 않는 아이를 보며 당황하고,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느꼈던 그 무기력함의 실체는 사실 나의 어리숙한 자만이었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존재를 가장 모르는 서툰 엄마였습니다. 아이가 학교라는 작은 사회로 나아가고, 그곳에서 내가 모르는 표정과 내가 모르는 행동들을 배워올 때마다 나는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아이는 내가 쓴 책의 주인공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만의 책을 써 내려가는 독립된 저자라는 사실을요.
아이가 성장하는 속도보다 더디게, 나는 나의 자만을 내려놓는 법을 배웠습니다. '다 안다'는 마음을 비우고 나서야, 비로소 아이의 진정한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면에서 어리숙했던 나를 깨뜨리며, 나는 그렇게 조금씩 '자만하는 엄마'에서 '공부하는 엄마'로 변모해 갔습니다.
엄마가 되기 전의 나는, 스스로 꽤 괜찮고 잘난 사람이라 믿으며 살았습니다. 남들처럼 나만의 성취가 당당했고, 세상의 당연한 일들조차 내 마음에 차지 않으면 늘 불편과 불만을 늘어놓던 오만한 완벽주의자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와 하루라는 시간을 온전히 공유하며, 나의 그 ‘잘난 자아’는 사정없이 흔들렸습니다.
"이것 해라, 저것 해라."
내 입에서 나가는 말들은 표면적으로는 아이를 위한 훈육이었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엄마의 절박한 욕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욕망의 이면에는 나의 기준을 아이에게 강요하는 폭력성이 숨어 있었습니다. 더 나은 미래라는 명목 아래, 정작 지금 이 순간 아이가 내뱉는 작은 목소리와 의견들을 무시하고 짓밟는 나를 발견했습니다.
누구보다 아이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아이를 한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는 사람으로 변해가는 나의 모습. 그 낯선 괴물 같은 내 모습이 나를 지독하게 괴롭혔습니다. 사회에서는 합리적이고 세련된 사람이었던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이 앞에서는 가장 편협하고 강압적인 사람이 되어 있다는 사실이 뼈아픈 자괴감으로 다가왔습니다.
나의 욕망이 아이의 자아를 가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비로소 내가 얼마나 어리숙한 엄마였는지를 눈물로 인정해야 했습니다. 육아는 아이를 키우는 과정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내 안의 뒤틀린 욕망과 오만함을 하나씩 깎아내며 '진짜 사람'이 되어가는 고통스러운 수행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