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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샘 Oct 18. 2023

리셋

흰샘의 '그냥 그런 이야기들'

무슨 일일까요? 늘 제시간에 오던 지하철이 오지 않습니다. 뭐 걱정인가요? 다음 차를 타면 되지. 그런데, 아닙니다. 신용산역에 내려 용산역에서 KTX로 갈아타야 합니다. 5분이나 늦게 온 열차는 늦은 만큼 기다리는 사람이 많으니 더 늦게 출발합니다. 나는 시계를 보며 도착시간을 가늠해 봅니다. 그런데 계속 틀립니다. 계속 늦어지기만 합니다. 신용산역 9-1 하차위치에서 용산KTX역 6호차 승차위치까지 내 걸음으로 8분 정도 걸립니다. 한 번 있는 횡단보도 신호까지 계산하여 그렇습니다. 그런데 7시에 도착하리라 계산했던 도착시간은 7시 3분으로 늘어집니다. 7시 9분에 출발하는 KTX를 타지 못하면 오늘 전주행은 불가능합니다. 큰일입니다.

나는 한 정거장 앞에서부터 지하철 출입문 앞에 서서 배낭 끈을 조이고, 거추장스러운 안경도 벗어 안주머니에 넣고, 문이 열리자마자 뛰기 시작합니다. 평소에 늘 해오던 운동이 이럴 때 빛을 발합니다. 수십 개 계단쯤은 일도 아닙니다. 그런데 횡단보도 앞에서 제동이 걸립니다. (여차하면 무단횡단도 불사할 작정이었습니다)

나는 빨간색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으며 시계를 봅니다. 7시 5분이 지났습니다. 만약 6분까지 신호가 바뀌지 않는다면, 내가 그토록 조롱하던 '사소한 일에 목숨 거는' 일을 감행하리라 생각하며 혹시라도 교통경찰이 있는지 주위를 살펴봅니다. 벌금이 무서운 게 아니라 그에게 붙잡히는 날에는 모든 게 물거품이 될 것이기 때문이지요. 무단횡단에 검문 불응 도주죄가 추가될 터이지만 나는 튀기로 합니다. 그 짪은 시간에 영화 한 편을 뚝딱 만드는 사이 다행히 파란불이 켜집니다.

나는 또 뛰기 시작합니다. 계단에서 뛰고 역사에서 뛰고 또 계단에서 뜁니다. 그렇게 마지막 계단을 내려서는데 기적처럼 기적을 울리며 기차가 도착합니다.(KTX는 웬만해서는 기적을 울리지 않는다고 시비하지는 마시길. 나는 분명히 들었으니까...) 정말이지 기찹니다. 아니 숨찹니다.

이 글을 끼적이는 사이 열차는 벌써 오송 지나 공주로 향합니다. 가을이  깊어진 들판에는 오늘 따라 안개가 가득합니다. 인생이란, 아침에 잠깐 끼었다가 해가 뜨면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것이라는 잠언이 생각납니다. 저 안개가 걷히면 모든 것이 리셋(reset)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랬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내가 할 수 있는 리셋을 실행합니다.  수요일 기상시간을 5분 당겨 알람을 리셋합니다. 또 무엇을 리셋할까요? 아무려나 오늘의 화두는 리셋으로 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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