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흰샘 Oct 17. 2023

늙은 허수아비

흰샘의 詩답지 않은 詩

늙은 어머니가 평생 농사짓는 밭둑에

늙은 어머니 옷을 입고 허수아비가 서 있다


-허수아비가 너무 늙었다


일곱 살짜리 조카 연우가 말해서 알았다

허수아비도 주인을 닮아간다는 것을


늦가을 바람에 흩날리는 늙은 허수아비의

옷자락을 여며주며 가만히 속삭인다


-오래 사세요




얼마만에 이곳에 들어온 것인지 기억이 안 날 정도입니다. 그 동안 여지없이 "글쓰기는 운동과 같아서..."로 시작되는 경고장을 하나 받았는데, 그마저 오래 전입니다. 바빴지요. 나 자신이 참 싫어하는 핑계가 '바쁘다'는 말인데, 정말 바빴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로 바빴느냐고 반문하면 대답할 말은 또 없습니다. 그저 웃어야지요. 몸도 바빴지만 마음이 바쁘다 보니 만사가 엉키고 꼬이고 밀리고 어그러집니다. 30년 넘는 공직생활 마무리하고 명퇴를 하면서, 이제는 정말 유유자적하겠구나 했는데, 오히려 현직에 있을 때보다 더 바쁘니 이게 어찌된 일일까요? 혹자는, 그렇게 바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으냐고 하는데, 나는 그 말에 8할은 동의합니다. 대부분 내가 만든 일 때문에 바쁜 것이니 누구에게 푸념도 못 하지요. 


여기 올린 '시답잖은 시'는 오래 전에 썼던 것입니다. 일곱살 연우가 대학생이 되었으니 말이지요. 그때보다도 훨씬 늙으신 어머니가 아직도 그 밭에서 농사를 지으시니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일인지요. 한때는 그만 하시라고 말렸는데, 이제는 하실 수 있을 때까지 하시라고 합니다. 그렇게 끝없이 움직이고 마음 쓰는 것이 어머니의 건강 비결임을 알기 때문이지요. 다음주에는 어머니 뵈러 내려가야겠네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