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샘의 '그냥 그런 이야기들'
1.
아버지 20주기를 지내러 고향에 갑니다. 대중교통으로 고향에 가는 것이 몇 년 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집에서 버스를 타고 고속버스터미널로 가서 고창행 고속버스를 탔습니다. 평소엔 대여섯 명이나 타고 떠나는 버스가 단풍철이라고 만석입니다. 표를 예매하길 잘했습니다.
고속버스 운전기사는 딱 보아도 베테랑입니다. 조금도 서두르지 않고 제 속도로 정확히 출발하여 도착 시간도 칼같이 지킵니다. 덕분에 30분 뒤에 오는 시내버스(처음엔 군내버스라 하다가 시내버스로 개명을 했습니다)를 여유 있게 탈 수 있습니다. 터미널에서 멀지 않은 마트에 들러 고기 사고, 막걸리 사고, 엄마 좋아하시는 빵도 사고, 그래도 시간이 남습니다.
시내버스는 큰길 놔두고 좁은 길로만 구석구석을 돌아다닙니다. 혹시 차들에게도 천국과 지옥이 있다면 좁은 길로만 다니는 고창 시내버스는 바로 천국행입니다.(게다가 요금은 무조건 천원이니, 고창 시내버스를 천국에 보내준대서 아무도 시비는 걸지 않을 것 같습니다.) 덕분에 나는 날것 그대로의 시골 풍경을 마음껏 구경합니다. 벼는 다 사라져 쓸쓸해진 들판이며, 언덕마다 허옇게 핀 삐비꽃, 억새꽃이며, 양철지붕이 반쯤 기울어진 오래된 정미소를 지납니다. 예전에는 흙먼지 가득한 비포장도로였습니다. 저 멀리 마을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르고 하늘은 무채색으로 흐려 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광석이 형처럼(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더 형입니다.) 저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라도 한 장 쓸까요?
저만치 고향 마을 앞 저수지가 보입니다. 열 살 때 서울로 ‘유학’을 간 나는 방학이 되어 고향에 갈 때마다 차가 언덕마루에 올라서서 저수지가 눈앞에 나타나면 미칠 듯 가슴이 뛰었더랬습니다. 이제 그런 설렘은 없지만 그래도 고향은 언제나 좋습니다. 우리 마을에서 언덕 하나를 넘어서, 바다가 보이는 앞마을 언덕배기가 버스 종점입니다. 종점에서 내린 사람은 나 혼자뿐입니다. 버스 기사에게 빵 하나를 건넵니다. 이마가 반쯤 벗겨진 기사의 얼굴이 환해집니다. 이제 할머니와 아버지가 묻혀 계신 언덕을 넘어가면 진짜 고향마을입니다.
2.
주로 어르신들만 사시는 시골 마을은 밤이 금세 깊어집니다. 흐리던 하늘이 석양 녘엔 활짝 갰습니다. 동네에 한두 개 있는 가로등 불빛을 피해, 다시 할머니와 아버지 묘소가 있는 언덕으로 별을 보러 올라갑니다. 어릴 적엔 밤마다 애기귀신이 울고, 도깨비가 나온다는 깊은 숲이었습니다. 지금은 도깨비 대신 고라니와 멧돼지가 호시탐탐 농산물을 노리는 밭과, 군데군데 묘지가 있는 언덕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달이 뜨지 않는 스무닷새 밤의 야산을 걷노라면 뒷머리가 쭈뼛해지곤 합니다.
고개를 한껏 꺾고 바라보는 하늘엔 별들이... 표현할 말이 없을 땐 안 하기로 합니다. 말 때문에 감동이 살기도 하지만 죽을 때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나는 겨우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동주의 시 한 구절을 떠올릴 뿐입니다.
오후에 버스를 내린 각동 마을을 돌아 신대 마을로 내려갑니다. 눈에 보이는 빛은 오직 별빛뿐입니다. 지난여름 풀숲마다 깜박이던 반딧불이는 흔적이 없습니다. 부디 그렇게 깜박인 보람은 얻고 떠났기를 빌어봅니다.
3.
시골 마을은 밤만큼이나 새벽도 일찍 찾아옵니다. 일찌감치 아침을 먹고 산책을 나갑니다. 마을 앞 저수지는 수년 전 확장공사로 새 단장을 했습니다. 저수지 둑을 걸어 건너편까지 가서 고향 마을을 바라봅니다. 그림 같습니다. 우리 마을이 이렇게 아름다웠나 새삼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가까워서 오히려 보지 못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사람도 그렇고 사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멀어져야, 혹은 사라져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제 다시 천국행 버스를 타야 할 시간입니다. 어릴 적, 방학이 끝나고 다시 서울로 올라갈 때는 울며불며 넘었던 언덕을 터덜터덜 넘어갑니다. 종점에서 나 혼자 탄 버스는 고속버스가 있는 고창 터미널까지 가는 동안 다섯 명을 더 태웠습니다. 가는 도중 어느 마을 앞에서 탄 아주머니 짐이 장난이 아닙니다. 작은 손수레에 실은 커다란 상자에 보따리가 두 개나 더 있습니다. 혼자 들고 탈 수 없는 짐입니다. 나는 얼른 내려가 손수레부터 끌어 올리고 보따리 하나를 더 받아 올립니다. 고맙다고 몇 번이나 인사를 받는 내가 오히려 미안해지려고 합니다. 천국행 시골 버스는 그 모든 일이 끝날 때까지 묵묵히, 참을성 있게 서 있습니다. 재촉하는 법이 없습니다. 하긴 재촉할 일도 없습니다. 교통정체도, 신호등도 없는 시골길이니까요.
고창 터미널에서 내릴 때도 나는 기꺼이 짐꾼을 자처했습니다. 또 연신 고맙다는 인사가 오갑니다. 서울 사는 딸네 집에 보내는 물건이라며 고속버스 짐칸에 그 무거운 짐들을 밀어 올립니다. 빈 수레를 끌고 돌아가면서 아주머니는, ‘다음번에는 김장김치를 보내야겠구나’ 요량을 하며 벌써 눈길은 한창 속이 들어차고 있는 배추밭으로 향할 것이 분명합니다. 천국행 버스 덕분에 작은 선행 하나를 한 것 같아 나는 공연히 뿌듯해집니다.
서울행 고속버스가 어서 타라고 재촉을 합니다. 터미널에 잠시 서 있다가 다시 예의 그 좁은 길을 나서는 천국행 버스를 한번 더 돌아보고 고속버스에 오릅니다. 어쩌면 천국행 버스에 편승해서 잘하면 나도 천국에 갈 수 있지 않을까, 되도 않는 상상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