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흰샘 Nov 10. 2023

立冬

흰샘의 '시답지 않은 詩'

立冬    


      

그늘에 자라 늦게 핀 국화

첫얼음 얼어 추운 아침

날갯짓 힘겨운 늙은 꿀벌에게

布施를 한다.          


20년 전쯤에 서울의 어느 여고에 근무했습니다. 오래된 학교라 건물은 낡았지만 교정이 아름다운 학교였지요. 빈터도 많아서, 그곳에 나만의 꽃밭을 가꾸었습니다. (그곳에 가끔 놀러오던 학생이 ‘secret garden’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지요.) 그늘에 심은 산국이 늦가을에야 꽃을 피웠지요. 그해에는 입동 날 첫얼음이 얼었습니다. 아침에 찾아갔더니 꿀벌 한 마리가 노란 산국에 앉아 꿀을 빨고 있습니다. 얼마나 굶주렸던지 내가 카메라를 들이대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행여라도 그의 힘겨운 아침 식사를 방해할까 봐 사진 한 장을 찍고는 조심조심 그곳을 빠져나왔던 기억이 납니다. 덕분에 짧은 ‘시답지 않은 시’ 한 수도 건졌지요...

작가의 이전글 천국행 버스를 타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