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취미가 다양한 편이지만 가장 오래된 취미는 낚시다. 생각해 보면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이전부터 낚시를 했었다. 마을 앞에 커다란 저수지가 있고, 작은 방죽은 사방에 있었다. 언덕만 넘으면 바다도 있었지만, 그때는 바다낚시가 있는 줄도 몰랐다. 그러니까 내게 ‘낚시’라고 하면 저수지나 방죽에서 붕어를 잡는 것을 의미했다.
낚싯대는 지천으로 깔린 대나무를 쓰면 그만이었고, 찌는 수수깡이 제격이었다. 받침대는 없어도 그만이었지만, 필요하다면 대나무를 적당한 길이로 잘라 끝을 두 갈래로 갈라서 쓰면 문제가 없었다. 봉돌은 그냥 실을 묶을 수 있는 울퉁불퉁한 돌멩이로 충분했고, 낚싯줄은 어머니의 반짇고리에서 슬쩍 한 바느질실이면 되었다. 문제는 낚싯바늘이었다. 둥글고 날카로운, 중간에 역린(逆鱗)과 같은 미늘이 솟아있는 낚싯바늘은 그 촌에는 없는 물건이었다. 간혹 낚시를 좋아하는 어른들은 그런 바늘을 가지고 있었지만 애들에게는 언감생심이었다. 그나마 괜찮은 것이 작은 옷바늘이었다. 가늘고 길쭉해서 잘 구부려질 뿐 아니라 작은 대가리가 있어서 실을 묶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미끼는 지렁이를 쓰기도 했지만 밥풀떼기를 종이에 조금만 싸 가지고 가도 한나절 낚시하는 데는 충분했다. 그렇게 채비를 해서 저수지 둑에 앉아 낚시를 했던 것이다. 내 고향 저수지는 예나 지금이나 붕어가 지천이어서 그렇게 허술한 낚시 채비로도 무수한 붕어를 낚아 올렸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나의 낚시 취미였다.
늘 저수지에서만 하던 낚시 취미를 어른이 되어서는 좀 더 확장시켰다. 바다낚시와 계류낚시였다. 바다낚시는 주로 방파제나 갯바위에서 하곤 했는데, 이동 거리가 멀고 채비도 많은 편이다. 게다가 낚시를 혼자 익힌 탓에 잡는 고기보다 끊어진 낚싯바늘이 더 많기가 십상이다. 계류낚시는 주로 견지낚시를 했었다. 물론 주종은 피라미나 버들치 같은 흔한 강고기지만, 간혹 꺽지나 동자개 등을 건질 때도 있다. 한번은 홍천강에서 팔뚝만한 누치를 잡았는데, 낚싯바늘이 너무 작았던 탓에 코앞까지 끌려왔다가 내 얼굴을 보자 발버둥을 치면서 바늘을 직선으로 펴놓고 도망을 쳤다. 몇 년 전부터는 루어낚시를 시작했다. 하지만, 모든 낚시가 다 ‘독학’인지라 조과(釣果)는 늘 시원치 않다.
내가 낚시를 한다고 하면 주변의 낚시 좋아하는 사람들은 배낚시나 좌대낚시 등을 권한다. 그래야 큰 고기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낚시는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지금까지 견지해 오고 있는 나의 낚시 원칙은, ‘돈 내고 하는 낚시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유료 낚시터라든가 뱃삯을 내고 하는 배낚시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꼭 월척이나 큰 고기를 잡을 욕심도 없다. 그저 가볍게 흔들리는 물살을 바라보거나 흐르는 강물 속에 하반신을 담그고 물고기와 술래잡기를 하는 정도면 충분히 즐겁고 행복한 것이다.
최근에는 뒤늦게 공부를 시작하면서 낚시를 하러 갈 시간을 내지 못했는데, 지난 추석 때 군에서 제대한 아들 녀석과(그 녀석도 나를 따라 유치원 때부터 붕어를 낚아 올렸다.) 고향 저수지에서 붕어를 20여 수 낚았다.
아들은 유치원 때부터 배운 낚시 솜씨가 여전했다
붕어들은 인증샷 한 장 남기고 다시 제 살던 곳으로 돌아갔다
운이 좋았던지 고향 바닷가에서는 1Kg이 훨씬 넘는 자리돔도 한 마리 걸었다. 붕어들은 모두 방생을 했지만, 자리돔은 회를 떠서 맛나게 먹었다.
아, 흥분했다. 낚시 얘기를 하려던 것은 아니었고, 영화 얘길 하려던 참이었다. 학과 진도도, 기말시험도 모두 끝난 3학년 애들에게 영화를 보여주고 있다. <흐르는 강물처럼>. 애들은 부수고 죽이거나, 까무러치게 무섭거나, 야한 영화를 원하지만, 나는 내가 고른 영화를 고집한다. ‘흐르는 강물처럼’은 어찌 보면 ‘낚시 영화’다. 주인공들이 강물에서 플라이 낚시로 송어를 잡는 것이 영화 전편을 이끌어나가는 줄거리다. 물론 영화는 가족과 사랑과 자연과 신을 이야기한다. 그 영화의 끝부분에서, 망나니 같지만 남의 어려움을 보고는 견디지 못하는 막내아들을 잃은 목사의 마지막 설교 내용이 가슴에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