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샘의 자동차 교체 수기
더 나이 들기 전에 차를 바꾸자는 가족들의 의견에 따라 10년 넘게 가족을 위해 봉사한 차를 팔았다. 10여년 전, 아내가 안산으로 발령을 받아 차로 출퇴근을 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래서 좀 높고 튼튼한 차를 사기로 했다. 우리는 그 SUV에 '호세'라는 이름도 지어 주었다. 호세는 강원도 고성부터 남해와 완도까지 전국을 누볐다. 제주 한달살이에도 따라가 제주도까지 샅샅이 훑었으니 자동차로서는 행복한 축에 들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호세의 생각은 다를지 모른다.)
아무튼 중고차를 팔고 새 차를 사는 일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지난 토요일에 자동차 계약을 하고, 어제 금액을 치르고, 오늘은 호세를 중고차 회사에 팔고 새 차를 받아왔다. 정말 숨 가쁜 사흘이었다. 호세와 헤어질 때는 눈물이 찔끔 났다. '호세야. 그 동안 고마웠다. 새 주인 만나서 건강하고 안전하게 잘 달리거라.' 인사하고 어깨를 툭툭 두들겨주었다.
실은 어제 새 차가 나온다고 해서 아침에 일찌감치 결제를 다 하고 기다렸는데, 소식이 없어 대리점에 전화를 했더니 오늘은 안 된단다. 그러면 처음부터 그렇게 얘길 해야지... 그러면 언제 되느냐니까 탁송이 밀려 언제라고 정확히 말할 수 없단다. 나는 사흘 연속 낮에는 시간을 내기가 어려운 실정이었다. 어제 오후 늦게서야 연락이 왔다. 오늘 차가 나올 수 있는데, 그러려면 아산 출고장까지 직접 가서 가지고 와야 한단다. 대신 탁송료 174,000원은 빼 준단다. (탁송료가 이리 비싼지 몰랐다.)
그래. 내가 직접 가서 데리고 오자. 그런데 현대자동차 아산 출고장까지 가는 교통편은 정말 애매했다. 남부터미널에서 새벽 6시 38분에 출발하는 차만 출고장에 선다고 되어 있었다. 그런데 새 차는 오후 3시 이후에 나온다고 했다. 애초에는 새벽에 가서 기다렸다 받아오리라 했는데 그것도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대중교통편을 알아보니 밀두리까지 가는 버스가 남부터미널에서 하루 8번 있었다. 가장 적당한 시간이 12시 30분 차였다.
중고차 딜러와 만나 계약하고, 매도에 필요한 서류 떼러 동사무소에 가고, 동물병원에 들러 고양이 약도 받아와야 했다. 12시 30분 차를 타려면 무조건 집에서 12시 이전에는 나가야 했다. 모든 일이 급박했으나 시간에 맞게 일이 끝났다.
자, 이제 새 차를 데리러 갈 시간이었다. 밀두리까지는 버스가 가는데, 거기서 현대차 출고장까지 가는 버스는 있지만, 없었다. 하루에 4번 다닌다는데 언제 다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나는 시외버스가 서는 마을이면 제법 클 것이고, 그러면 택시는 쉽게 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택시를 타고 가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나 만약에 그것도 여의치 않다면 걸어가리라 마음먹고 등산 배낭에 커피와 물을 넣고, 혹시 모를 추위와 비에 대비하여 워머와 작은 우산과 모자, 장갑도 챙겼다. 신발도 걷기 편한 신발로 갈아신고 옷도 그렇게 준비했다. 다행히 시간이 남아 있었다. 어차피 점심을 제대로 먹기는 글렀다. 그래서 얼른 길 건너에 있는 김밥집으로 달려가 김밥을 하나 사서 배낭에 넣고 남부터미널로 달려갔다. 밀두리까지 가는 차표를 끊고 나니 12시 15분이었다. 사 가지고 간 김밥 한 줄을 꺼내어 2/3쯤 먹었다. 화장실에도 한번 들러야 했다. 그렇게 차에 오른 시간이 출발 3분 전이었다.
자동차 영업소 사장은 차를 인수하기 전에 꼭 보험을 들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시외버스 안에서 앱으로 보험 가입을 마쳤다. 예전처럼 20~30분씩 전화기를 붙들고 수백 가지나 되는 계약 내용을 직원이 속사포처럼 읊어대고 나는 판소리 추임새 넣듯이 간간이 ‘네네’를 반복해야 하는 보험계약이 아니었다. 보험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거기서 요구하는 대로 따라가면 된다. 물론 수도 없이 무슨 인증을 하라는 것이 짜증나지만, 그거야 만약의 사고를 대비하려는 것이니 불만스러워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렇게 수도 없이 인증을 하고 <다음>을 누르고 하여 결제까지 마치고 나니 밀두리 다 왔다고 기사가 내리라고 소리쳤다. 미리 운전기사에게 밀두리를 말해 두지 않았더라면 놓치고 지나칠 뻔했다.
밀두리에 내려 버스 정류장을 찾느라고 교차로와 그 위에 있는 동네를 두 번이나 오갔다. 다행히 동네 청년에게 길을 물어 정류장을 찾았다. 제법 번듯한 정류장이었다. 사방이 유리로 된 작은 건물 안은 난방이 되어 따뜻했고, 버스 정보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전광판도 있었다. 벤치는 대여섯 명은 충분히 앉을 만큼 넓었다. 그러나 버스 정보판에는 버스 정보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몇 시간에 한 번씩 다닌다는 버스 정보를 만난다면 그건 거의 기적일 것이었다. 나는 우선 벤치에 앉아 남은 김밥을 마저 먹고, 아침에 넣어 가지고 간 커피도 마셨다. 그리고 운동화를 벗어, 걸을 때마다 성가시게 하는 모래알 몇 개를 탈탈 털어냈다. 신발을 다시 신고 신발끈을 조였다. 가방에서 모자와 장갑을 꺼내고, 지도 앱을 켰다. 길은 외길로 4km였다. 매일 1만 보 이상 걷는 내게 4km는 그야말로 ‘껌’이었다.
출발 신호 따위는 필요 없었다. 그냥 걸으면 되는 일이었다. 공단이 모여있는 곳답게 오가는 차들은 90%가 대형 트럭들이었다. 그중 상당수는 자동차를 10여 대씩 싣고 다니는 탁송 트럭이었다.
앱에는 1시간으로 나왔지만, 내 걸음으로는 정확히 40분만에 출고장에 도착했다. 걸음 수도 5천 보에 불과했다. 그때까지 수많은 트럭을 보았을 뿐 오가는 버스나 택시는 한 대도 보지 못했으니 나의 경로 선택은 탁월하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출고 예정 시간에 정확히 맞추어 갔으니 얼마나 절묘한가 말이다.
사전에 인터넷을 통해 새 차를 인수할 때 점검할 사항들을 숙지하고 갔다. 그래서 출고장 직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차의 안팎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시동을 미리 켜고 히터나 에어컨을 점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드디어 ‘검사’를 마치고 나는 새 차에게 ‘마루’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옛 선인들도 자신이 아껴 쓰던 물건에 이름을 붙이기도 하고, 인격화하여 전(傳)이나 제문(祭文)도 짓지 않았던가? 그 정도는 아니어도 나와 가족을 태우고 전국을 누빌 녀석에게 그럴싸한 이름 하나쯤은 붙여주어야 하고, 때로 어깨도 두들겨주면 녀석도 기분 나빠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하여, 나는 녀석의 어깨에 슬쩍 손을 얹고 말했다. “마루야, 반갑다. 안전하게 잘 다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