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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샘 Dec 20. 2023

모과차를 담그며

흰샘의 그저 그런 이야기들

* 모과차를 한 잔 마시다가 오래전에 써 두었던 글이 생각나 꺼내보다.


모과차를 담갔다.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모과 세 개를 자동차 안에 보름 정도 넣어 두었었다. 차 문을 열 때마다 풍기던 향기로운 모과향이 아쉬웠지만, 더 두면 썩을 것 같아 아직 싱싱할 때 차로 담가 두고두고 먹을 생각으로 차를 담갔다. 제 이름처럼(모과의 본명은 木果, 또는 木瓜이다) 딱딱해서 잘 썰어지지 않는다. 이 세상 어떤 과일보다 아름다운 향기를 오래도록 간직하려고 이렇게 단단한 과육(果肉)을 키워냈는가 싶다. 그 단단함 속에 까만 씨앗들을 너무도 질서 정연하게 가득 채워 놓았다. 저 씨앗을 함부로 빼앗기지 않고 지켜 내려고 이렇게 단단한 껍질을 쌓아 두었는가 싶다. 

제법 큰 유리병 두 개에 가득 담갔는데, 생전 처음 내 마음대로 해 본 일이라 제대로 담가졌는지나 모르겠다. 노랗게 익은 모과를 썰면서 나는 모과의 일생을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토록 여리고 어여쁜 꽃에서 그토록 딱딱하고 못생긴 열매가...

지난봄, 울퉁불퉁한 나무에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여리고 어여쁜 분홍색 꽃을 보며 그 꽃 속에 담긴 뜻을 생각했었다. 지난여름, 아름답지도 않고, 먹음직스럽지도 않고, 세상 못 나고 딱딱한 과일을 보면서, 그토록 아름다운 꽃이 저렇게 못난 과일을 위해 제 온몸을 버리고 썩어진 뜻을 생각했었다. 지난가을, 세상의 모든 과일들이 저마다의 아름다운 빛깔과 맛을 뽐낼 때, 시장 바닥 한쪽에 책보를 깔고 앉은 할머니의 갈퀴 같은 손에 들려 천원에 두 개씩 팔리던, 그나마 모과의 아름다움을 조금이나마 아는 이들에게 겨우 하루에 여남은 개나 팔리던 모과를 보면서 ‘사랑’을 생각했었다. 모과나무와 모과꽃의 사랑. 모과꽃과 모과 열매의 사랑. 눈에 보이는 사랑과 가슴으로 아는 사랑...

나는 오늘 모과차를 담근다. 진눈깨비 내리는 창밖을 보며, 이제 드디어 제 살을 온통 난도질당하며 마지막 향기를 유리병 속에 간직하는 모과의 숭고한 마지막 모습을 담는다. 손을 몇 번이나 씻었어도 여전히 손끝에 남아있는 모과 향기처럼, 아름다운 향기를 오래 간직하는 삶에 대하여 생각한다. 유리병 속에 갇혀있다가 오늘처럼 진눈깨비가 내리거나 얼어 터지게 추운 어느 날, 뜨거운 물 속에 제 살을 녹여 이 세상 가장 깊은 향기와 맛으로 다시 태어나고, 끝내 향기로 죽을 모과차처럼 사는 일에 대하여 생각한다.

모과와 모과꽃을 보며 사랑을, 인생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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