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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샘 Nov 02. 2022

본조르노, 시칠리아      

0. prologue


  중학교 국어시간에 나를 예뻐하셨고 내가 사모했던 김원숙 선생님은 소설의 3요소는 ‘주구문’이며 소설 구성의 3요소는 ‘인사배’라며 반드시 외울 것을 강조하셨다. ‘주구문’은 주제·구성·문체이며 ‘인사배’는 인물·사건·배경이다. 사모하는 김원숙 선생님의 가르침인지라, 쉽지 않은 그 개념들을 나는 바로 외웠고, 지금도 외우고 있다. 그 영향 때문인지 나는 걸핏하면 '~의 3요소'를 붙이기를 좋아한다. 이를테면 직장생활의 3요소는 ‘눈치, (속으로만 하는)욕, (거짓)웃음’이며, 결혼생활의 3요소는 ‘참음, 견딤, 인내’와 같은 식이다. 단언컨대 여행의 3요소는 ‘돈, 시간, 사람’이다. 김원숙 선생님의 가르침을 소환하자면 '돈시사'가 내가 생각하는 여행의 3요소인 것이다.


  현대의 여행에서는 ‘돈’이 필수적 요소이다. 물론 돈이 없어도 되는 여행이 있긴 하지만, 적어도 해외여행이라면 돈이 있어야 여행 계획이라도 세워볼 수 있다. 다음은 ‘시간’이 필요하다. 여기서 ‘시간’은 몇 가지 의미를 동시에 내포한다. 여행을 할 만한 시간적 여유, 여행을 하기에 적당한 계절, 여행을 가야할 계기나 시기 등이 맞아야 한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뭐니 뭐니 해도 ‘사람’이다. 여기서 ‘사람’은 물론 여행을 함께 가는 사람을 말하지만, 혼자 가는 여행 또한 ‘사람’과 관련이 있다. 함께 갈 사람이 없거나 일부러 혼자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함께 여행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나마 서로를 잘 아는 친구나 연인, 가족이라 해도 여행을 하다가 사이가 틀어지는 경우를 수도 없이 많이 보았다. 그러니 여행을 가서도 사이가 틀어지지 않을 사람과 함께 가는 여행은 축복이다.


  아무려나 나에게는 여행의 3요소가 기막히게 갖추어졌다. 첫째, 돈이다. 돈이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내와 합하여 60년 넘게 직장생활을 했으니 외국여행 한번 갈 정도의 돈은 있어야 정상 아닌가. 둘째, 시간이다. 물론 나는 30년 넘는 교사생활을 마치고 퇴직을 했으니 시간이 남아돌아간다, 고 생각하면 오해다. 퇴직은 했지만, 여전히 늘 바쁘다. 학기마다 대학 강의도 한 두 개씩 하고 있고, 뒤늦게 공부한답시고 논문도 써야 하고, 학회나 공부 모임에도 쫓아다니고, 운동도 하고, 옥상에 텃밭도 가꾸고... 이번 학기에는 월요일에 강의를 맡았는데, 공교롭게도 10월 첫 주와 둘째 주 월요일이 공휴일이다.(예전에 휴일에는 당연히 강의 안 하고 넘어갔는데, 요즘엔 반드시 보강을 해야 한다. 하여, 사전에 2주 치 강의를 녹화하여 올려놓았다.) 그러니까 최소한 15일 이상의 시간이 생긴 것이다. 게다가 올해가 내 환갑이다. 게다가 성수기이자 계절 안 좋은 여름과 겨울이 아닌 한가을이다. 또 게다가 올해 딸내미가 직장에서 장기 휴가를 얻었다. 하나라도 어긋났다면 어려웠을 터인데, 그 모든 것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리고 셋째, 사람. 아내는 여행 가서 먹고 자는 것에 좀 힘들어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최근 꾸준한 운동과 건강한 식생활로 많이 건강해져서 스스로도 강한 의욕을 보였다. 게다가 든든한 보호자이자 가이드인 딸내미와 함께라면 어디든 어려움이나 두려움이 없다는 것을 이미 우리는 경험한 터이다. 

  3년 동안 전 인류를 그로기상태로 몰아넣었던 코로나가 좀 잠잠해지고, 하늘길이 다시 열린 것이 이 여행을 가능케 했음은 물론이다. 왜 굳이 시칠리아인가라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 시칠리아에 가고 싶어서가 그 답이니까.

비행기표 예약부터 질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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