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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샘 Nov 03. 2022

본조르노, 시칠리아

01. 기내식의 추억

코로나로 하늘길이 막히자 시간마다 다니던 공항버스가 세 시간에 한 대로 줄었다. 집 앞에서 공항버스를 타면 세상 편했는데, 이번에는 시간을 도저히 맞출 수 없었다. 공항철도를 타려 했지만, 그 크나큰 짐을 끌고 메고 지하철역 계단을 오르내릴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결국 지하주차장에서 빈둥거리는 ‘호세(우리 차의 이름이다)’를 호출했다. 전에도 몇 번 이용한 인천공항 주차대행 회사에 연락하니 15일에 9만원이라 했다. 그 정도면 훌륭하다. 공항버스도 둘이 왕복이면 6만원이 훨씬 넘는데, 집 앞에서 짐 싣고 타고 가서 출국장에서 내리면 되지 않는가?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고.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하고 고민했나 싶을 정도로 우리는 한순간에 머리가 개운해졌다. 


서두를 일도 없었다. 천천히 차를 몰아 출국장에 도착한 때는 출발이 두 시간 반이나 남은 시간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짐을 부치고 출국수속을 하는데 10분도 안 걸렸다는 사실이다. 이른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몰리자 아시아나 항공은 일제히 창구를 열고 순식간에 짐을 실어주었다. (이런 훌륭한 시스템에 길들여진 것이 불과 하루 뒤에 어떤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지 우리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덕분에 우리는 부실하게 먹은 아침 대용으로 싸 가지고 간 과일이며 커피 등을 먹으며 여유롭게 출국을 기다렸다.


비행기는 정시에 출발했고, 출발한 지 한 시간이 지나자 밥이 나왔다. 기내식을 먹으려고 비행기를 탄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기내식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있다. 코로나 기간에 ‘여행을 못 가서 환장한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고 기내식을 먹고 하늘을 한 바퀴 돈 다음 다시 내렸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전해질만큼 기내식은 별것도 아닌데 사람을 설레게 하는 묘한 무언가가 있다. 원래 인천에서 로마까지는 11시간 정도 걸려야 정상이다. 그런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때문에 항로가 바뀌어 두 시간이 더 걸린다 했다. 전쟁은 당사자뿐 아니라 전 지구에게 민폐임이 분명하다. 아무리 착한 전쟁도 나쁜 평화만 못하다는 명언이 떠올랐다. 기내식을 먹자마자 나는 잠을 청했다. 벌건 대낮이지만 시차를 극복하려면 지금 한밤중인 현지 시간에 맞추는 게 최선이다. 다행히 얼른 잠이 왔다. 새벽 일찍 일어나느라 밤잠을 설친 것도 한몫을 했다. 한잠 자고 일어나 영화 한 편을 보고 나니 또 밥을 준다. 그 귀한 기내식을 두 끼나 먹고 영화를 두 편 보는 동안도 비행기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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