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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샘 Feb 16. 2024

집냥이가 길냥이에게

내가 거의 매일 산책을 하는 관악산 기슭에 길냥이들이 여럿 살고 있다. 그곳에 고양이가 사는 까닭은 당연히 돌보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고양이가 사람의 돌봄 없이 자급자족하기는 어려운 일인데다, 대부분 본래는 사람들이 키우다가 버린 아이들이거나 그들의 자손들이므로 사람들에게 돌볼 책임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버린 사람 따로 거두는 사람 따로라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만드는 세상일이 대체로 그렇다.     

당뇨로 고생하는 우리 집 '라떼'는 만사가 귀찮다

오후 3시면 변함없이 고양이들에게 밥과 물을 챙겨주러 다니는 노부부가 계신다. 고양이들은 대체로 성격이 아이(I)인 까닭에 밖에 함부로 나다니지 않고 어딘가에 짱박혀 있길 좋아한다. 그런데 3시면 되면 어디 있다가 나왔는지 어슬렁어슬렁 급식소 근처로 모여든다. (고양이의 생체 시계는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다.) 나는 멀찍이서 그 모습을 여러 번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우리 집 창고에 쌓여있는 고양이 사료 몇 포대가 생각났다. 우리 집 흰 고양이 ‘라떼’가 먹던 사료이다. 그런데 라떼는 1년 전부터 당뇨병에 걸려 일반 사료를 먹이지 않고 당뇨 전용 사료를 먹는다. 그래서 미리 사 놓았던 것이 그대로 쌓여있는 것이다. 나는 조심스레 그분들께 사정을 얘기하고, 조만간 그 사료들을 가져다 놓겠다고 이야기했다. 여러 마리의 길냥이들을 돌보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그분들은 당연히 고맙다고 했다.     


오늘 퍼뜩 그 약속이 생각나서 배낭에 사료 포대를 담았다. 배낭에는 두 포대밖에 들어가지 않아 한 포대는 따로 비닐 봉투에 담아 들고 산으로 향했다.      

“바우야!”

“바우야아!!”

관악산 기슭에 ‘바우’를 부르는 외침이 울린다. 그분들이다. 아마 고양이 중 한 녀석의 이름이 바우인 모양이었다. 다른 녀석들은 밥을 먹고 있는데 한 녀석이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엄마들 밥 차려놓고 아이들 부르듯이 연신 ‘바우야!’를 외치자 어디서 딴짓하다가 아차 싶었던지 한 놈이 달려온다.      

항아리가 이 녀석의 쉼터이자 캣타워다

그 모습을 저만치 바라보면서 나는 사료를 가져다 놓기로 약속한 장소로 갔다. 그곳은 항아리들이 군데군데 엎어져 있고, 따스하게 햇볕이 드는 데다가 뒷쪽은 울타리라서 고양이들이 숨거나 쉬기에 가장 좋은 장소였다. 거기에 제집처럼 상주하는 녀석들이 몇 있다. 내가 다가가자 한 녀석이 항아리 위에 앉았다가 슬쩍 울타리 쪽으로 피한다. 나는 녀석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살금살금 다가가 조심스레 배낭을 열고 사료 포대를 쌓아놓았다. 혹시라도 의아해 하실까 봐 편지도 써서 붙여 놓았다.     

 

'샤료'는 또 뭐람??

내가 돌아서자마자 예의 그 항아리 고양이가 담장에서 냉큼 나오더니 사료 포대 앞에 떡 버티고 앉는다. “이건 내 거니까 아무도 손대지 마라.” 경고하는 눈빛이다. 나는 잠시 어이가 없었지만, 오히려 그렇게 제 것을 챙기는 녀석이 대견하기도 했다. 사실인즉, 그 사료는 우리 집 라떼가 길가에 사는 친구들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그놈들이 그 정도는 알아주었으면 하고 산을 내려왔다.

이 사료를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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