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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샘 Feb 13. 2024

내가 버린 책들

나는 책을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고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았다. 하긴, 예전에는 책이라는 것 자체가 얼마나 귀한 물건이었던가! 어린 시절, 글자를 처음 깨우치고는 너무나 신기해서 나는 눈에 보이는 글자는 다 읽으려고 했다. 그러나 가난하고 배움이 전혀 없었던 할머니와 어머니와 함께 사는 깡촌에 책 같은 것이 있을 리 없었다. 그 흔한 신문 한 장도 없었다. 그나마 있는 책이라고는 학교에서 받아온 교과서가 전부였다. 나는 교과서를 읽고 또 읽어서 웬만한 것들은 다 외워 버렸다.


나는 책을 읽기 시작하면 아무리 재미없어도 끝까지 읽어야 한다고 교육을 받았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인가는 깨알 같은 세로글씨로 2단 편집이 된 ≪셰익스피어全集≫을 이를 악물고 끝까지 읽었다. 

그렇게 책에 관한 한 집착적으로 끝까지 읽기를 고집했던 내가 읽다가 도중에 버린 책들이 세 권 있다. 세 권 모두 거의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랐거나 제법 이름이 있는 작가의 책이었다. 그런 책을 반도 안 읽고, 헌책방에 판 것도 아니고, 그냥 쓰레기통에 처박았다는 것은 사실 나에게나 책에게나 퍽 불행한 일이었다. 


그중에 한 권은 공자에 관해 쓴 책이었는데(한때 엄청나게 파문을 일으켰고, 많이 팔린 책이었다), 나에게는 쓰레기로 보였다. 우선은 공자에 대하여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쓴 글이었고, <논어>의 의미는커녕 번역조차 못하는 사람이 공자를 논하고 있었다. 너무나 화가 나서 조금 읽다가 내버렸다. 


또 한 권은 추사 김정희에 관해서 쓴 책이었다. 책 좀 읽었다는 지인이 ‘강추’한 책이었는데, 앞에서 말한 공자 어쩌고와 비슷한 이유로 나는 끝내 읽을 수 없었다. 기본적으로 고전에 대한 독해와 이해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고전을 바탕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차라리 소설을 쓴다면 이해가 되겠지만, 곧 죽어도 무슨 에세이나 고전의 재해석 같은 이름을 달고 나온다. 


세 번째 책은 제목도 말랑말랑하고 내용도 말랑말랑한 책이었다. (사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책들을 제목에 속아 ‘잘못’ 사고 실망하는가!) 젊은 베스트셀러 작가의 책인데, 그 책은 현재 100쇄가 넘었고 130만부 이상이 팔렸다고 한다. 도대체 어디서 주워 모았는지 모르겠지만, 어디서든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는 말들을 가져다가 양념을 치고 조미료를 잔뜩 넣어 버무린 책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모두 자신의 경험과 생각에서 나온 것인 양 예쁘게 포장을 했다. 속이 메스껍고 눈꼴시어서 더 이상 읽을 수 없어 바로 쓰레기통에 넣어 버렸다. 


그래서 깨달은 게 있다. 유명세에 속지 말고, 제목에 속지 말고, 번드르르한 광고에 속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나 책이나 마찬가지이다. 내가 쓴 책들도 있지만, 나는 전혀 유명하지 않고, 주로 교육 관련 책인지라 제목도 재미없고, 내용은 더더욱 재미없다. 물론 광고도 한 적이 없다. 그래서 다행이라는 말은 아니다. 이후에 또 책을 낸다면 누군가 다 읽지도 않고 쓰레기통에 처박을 책은 아니어야겠다는 자경(自警)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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