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흰샘 Feb 09. 2024

흰샘의 漢詩 이야기

매화 한 가지에 담긴 情

春到江南第一枝[춘도강남제일지]

봄 오는 강남 땅에 처음 핀 매화 가지

一團和氣淡容儀[일단화기담용의]

한 덩이 화기(和氣)가 맑은 자태에 가득하네

騷經不入騷人恨[소경불입소인한]

이소경(離騷經)에 들지 못하는 시인의 한 달래려

折贈湘累續楚辭[절증상루속초사]

굴원에게 꺾어 보내 초사(楚辭)를 잇게 하네.

[번역: 흰샘]     

<蘇監司世讓送梅花一枝遂作一絕奉呈[소감사세양 송매화일지 수작일절 봉정]: 전라감사 소세양이 매화 가지 하나를 보냈기에 마침내 절구 한 수를 지어 받들어 올리다.>라는 긴 제목을 가진 작품이다. 漢詩를 구성하는 요소 가운데 매우 중요한 것이 제목이다. 그 속에 시의 내용이나 주제가 들어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시의 제목은 길고 자세하지만 제목만으로는 시 안에 들어있는 뜻을 다 알기 어렵다.


신잠(申潛, 1491~1554)은 신숙주의 증손으로 화가로도 유명한 인물이다. 일찍이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유배를 갔다. 그때 소세양(蘇世讓, 1486~1562)은 전라도 관찰사였다. 전주에 일찌감치 매화가 피었던 모양이다. 소세양은 처음 핀 매화 가지 하나를 잘라 유배객인 신잠에게 보낸다. 과연 풍류객 소세양답다. 하지만, 이는 단지 소세양의 풍류만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매화란 기실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향기를 풍기는 선비의 고고한 절개와 정신을 상징하는 것이니, 사화 때문에 유배생활을 하는 벗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뜻이었으리라. 


다시 시 속으로 들어가 보자. 소세양이 보낸, 돈도 술도 아닌 일지매(一枝梅)를 받아들고 신잠은 그 속에 들어있는 벗의 화기와 맑은 풍모도 함께 느낀다. 3구와 4구는 자못 의미심장한데, 당시 신잠의 처지를 모르면 이해할 수 없는 구절이며, 또한 이 구절을 이해하면 굳이 신잠에 대하여 조사하지 않아도 그가 유배객임을 짐작할 수 있다.(나는 후자의 경우였다.) 이런 것이 한시의 묘미이며, 한시를 읽는 한 방법이다. 시에서 굴원이 나오면 대부분은 유배를 떠올려야 한다. 그것도 파렴치한 범죄를 저질러서가 아니라 억울하게 참소에 걸리거나 임금의 눈밖에 나서 쫓겨난 경우에 해당한다. 제3구의 ‘소경(騷經)’은 굴원의 저작인 이소경(離騷經)을 줄인 말이다. 


여기서 ‘이소(離騷)’에 대하여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사마천의 ≪사기≫에서는 ‘離騷’를 ‘우환을 만났다’로 보았다. 그 이후 대부분의 의견이 사마천을 따른다. 그러나 한(漢) 나라의 주석가 왕일(王逸)은 ‘離’는 ‘이별’로 보았고, ‘騷’는 ‘근심’으로 보았다. 근심을 떠났다는 말이 아니라, 왕과 이별한(쫒겨난) 시름을 표현한 것이 바로 이소경이라고 본 것이다. 아무튼 이 ‘離騷’라는 말은 이후에 詩의 대명사로 쓰이게 되었고, 그래서 시인을 소인(騷人)이라고도 부르게 되었다. 3구의 ‘騷人’은 바로 신잠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제4구의 상루(湘累)는 굴원의 별칭으로도 쓰이는 바, 시인 자신을 가리킨다. 굴원이 쫓겨나 끝내 몸을 던진 강이 바로 상수(湘水-상강湘江, 소상강瀟湘江이라고도 한다)이다. 이 구절은, 굴원처럼 쫓겨났는데 이소경 같은 작품도 쓰지 못하는 유배객에게 매화 한 가지를 보냄으로써 초사(楚辭)를 잇게 했다는 것이다. 초사는 바로 굴원의 이소경에서 비롯한 시체(詩體)이다. 자신을 굴원에 대입하고 자신의 시를 초사에 대입하며, 이것이 모두 당신이 보내준 매화 한 가지 덕분임을 은근히 고하고 있는 것이다. 간단하다면 간단하고, 복잡하다면 복잡한 것이 바로 한시의 번역과 해석이다. 

신잠, <탐매도>

한 가지 덧붙이자면, 신잠은 그림에도 매우 뛰어났는데, 국립중앙박물관에는 그가 그린 <탐매도(探梅圖)> 한 점이 남아있다. 당나라 시인 맹호연이 절룩이는 나귀를 타고 눈 속에서 매화를 찾아갔다는 고사를 그린 그림이다. 신잠의 매화 그림은 어쩌면 유배 시절 소세양에게 받은 일지매가 바탕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의 문우(文友)인 김주부 박사가 페이스북에 원문(原文)을 올렸기에, 내가 번역을 해 보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려고 쓴 글이다. 

작가의 이전글 명절 선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