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을 끓이다가 물을 너무 많이 부어버렸다. 라면 국물이 몸에 좋지 않다고 하여 면만 건져 먹고 국물은 많이 마시지 않았다. 그런데 가만 보니 그 국물이 '오래 전 국물'을 닮았다.
아마도 라면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일 것이다. 내가 아주 어릴 때로 기억하니까.
어머니가 장에 가서 그 귀하디 귀한 라면을 두 봉지 사 오셨다. 말할 것도 없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먹이려고 사오신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도 계시고 아무리 '쓰잘데 없'지만 딸이 셋이나 있는데 하나만 사기는 좀 그랬나 보다.
아무튼 어머니는 마당 한쪽에 밥솥을 걸고 물을 붓고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하도 어릴 때라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 물을 두 바가지 정도는 부었을 것이다. 스프를 넣고 라면을 넣고 불을 땐다. 김이 나기 시작하자 생전 처음 맡아보는 그 놀라운 MSG 향기의 유혹에 이끌린 동네 아이들이 대문도 없는 우리 집 앞으로 몰려들었다. 어머니는 그 아이들을 짐짓 외면하며 국수를 한 봉지 더 넣어서 양을 불렸다. 당연히 소금도 한두 숟갈을 투여했다. 물론 꼬들꼬들한 라면 한 그릇을 나에게 먼저 퍼 준 뒤였다. 희멀건하고 푹 퍼진 국수와 꼬불꼬불하고 꼬들꼬들한 라면은 어찌나 그리 격이 다르던지... 참으로 라면은 고급스럽고 고귀한 신분의 식품이었다.
집 앞에 모인 아이들을 차마 그냥 내칠 수 없었던 어머니는 그 아이들에게 라면 수프가 첨가된, 하지만 너무 싱거워서 소금으로 간을 맞춘 국물을 조금씩 퍼 주었다. 거기에 어쩌다가 꼬불꼬불한 라면 면발 부스러기가 한두 개라도 들어가면 아이들은 그야말로 환장을 했다...
오늘 물을 너무 많이 부어 면발을 건져먹고, 두 모금이나 들이켜고도 국물이 흥건하게 남은 라면 국물을 보니 그 옛날 그날이 생각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