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샘의 한시(漢詩) 이야기
[번역과 해설: 흰샘]
긴 장맛비가 잠시 그쳤다. 숲속의 초목들도 후줄근히 젖었다. 건너에서 밥 짓는 연기가 오른다. 기압이 낮아서인지 연기마저 더디 오른다. 장마철이라고 농사를 쉴 수는 없다. 여자는 명아주를 삶고 기장밥을 지어, 장맛비에 물러진 묵정밭을 일구는 남자에게 간다.
한창 자란 벼가 푸르게 펼쳐진 무논 위를 순백의 해오라기가 가로질러 날아가고, 짙은 녹음 속에 노란 꾀꼬리는 노래가 한창이다. 빛깔과 소리가 공존하고, 원근이 함께 있다. ‘막막’과 ‘음음’은 둘 다 의태어지만 각각 경치와 소리를 닮았다. 절묘한 배치다.
산중에서 고요함을 닦는 시인은 아침에 핀 무궁화를 바라본다. 저녁이 되면 질 것이다. 자연의 이치를 터득하는 것이 득도다. 소나무 아래에서 재계를 마치면 하루 먹을거리를 찾는다. 아침 이슬에 젖은 아욱이 제격이다. 이거면 영육(靈肉)의 양식으로 두루 족하다.
이제 가만히 돌아본다. 한때 글과 그림으로 이름도 날리고 벼슬도 높았다. 이제는 시골에서 늙어가는 늙은이일 뿐이다. 더 이상 자리다툼 할 일도 없다. 그런데 욕심 없는 사람에게는 의심 없이 다가온다는 갈매기는 무슨 일로 아직도 나를 꺼리는가? 아, 아직도 버리지 못했구나. 아직도 멀었구나...
왕유(699~761)는 당나라 때의 저명한 시인이자 화가이다. 자는 마힐(摩詰)이며 벼슬은 상서우승(尙書右丞)이었으므로 흔히 ‘왕마힐’ 또는 ‘왕우승’으로도 불린다. 자연 시인의 대표로 꼽히며, 남종화의 창시자로 널리 알려졌다. 작품에 시집 ≪왕우승집(王右丞集)≫이 있다. 자연주의를 표방하였으며, 불교에도 심취하였다. 그의 별명은 시불(詩佛)이다. 말년에는 벼슬을 버리고 망천(輞川)에 별장을 짓고 살았다. 위 작품의 원제는 <적우망천장작(積雨輞川莊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