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하다>라는 이름을 가진 책이 있다는 사실을 꼭 1년 전에 알았다. 어느 날 “[브런치스토리] 작가님께 새로운 제안이 도착하였습니다!”라는 제목의 메일이 날아왔다. 열어보니, 내가 브런치에 쓴 글 하나를 자신이 발행하는 번역 전문 도서에 실어도 되겠느냐는 발행자의 제안이었다. 이미 브런치에 내놓았는데, 굳이 숨길 것도 아낄 것도 없는지라 당연히 승낙했다.
책이 나와 읽어 보니 다른 글들은 대체로 전문 번역가들의 글이었다. 나도 한문 번역서(공역)를 몇 권 낸 일이 있는지라 번역의 중요성이나 어려움을 실감하고 있던 차였다. 참 좋은 글인데 번역이 엉망이어서 그 가치가 반감한 책을 읽은 경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전문 번역가가 아니고 그저 논문이나 공부를 위한 번역을 주로 하기 때문에 번역 문제를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며칠 전에 같은 곳에서 두 번째 메일이 왔다. 이번에도 브런치에 올린 나의 번역 관련 글을 싣고 싶다는 제안이었다. 이번에도 당연히 승낙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계좌번호를 보내라는 추신이 달렸다. 정중히 거절했다. 주변에 출판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을 통해 출판업계가 얼마나 힘든지 잘 아는 터였다. 많이 팔리는 대중서를 내는 출판사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출판사가 먹고 살기도 힘들게 근근이 ‘yuji’를 하고 있다. 이른바 ‘전문 서적’ 관련 출판사는 그중에서도 더 어렵다. 나라 곳간이 허술해지면서 그나마 쥐꼬리만 했던 지원금마저도 다 끊어져서 문 닫는 영세 출판사가 줄을 잇고 있다는 말도 들었다.
아무려나 번역을 우습게 보는 풍토는 한탄스럽다. 이번에 후배와 함께, 한 번도 번역된 적 없는 조선 후기 문서를 번역하고 논문을 쓰면서 그런 점을 지적했다. 학계에서는 ‘~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이 붙지 않으면 논문으로 취급도 안 한다. 번역은 그 ‘연구’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작업이다. 번역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번역에 대한 보상이 충분해진다면 번역의 질이 높아질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야 문학이든 학문이든 더 발전하고 풍부해지지 않겠는가? 한국에서 나온, 한글로만 된 책에만 머물지 않으려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