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종사 주련에 시비를 걸다

흰샘의 한시 이야기

by 흰샘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어딜 가서 한자(漢字)로 씌어진 글을 보면 걸음이 멈춰진다. 대체로 오래된 건축물이나 사찰에 많다. 특히 사찰에 가면 반드시 기둥마다 주련(柱聯)이 걸려있다. 그 내용은 대체로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하고 불법(佛法)의 심오함을 강론하는 것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간혹 그 절을 대상으로 지은 한시(漢詩)를 걸어놓기도 한다.

수종사는 운길산 중턱에 있는 멋진 절이다. 그곳에 오르면 저 아래로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쳐지는 두물머리가 한눈에 보인다. 절에 들어서면 가정 먼저 보이는 전각이 선불장(選佛場)이다. 그 다섯 개의 기둥에 아주 멋진 초서(草書)로 나무판에 새긴 주련(柱聯)이 걸려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寺下淸江江上烟(사하청강강상연) 절 아랜 맑은 강물 강 위엔 부연 안개

②峰巒如畵揷靑天(봉만여화삽청천) 그림 같은 봉우리는 하늘 높이 솟아있네

③有力雷公藏不得(유력뇌공장부득) 뇌공(雷公)은 그 힘을 숨길 수 없으니

④百花香動鷓鴣啼(백화향동자고제) 백화 향기 진동하고 자고새 우노라

⑤玄冥榻在殿中間(현명탑재전중간) 현명(玄冥)의 걸상은 불전 가운데 있노라.


이게 도대체 뭔 말인가? 우선은 한시의 기본인 운자(韻字)가 맞지 않는다. 게다가 7언 5구로 되어 있다. 한시에는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구수(句數)가 홀수로 끝나지 않는다. 심지어 인터넷 등에는 ①②③④ 네 구절만 실려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면 말이 되지 않는다.

이 시는 초의선사(1786~1866)의 작품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초의시고>를 뒤져 보았다. <水鍾寺次石屋和尙詩(수종사차석옥화상시)>라는 제목으로, 칠언절구 12수의 연작시였다. 그중 위에 제시한 ①②③⑤가 제3수에 실려있다. 그러니까 다음과 같은 4구절이 한 편의 시인 것이다.

①寺下淸江江上烟(사하청강강상연) 절 아랜 맑은 강물 강 위엔 부연 안개

②峰巒如畵揷靑天(봉만여화삽청천) 그림 같은 봉우리는 하늘 높이 솟아있네.

③有力雷公藏不得(유력뇌공장부득) 뇌공은 그 힘을 숨길 수 없어

⑤玄冥榻在殿中間(현명탑재전중간) 현명의 걸상을 불전 가운데 놓았구나.


역시 선사(禪師)의 선시(禪詩)답다. 비와 우레를 주관하는 신인 뇌공이 그 센 힘으로 물의 신인 현명의 자리를 이곳에 옮겨놓았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하나로 합쳐지는 두물머리 위에 우뚝 서 있는 수종사를 그렇게 비유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④百花香動鷓鴣啼’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 구절은 12수 가운데 제8수의 말구(末句)에 있었다. 드디어 의문이 풀렸다. 그런데 사실 제8수의 말구는 ‘百花O動鷓鴣啼’라고 하여 ‘香’자가 빠진 채로 문집에 실려있다. 필사본 문집을 편집하면서 빼먹었을 터인데, 빼먹은지도 모르는 걸 보면 문집 편찬자의 실력도 어지간하다. 아무려나 이 주련은 잘못 걸었다. 하필 기둥이 5개라서 4개면 걸면 서운하다면 ④는 마지막 기둥에 걸어야 옳다. 완결된 시 한 편을 걸고 멋진 한 구절을 더한다면 시비할 일이 없을 것이다.

선불장주련_2.JPG 선불장에는 5개의 주련이 붙어있는데, 순서를 바꾸든지 하나를 빼야 옳다.

선불장 바로 맞은편에는 삼정헌(三鼎軒)이라는 무료 찻집이 있다. 무료로 차를 마실 수 있다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하여 불전함에 파란 지폐 한 장 넣어 드렸다. 그거면 하루치 손님들이 마실 차값은 될 것이다. 아무튼 차는 잘 마셨다. 그런데 왜 찻집 벽에 붙은 글은 봤는지 몰라...(글의 내용은 사진을 참조하면 된다.) 문제는 넷째 구절의 마지막 글자였다. 이 시의 운자(韻字)는 상평성 회(灰)운이다. 그러니 이 글자는 당연히 ‘잔 배(盃=杯)’가 되어야 하는데 ‘잔 잔(盞)’ 자를 써 놓았다. 하필 그 옆에 해설까지 잘해 놓은 글에는 盃로 되어 있다. 뜻은 같지만 운자를 가장 중요시하는 한시에서는 어길 수 없는 법칙이다. 역시 기본을 놓친 것이다. 뭐, 그런 걸 굳이 따지느냐고 하면 나만 옹졸한 놈이 된다. 그런데, 굳이 한자로 썼다면 틀리게는 쓰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니면 아예 쓰지를 말든가...

KakaoTalk_20250122_223401435_02.jpg 삼정헌 벽에 붙은 시. 왼쪽 4번째 구절 마지막 글자를 잘못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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