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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샘 Nov 12. 2022

본조르노, 시칠리아-06. 시라쿠사 가는 길

타오르미나를 떠나 시라쿠사로 가는 길에 빗방울이 듣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가을 날씨 생각하고 외투를 세 개나 가지고 갔는데 한 번도 입을 일이 없을 정도로 날씨는 여름처럼 더웠는데, 차라리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이 나았다. 타오르미나에서 시라쿠사까지는 1시간 반 이상이 걸리는 거리였다. 점심시간이 걸렸다. 도착하면 브레이크 타임에 걸릴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우리는 가는 길에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이번에도 검색 도사 딸내미가 고속도로에서 멀지 않은 동네에 있는 한 오스테리아를 찾아냈다.

이탈리아에는 하도 소매치기와 차량 털이범이 많으니 조심하라는 얘기는 수도 없이 들었고, 예전에 유럽 여행을 하면서 과감하고 뻔뻔한 소매치기들의 작업을 목격한 경험도 있다. 하여, 손가방은 반드시 어깨에 엇맨 다음 몸 앞쪽에 딱 붙여야 한다고 교육을 받았다. 휴대폰도 순식간에 나꿔채 간다고 딸내미는 떠나기 전에 가방과 휴대폰을 연결할 수 있는 끈도 준비해 주었다. 그런데 우리는 보름 동안 소매치기를 한 명도 만나지 못했고, 소매치기 비슷한 인간도 보지 못했다. 코로나로 인해 관광이 닫히니까 일자리를 잃은 소매치기들이 다른 일자리를 찾아 떠나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설이 유력했다. 

또한 이탈리아에서 운전을 할 때는 차 안에 아무 것도 넣어두지 말라는 얘기도 여러 번 들었다. 하지만 도시와 도시를 이동할 때는 커다란 짐 가방을 차 안에 싣지 않을 수 없잖은가? 우리는 경차인 안토니오가 뒷 트렁크에 오직 하나의 짐 가방밖에 받아주지 않는 속 좁은 놈인 걸 이미 알고 있다. 그러니 짐 가방 두 개는 뒷자리에 실을 수밖에 없었다. 이탈리아 차들은 우리나라처럼 시커멓게 선팅을 하지도 않는다. 차 안의 모든 것은 투명하게 노출되어 있다. 아무튼 이탈리아에서는 차 안에 가방을 두고 내리면 묻따 않고 창문을 깨고 가져가 버린다며, 이탈리아 여행 전문가라는 유튜버가 침을 튀기던 일이 떠올라 내내 불안했다. 

다행히 우리가 들어간 오스테리아(오스트리아 아님. 이탈리아 식당의 세 번째 계급 정도 되는 식당임) 바로 맞은편에 주차공간이 있어 우리는 안토니오를 마주보며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주인 남자가 서빙을 하는데, 음식점은 매우 깨끗하고 음식 또한 정갈했으며, 맛도 아주 좋았다. 우리는 샐러드에 파스타 두 개에 후식까지 먹었고, 우리가 추가 주문을 할 때마다 식당 주인은 시칠리아 産 눈웃음을 날리며 좋아했다. 조금 있으니 영화 <시네마천국>에 나오는 토토 같이 생긴 아이 한 명이 들어와 그 남자에게 안긴다. 아들인가? 손자인가?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초딩 1학년쯤 된 것 같다. 조금 있으니 동네 사람 몇이 들어오고, 토토의 형도 들어온다. 눈웃음 男은 그들과도 일일이 포옹을 했다. 흐뭇한 광경이었다.

우리가 식당에 들어설 즈음에는 금세 빗방울이 그치고 햇살이 쨍쨍하더니 다시 고속도로에 오르자 날이 잔뜩 흐려졌다. 급기야 카타니아를 지나 시라쿠사로 향할 즈음에는 본격적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가는 길에 보이는 산들이 참으로 특이했다. 산이 봉긋한 것이 아니라 아주 높은 언덕이 연이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언덕 꼭대기마다 영락없이 마을이나 도시가 있었다. 우리는 저곳에도 가보고 싶다고 말했을 뿐인데, 나중에 정말 그곳을 가게 되었다. 

우리는 아까 식당에서 보았던 토토를 떠올리며, <시네마천국>, <러브스토리> 등 수많은 명화의 음악을 만든 영화음악의 거장 엔리오 모리꼬네의 음악을 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시라쿠사에 도착할 즈음에 비는 다시 그쳐 있었다. 시라쿠사는 제주도로 치자면 성산에서 서귀포 가는 길목에 있는 고대도시였다. 우리는 이곳을 베이스캠프 삼아 4박 5일 동안 시칠리아의 동남부 곳곳을 휘젓고 다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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