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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샘 Nov 20. 2022

본조르노, 시칠리아-10. 라구사와 라구요

라구사는 시라쿠사에서 차로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내륙도시이다. 제주도로 치면 중산간 마을 정도랄까. 고속도로는 더없이 한산했지만 과속할 이유는 1도 없었다. 가는 길에 보이는 모든 풍경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특히 무슨 고원처럼 끝없이 펼쳐진 구릉지대의 풍광은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경이로운 풍경이었다.

동행한 모녀는 ‘라구사’라는 이름이 자꾸 입에 붙지 않는단다. 나는 강산에의 노래 ‘라구요’를 생각하면 쉽게 외워진다며 수십 년 동안 묵힌 암기의 비법을 전수했다. 그리고는 딸이 멜론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연결한 강산에의 노래를 열심히 따라 부르며 라구사로 향했다. “죽기 전에 꼭 한 번만이라도 가 봤으면 좋겠구나, 라구요~”로 끝나는 노래의 마지막 부분은 ‘라구사~’로 바꾸어 불렀다. ‘라구요’뿐 아니라 ‘예럴랄라’, ‘넌 할 수 있어’, 그리고 IQ가 적어도 80은 넘어야 제목을 제대로 기억할 수 있다는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까지 정말 오랜만에 강산에 노래를 신나게 따라 부르며 라구사로 향했다.

라구사는 9개인가로 나누어진 시칠리아의 한 행정구역이면서 그곳 주도(州都)인 도시였다. 물론 고대부터 건설된 도시였지만, 중세 때 엄청난 지진이 일어나면서 땅이 꺼져 거대한 협곡이 생긴 곳이라 했다. 태백산맥을 넘어가던 옛길처럼 높고 구부러진 길을 헐레벌떡 넘고, 아스라한 협곡 사이에 놓인 다리를 조마조마 건너 우리는 라구사에 진입했다. 라구사는 대성당이 있는 구시가지와 건너편 언덕에 세워진 신시가지로 나뉘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구시가지 신시가지라고 하면 기껏해야 한국전쟁 이전과 이후 정도를 생각할 것이지만, 라구사에서는 그 사이가 고대와 근대의 거리만큼 멀었다. 

우리는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주차기계에서 선불로 2시간 주차비 3유로를 계산했다.(이탈리아는 거의 모든 주차장의 주차요금이 1시간에 1.5유로였다. 주차는 무조건 공영주차장에 하는 것이 안전하다.) 딸이 미리 봐 둔 식당은 구시가지 초입의 언덕에 있었다. 우리는 ‘La Bettola’라는 트라토리아(trattoria)에서 국수와 채소볶음, 완자탕 등을 먹었다.(셋 다 현지 요리 이름이 있었지만 그것까지 외울 재간은 없고 우리 식으로 하면 그렇다는 얘기다.) 우리가 들어서자 일찌감치 들어와 식사를 하던 가족이 있었다. 시칠리아에 와서 처음 보는 한국인 가족이었다. 부부와 아들, 딸로 보이는 가족은 말도 없고 눈인사도 없이 묵묵히 남은 음식을 먹더니, 뭐가 그리 급한지 접시까지 하나를 깨 먹고는 서둘러 나갔다. 우리는 와인과 맥주를 곁들여 느긋하게 식사를 하고 ‘까놀로’라는 라구사의 대표 디저트까지 먹고서야 일어섰다.

라구사의 La Bettola

유럽의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라구사도 중심은 성(聖) 조르지오 성당이었다. 성당을 중심으로 형성된 것이 구시가지였다. 처음에는 굳게 닫혀있던 성당 문이 잠시 후에 열렸다. 우리를 포함한 몇 명의 관광객이 얼른 들어가 웅장한 성당 안을 구경했다. 성당이 열린 이유가 있었다. 마침 주말이라 성당에서 결혼식이 열리는 모양이었다. 꽃다발이 줄줄이 들어오고 정복을 한 남녀들 또한 줄줄이 들어섰다. 나는 여기서 잘만 개기면 예식 끝나고 광장에 차려질 피로연 음식을 얻어먹을 수 있겠다 싶었으나 가족들에게 궁상스런 내 계획을 내비치진 않았다.

라구사는 신시가지에서 바라보는 구시가지의 모습이 관광의 핵심이라 했다. 우리도 충실히 그 말을 따르기로 했다. 언덕을 내려가 골목을 구불구불 지나 건너편 마을로 건너갔다. 내려간 것의 두 배는 올라가야 했다. 끝없는 계단이 마치 부산 초량동 파출소에서 꼭대기 동네로 오르는 것 같았다. 올라가는 길은 그늘지고 ‘더러웠다’. 곳곳에 개의 배설물들이 치워지지 않은 채로 뒹굴고 있었고, 계단 길은 온통 그들의 배설물로 얼룩져 있었다. 도대체 왜 이들은 개와 고양이를 그토록 사랑하면서 그 배설물은 치우지 않는 걸까? 큰비가 와서 저절로 씻기기를 기다리는 걸까? 이탈리아가 정말 G7 국가가 맞긴 맞는 건가? 온갖 생각을 하며 개X을 밟지 않으려 주의하며 계단을 오르고 또 올랐다.

라구사에서 만난 고양이

언덕에 기대어 이루어진 마을을 헉헉대며 올라가니 정말 기막힌 광경이 펼쳐졌다. 겨우 ‘기막힌’이라니... 이럴 때 나는 나의 표현력에 심각한 결핍을 느낀다. 사진도 한계를 갖기는 마찬가지다. 사실 우리가 감각하는 것들 가운데 그 무엇으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신시가지에서 구시가지를 바라본 것인데 내가 보기엔 두 공간에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이를테면 수백 년 전에 만들어진 도시에서 1천 년 전에 만들어진 도시를 본 셈이다. 

우리의 길잡이는 딸내미였지만 딸내미의 길잡이는 구글 지도와 웨이즈라는 내비 앱이었다. 딸내미는 영어를 제법 잘 하지만 이곳엔 영어를 1도 못하는 이들도 많아 그럴 때는 번역기 파파고를 이용했다. 세계 어딜 가도 이 녀석들만 잘 다루면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이제 전문 여행가라는 직업도 사라질 판이다. 아니 대부분의 분야에서 ‘전문’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아날로그적인 삶의 방식과 생각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디지털이 극도로 발달한 세계에서 요구되는 요소는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 보았다.

아무리 30년 무사고 경력과 강력한 내비가 있다 해도 이국에서 야간 운전은 부담스럽다. 하여, 우리는 해 지기 전에 부지런히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돌아오는 길에 모녀는 고단했는지 잠에 떨어졌고, 석양을 등지고 안토니오는 무사히 우리를 다시 시라쿠사로 데리고 왔다.

라구사 구도심의 성 조르지오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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