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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샘 Nov 21. 2022

본조르노, 시칠리아-11.이방인과 노또(Notto)

노또(Notto)는 라구사 가는 길에 있는 고대도시다. 라구사를 오가는 길에 들를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하루에 두 도시를 보는 것은 무리라 판단되어 노또만 따로 보기로 한 선택은 결론적으로 옳았다. 노또는 ‘로또’와도 발음이 비슷하고 글자 수도 두 글자뿐이라 금세 귀에 들어왔다. 노또 또한 라구사처럼 고원에 형성된 도시이다.

노또 가는 길, 날은 너무 뜨거웠다. 우리가 출국하던 9월 말에는 날씨가 아침에는 선선하고 낮에는 다소 더운 전형적인 초가을 날씨였다. 이탈리아의 가을 날씨는 한국과 비슷하다 하여 외투를 세 벌이나 준비했던 터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거의 한여름 수준이었다. 무엇보다 햇살이 너무나 투명하고 강렬하여 긴 옷을 입어도 햇살이 옷을 뚫고 살갗을 뜨겁게 달굴 정도였다. 운전을 하는 나는 왼쪽 팔에 그 강렬한 햇살을 고스란히 받아야 했다. 토씨를 끼었지만, 그 위로 마치 무엇으로 찌르거나 때리는 듯한 통증이 느껴질 정도였다. 


갑자기 까뮈의 <이방인>이 생각난 것은 바로 그 햇살 때문이었다. <이방인>에 나오는 살인사건도 배경이 지중해 아니던가. 주인공인 뫼르소는 권총을 쏘아 사람을 죽인 이유를 ‘햇살이 너무 뜨거워서’라고 대답한다. 나는 지중해의 그 미칠 듯한 햇살을 받으며, 말도 안 되는 그 살인 이유가 순식간에 이해될 것 같았다. 그런 이야기를 하며 우린 또 김동률의 노래 ‘이방인’을 들었다. 이제 앞으로 우리는 ‘라구요’를 들으면 ‘라구사’가 생각날 것이고, ‘이방인’을 들으면 ‘노또’가 생각날 것이었다. 

노또 역시 중심은 대성당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일요일이라 주차장은 공짜였고 성당 문은 열려 있었다. 우리는 성당 구경하러 들어갔다가 ‘본의 아니게’ 미사에 참여했으며, 웅장한 파이프오르간에 맞추어 성가를 부르는 성가대의 노래를 직접 보고 들을 수도 있었다. 대성당 건너편은 수녀원 같은 곳이었는데, 그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노또 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며 입장료를 받는 것이었다. 예수님이 보았다면 채찍으로 내리치며 상을 둘러엎었을 일이다. 세 명이면 6유로인데 5유로만 내란다. 티켓도 없고, 입장료는 그냥 입구를 지키고 있는 아줌마 마음이었다.(그 아줌마 전생에 우리나라에서 엿장수를 했을 것이 분명하다.) 꼭대기까지 올라가자 노또 전경은 고사하고 예의 그 햇살이 온몸을 찔러대기 시작하여 우리는 사진만 몇 장 찍고는 서둘러 계단을 내려왔다.

노또 대성당

오래된 시가지 길을 걸었다. 우리는 기념품 가게를 여러 번 기웃거렸지만 아직 아무 것도 사진 않았다. (결국 노또에서 먹다 남은 포도주병을 막을 수 있는 코크 마개를 하나 샀는데, 한 번 쓰고 뽑다가 부러지고 말았다.) 다른 고대도시처럼 시가지가 시작되고 끝나는 지점에 높은 문이 버티고 있다. 예전에는 당연히 성문이었을 것이고, 지금은 사라진 성벽이 도시를 감싸고 있었을 것이었다. 성문을 나서자 커다란 나무들이 터널을 이루어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공원이 나왔다. 한참을 벤치에 앉아 더위와 여행에 지친 몸을 쉬었다.

노또 성문 밖 나무 터널

다시 성 안으로 들어가 시가지를 슬슬 걸었다. 점심시간이라 길가의 식당에 앉아서 점심을 먹었다. 배가 부르자 나른해졌고, 우리는 다시 광장에 자리 잡은 노천카페에 앉아 디저트를 먹었다. 더욱 배가 부르자 더욱 나른해졌다. 아무래도 더 이상 걷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노또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서 노또만의 매력을 발견하는 것이 좋았을 터이지만, 하루쯤은 일찌감치 숙소에 들어가 쉬는 것도 이후 여행 일정을 위해 좋은 일이다. 하여, 아직도 햇살이 뜨거운 노또를 뒤로 하고 내비가 없어도 될 만큼 익숙해진 시라쿠사의 숙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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