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금니를 뽑았네
앓던 이를 뽑으면 시원할 줄 알았는데
사별(死別)처럼 쓸쓸하고 허전했네
적어도 오십 년은 나와 함께 살았지만
입 속 가장 깊은 곳에 숨어
한 번도 제 모습을 드러낸 적 없었네
죽도록 고생하다 마지막 짐을 진 채
쓰러진 당나귀를 본 적 있네
이른 저녁밥이 어금니의 마지막 저작(咀嚼)이었네
풀을 뽑다 풀뿌리의 완강함을 본 적 있네
내 턱뼈에 뿌리를 박고 살던 어금니는
몽혼주사에 취한 내 온몸을 흔들며
무시무시한 뻰찌에 완강하게 저항했네
어금니는 마침내 뿌리째 뽑혔네
스테인리스 통에 던져지는 소리에
안도와 서글픔이 한 번에 밀려왔네
엄마 젖 뗀 뒤로 나를 먹여살린 것은
팔 할이 어금니였음을 이제야 깨달았네
안녕, 어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