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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샘 Nov 23. 2022

안녕, 어금니,

어금니를 뽑았네

앓던 이를 뽑으면 시원할 줄 알았는데

사별(死別)처럼 쓸쓸하고 허전했네


적어도 오십 년은 나와 함께 살았지만

입 속 가장 깊은 곳에 숨어

한 번도 제 모습을 드러낸 적 없었네


죽도록 고생하다 마지막 짐을 진 채

쓰러진 당나귀를 본 적 있네

이른 저녁밥이 어금니의 마지막 저작(咀嚼)이었네


풀을 뽑다 풀뿌리의 완강함을 본 적 있네

내 턱뼈에 뿌리를 박고 살던 어금니는

몽혼주사에 취한 내 온몸을 흔들며

무시무시한 뻰찌에 완강하게 저항했네


어금니는 마침내 뿌리째 뽑혔네

스테인리스 통에 던져지는 소리에

안도와 서글픔이 한 번에 밀려왔네


엄마 젖 뗀 뒤로 나를 먹여살린 것은

팔 할이 어금니였음을 이제야 깨달았네

안녕, 어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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