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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샘 Dec 06. 2022

"용필이 오빠, 오래 사세요!!!"

딸내미가 조용필 콘서트 표를 예매해 아내랑 셋이 다녀왔다. 4년 전에도 딸내미가 예매를 해 주었다. 그땐 아내와 둘이서만 다녀왔더랬다. 조용필은 1950년생이니까 나보다도 열 몇 살이나 많은 형님이다.(콘서트장에서 용필이 형은 남성 팬들에게 ‘형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그냥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다.) 우리 나이로 73세. 과연 70 넘은 ‘할배’가 콘서트를 할 수 있을까? 게다가 조용필 노래가 얼마나 높고 빠른가? 쉽게 말해서 그의 노래는 부르기 어렵다. 아무리 자기 노래라지만 이 나이에 그 어려운 노래들을 소화한다고? 


사실 4년 전에도 그의 나이는 60대 후반이었고, 그때도 우리는 똑같은 의심을 품었었다. 그런데, 그때 그의 목소리는 조금도 변함이 없어서 너무나 놀랍고 감동적이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아내는 ‘조용필 같은 사람은 늙지 않았으면,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콘서트를 또 볼 수 있을까 의심하던 차에 코로나가 터졌다. 그렇게 3년을 보내고 4년 만에 조용필이 콘서트를 한다는 것이었다. 


이미 20번째 앨범인 신작 앨범도 내놓은 상태였다. 거기 들어있는 몇 곡을 들어보았다. 가사도 비트도 너무나 세련되고 아름답다. 예전의 조용필보다 더 발전하고 더 트렌디하였다. 그것은 놀라움이었다. 그러나 음반을 녹음하는 것과 현장에서 직접 노래를 하는 콘서트는 엄연히 다르다. 요즘은 가수들의 노래를 편집하는 기술이 정말 좋아져서 음정을 높이기도 하고 낮추기도 하며, 목소리의 거친 부분을 사포로 밀듯이 매끈하게 다듬기도 한다니 말이다. 그러니 음반은 내놓지만 콘서트를 절대 하지 않는(아니, 못하는) 가수들이 얼마나 많은가? 70 넘어서 콘서트를 한다는 것은 일종의 노욕(老慾) 아닌가? 그런 의심을 하면서, 그래도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콘서트일지도 모르니 꼭 보자는 마음으로 간 것이었다. 

콘서트가 열리는 올림픽공원으로 가는 전동차 안에는 우리 부부 또래의 부부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보나마나 우리와 목적지가 같은 사람들이다. 내 옆자리에 앉아있던 부부는 갑자기 다투기 시작했다. “표 가져왔지?” “표? 당신이 안 챙겼어?” “무슨 소리야? 당신이 가지고 나온다고 했잖아. 내가 나오면서 표 챙겼냐 하니까 당신이 챙겼다고 대답까지 해 놓고선.” “내가? 대답한 적 없는데...” “뭔 소리야? 분명히 당신이 챙겼다고 대답했다구.” “아닌데...” 그러나 아내의 목소리는 점점 힘이 빠져갔다. 남편은 오금을 박는다. “당신 요즘 만날 깜박깜박하잖아. 분명히 당신이 챙겼다고 했어.” “그런가...?” 그나저나 다툴 때가 아니잖은가? 아내는 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응, 엄만데. 너 조용필 표 예매한 거 그거 있지? 그거 좀 보내 줘.” (여기서 ‘그거’는 아마도 예매 내역 같은 것일 터이다.) 우리 부부와 마찬가지로 저 부부도 자식들이 예매를 해 준 것이 분명했다. 아무려나 그 자식 덕분에 다시 표를 찾을 수 있게 된 부부는 더 이상의 다툼을 그쳤다. 나이 들어가는 모습이 너무도 비슷해서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우리 부부는 아예 예매자이자 보호자인 딸을 대동하고 가는 길이니 표니 뭐니를 걱정할 일이 전혀 없었다. 평소에 한적할 것만 같은 토요일 저녁의 올림픽공원역이 미어터졌다. 안전요원들이 곳곳에 서서 질서유지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 또 다시 이태원 참사가 떠올랐고, 겨우 한 달여 만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희희낙락인 무책임한 자들을 생각하자 분노가 올라왔다. 


딸이 입장권을 바꾸러 간 사이에 콘서트장 앞에서 불이 번쩍거리는 응원봉 두 개를 샀는데, 아내는 역시 불이 번쩍거리는 머리띠도 사겠다고 해서 그건 말렸다. 아무려나 별빛이 번쩍이는 응원봉까지 하나씩 들고 우리는 콘서트장에 들어갔다. 무대 바로 앞의 마루에서부터 2층까지 좌석은 하나도 빈자리가 없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천하의 조용필 콘서트인데. 그러나 나는 여전히 걱정 반, 의심 반이었다. 73세의 조용필이 걱정되었고, 그의 목소리가 여전한지 의심스러웠다.

나의 걱정과 의심이 공연한 것이었음은 그가 첫 곡의 첫 소절을 부르자마자 증명되어 버렸다. 나는 여기서 그의 공연을 세세히 중계할 일은 없다. 그저 놀랍고, 부럽고, 존경스러운 마음을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의 목소리는 조금도 늙지 않았고, 심지어 그 높고 어려운 노래의 키(음정)를 조금도 내리지 않았다. 그는 2시간 넘는 동안 단 한 명의 초대 손님도 쓰지 않았고, 간단한 인사말을 건넸을 뿐 쓸데없는 이야기로 시간을 때우지도 않았다. 오직 쉴 새 없이 노래를 하고 기타 연주를 했다. 쉬는 시간도 없었으며, 의자에 앉는 법도 없었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심지어 물을 마시는 것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오늘이 생애 마지막 날인 듯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었다. 그는 그것이 자신의 사명이며, 자신을 여전히 사랑하는 팬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용필이 오빠’를 외치며 따라다니던 단발머리 소녀들은 이제 반백의 초로(初老)가 되었지만, 콘서트장 안에서는 여전히 청순한 소녀들이었다. 그들이 외쳤다. “오빠, 오래 사세요!”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지만 나는 순간 울컥해졌다. 이보다 더 절절한 바람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콘서트장을 나서는데, 콘서트깨나 다녀본 딸내미가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자신이 많이 보았던 어떤 젊은 가수도 저렇게 하지 않는다는(못한다는) 것이었다. “저 형은 원래 저래.” 나는 공연히 내 일인 양 의기양양해졌다. 우리는 이제 의심하지 않았다. 다음에 조용필 콘서트를 한다면 우리는 당연히 또 갈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이번이 마지막일 거야’하는 불경스러운 생각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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