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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샘 Dec 10. 2022

본조르노,시칠리아-17.이름 없는 이들이 만든 이름들

오늘은 본격적인 팔레르모 관광에 나섰다. 우리 숙소가 있는 중앙역(Stazione Centrale)에서 구도심까지는 물론 버스도 있지만, 대개는 걸어 다녔다. 구도심 중앙 광장은 우리나라 명동쯤 될 것이다. 음식점마다 거리에 탁자와 의자를 내놓고 장사를 하는 바람에 가는 사람 오는 사람 먹는 사람 등으로 거리는 장바닥이었다. 코로나의 태풍이 지나가고 본격적인 해외여행이 풀리면서 수많은 나라에서 온 수많은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로 붐비는 인파를 뚫고 찾아간 곳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오페라 극장이라는 마시모 극장이었다. 영화 <대부>의 촬영지이기도 하니 아마 ‘마씨’(우리가 붙인 ‘마피아’의 별명)들이 실제로 활약했던 동네일 것이 분명했다. 

마시모 극장의 머리 부분

하필 그날이 극장이 문을 열지 않는 날이었는지 극장 내부를 보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외형만 보아도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너른 뜰 입구에는 학문과 예술의 여신인 뮤즈의 신상이 양쪽에 서 있었다. 우리는 극장으로 올라가는 계단 그늘에 앉아 숙소에서 싸 가지고 간 커피며 과일을 먹으며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며 마차들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온갖 이국적인 것들이 이제는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배가 고픈 일은 평생토록 익숙해지지 않았다. 식당을 찾아야 했다. 


검색의 여왕 딸내미가 마시모 극장 맞은편 골목에 정말 싸고 맛있는 식당을 찾아냈다. 규모는 작았지만, 사람들이 줄을 몇 겹으로 서야 하는 집이었다. 우리는 운 좋게 북적이는 식당 안을 피해 골목 한쪽에 놓인 야외 테이블 하나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 집은 시칠리아의 대표 음식 가운데 하나인 아란치니가 유명했다. 아란치니는 주먹밥 같은 것을 넣고 튀김옷을 살짝 입혀 튀겨낸 음식처럼 보였다. 겉모습은 꼭 도넛처럼 생겼는데 속에는 볶음밥 내지 주먹밥 같은 것이 치즈와 섞여 있다. 밥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로서는 반가운 음식이었다. 물론 파스타는 빠지지 않았다. 느끼한 음식에는 역시 맥주가 제격이었다.

마시모 극장 맞은편 골목식당의 점심

오늘 갈 곳은 팔레르모 구도심에서 버스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몬레알레’ 대성당이었다. 시내 중심가인지라 버스 정류장에는 남녀노소로 꽉 차 있었는데, 드디어 우리가 탈 389번 버스가 들어왔다. 버스는 이미 만원이었다. 이탈리아 버스는 보통 문이 세 개 있는데, 나는 가장 뒷문 앞에 서 있다가 얼른 들어가 누군가 내리려고 일어선 자리에 잽싸게 앉았다가 뒤늦게 탄 여성분에게 양보했다. 마침 하교 시간이었던지 중학생들이 우르르 올라탄다. 모이면 떠들어대는 것은 우리나라 중학생과 다름없었다. 만원버스는 비좁고 막히는 도심을 빠져나가서야 조금씩 헐거워졌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몬레알레에 도착했다. 시칠리아 특유의 좁고 가파른 언덕길을 또 한참 올라가자 성당이 보였다. 시칠리아에서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몬레알레 성당이었다. 입장권을 끊기 위해 줄을 서고, 성당에 들어가기 위해 또 줄을 섰다. 

몬레알레 성당 내부 모습

성당 내부는 천장부터 시작하여 대부분의 조형물들이 모두 순금으로 입혀져 있었다. 그뿐 아니라 수많은 조각품과 조형물들이 성당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었다. 천장은 물론 벽이며 바닥까지 빈틈을 허용하지 않았다. 너무도 화려하고 정교하여 이것이 모두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특히 수만 수십만 개의 똑같은 조형물들을 일일이 손으로 만들어 붙였을 사람들, 거꾸로 매달려 천정화를 그리고 벽화를 그리고 그 위에 채색을 하고 금박을 입혔을 수많은 사람들을 상상해 보니 절로 숙연해졌다. 정작 그 성당에 모셔진 유명한 사람들은 아무도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 터이다. 

그들은 수만, 수십만의 빈틈 없는 조형물들을 일일이 손으로 새기고 붙였을 것이다

우리는 석굴암의 그 원만하고 자애롭기 그지없는 불상이며, 백제의 미소라 불리는 서산 마애삼존불상을 만든 사람들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이곳 몬레알레 대성당의 이 화려함을 만든 사람들의 이름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단순히 부역에 동원되어 어쩔 수 없이 평생 그 일을 하다가 죽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사람의 힘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그들은 아마 자신의 능력이나 한계를 넘어서는 신앙심 하나로 그 어마어마한 것들을 이루어냈을 것이다. 그 수많은 이름 없는 사람들의 손으로 가장 아름답고 이름난 것들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거기 빛나는 모든 것들은 그 이름 없는 이들이 영혼으로 빚어낸 빛일 것이었다.

서산 마애삼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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