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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샘 Dec 12. 2022

본조르노, 시칠리아-18.팔레르모에서 만난 '마씨'들

팔레르모에 가자마자 안토니오와 헤어진 우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걸어서 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 숙소가 있는 팔레르모 중앙역(Stazione Centrale)에서 중심가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팔레르모 중심가는 낮부터 밤늦게까지 사람들로 붐볐다. 아침을 먹고 느지막이 나갔는데,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시내를 한 바퀴 도는 투어가 있었다. 그 마차를 타고 좀 편하게 시티투어를 해볼까 하는 부모의 청을 거절하지는 않았지만, 딸내미의 표정은 영 마뜩잖아 보였다. 

팔레르모의 마차

거기 마부(馬夫)는 인상이 몹시 사나웠는데, 따로 영어를 잘 하는 ‘통역관’을 부리고 있었다. 마부가 부른 통역관과 협상이 시작되었다. 나는 뜬금없이 그 인상 사나운 마부가 전직 ‘마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마씨’는 우리가 ‘마피아’ 대신 부르기로 한 별명이었다.) 통역관은 영어로 ‘eight’이라고 발음하였다. 영어를 잘 못하는 나도 그 정도는 알아들을 만했다. 셋이서 8유로라니 얼마나 싼가? 딸내미는 거듭 ‘eight’이 맞느냐 물었고, 통역관은 맞다고 한다. 그런데 딸내미는 대뜸 선불을 내겠다고 자청했다. 의아해 하는 나에게, 이 사람들은 일단 태운 다음에 딴소리를 하기 때문에 미리 ‘쇼부’를 봐야 한다고 우리에게 귀띔을 했다. 그런데 통역관이 인상을 쓴다. 선불을 내면 좋은 거 아닌가? 8유로를 지불하려고 하자 통역관은 갑자기 ‘eighty’라고 말을 바꿨다. 딸내미가 ‘eight’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항의하자 자기는 처음부터 ‘eighty’라고 했다며 우겼다. 딸내미 말대로 무작정 마차에 올라탔더라면 낭패를 볼 뻔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통역관도 마부와 더불어 전직 마씨였을 거라고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협상은 깨졌다. 80유로나 내고 덜컹거리는 마차를 탈 일은 없었다. 

우리는 마차 대신 버스투어를 하기로 결정했다

늙어가는 부모의 체력을 걱정하기 시작한 딸내미는 대신 버스 투어를 제안했고, 우리는 기꺼이 동의했다. 하지만, 투어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또 20분 정도를 걸어야 했다. 어제 갔던 그 마시모 극장 앞에서 우리는 팔레르모 시내를 8자로 도는 시티투어 버스의 2층에 올라앉아 편하게 팔레르모 시가지를 구경했다. 그러나 역시 차를 타고 하는 투어는 감동이 없다. 내 발로 걸으면서 고생을 해야 본전을 뽑는다. 이게 또 하나의 여행의 법칙이다. 아무려나 시내를 한 바퀴 다 돌고 다시 반 바퀴를 더 돌아 우리 숙소가 있는 중앙역에 내렸다.

어제 저녁을 먹었던 숙소 옆 Al Sorriso라는 트라토리아에서 점심을 먹고 일찌감치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그렇게 열흘간의 시칠리아 여행이 막을 내리고 있었다. 

시칠리아에서의 마지막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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