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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샘 Dec 19. 2022

본조르노, 시칠리아-22.로마 하늘 아래서 살아남기

보르게세미술관을 끝으로 딸내미의 이탈리아 여행은 막을 내렸다. 미술관에 다녀와서 체력이 완전히 고갈된 아내는 몸져누워 버렸다. 아내는 현관 앞에서 딸을 배웅하며, ‘저 트렁크 속에 나를 넣어서 데리고 가면 안 될까?’ 뇌까렸고, 지하철역까지는 내가 딸을 배웅했다. 씩씩한 딸은 그 커다란 여행 가방을 번쩍 들고 계단을 내려갔다. 하지만 가면서도 내내 걱정이었다. 엄마가 병이 나면 어떡하나, 늙어가는 부모가 로마에서 나흘 동안 무사할 것인지,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제대로 탈 수 있을지, 혹시 로마 하늘 아래서 길을 잃고 국제미아로 떠돌지는 않을지... 

딸내미는 우리만 남겨두고 로마를 떠났다

그러나 이미 우리는 이틀 동안 대중교통 이용법을 확실히 익혀둔 데다, 세계 어디나 웬만한 곳은 한글로도 서비스가 되는 구글 지도를 지니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딸을 안심시켜 보냈다. 딸은 밤 비행기를 타고 밤새 대양과 대륙을 가로질러 또 밤이 되어야 한국에 도착할 것이었다.

다행히 아내는 베트남 음식점 ‘메콩’의 쌀국수와 볶음밥을 먹고는 기운을 차렸다. 체력이 지나치게 좋은 딸도 갔고, 우리는 특별히 예정된 프로그램도 없으니 그저 푹 자고 푹 쉬면 될 일이었다.

이튿날, 우리는 ‘용기를 내어’ 로마시내 자유여행을 시도했다. 점심 식사를 할 장소를 검색하다가 떼르미니 가는 길목에 한식집이 있는 것을 알아냈다. 이탈리아에 온 지 열흘이 훨씬 넘었으니 이제 서양 음식에 질릴 때도 되었다. 우리는 어제 딸내미에게 배운 대로 담뱃가게에 가서 버스표를 사고 정류장에서 버스를 탔다. 2시간 동안은 환승이 가능한 버스표였다. 한식집의 이름은 ‘맘마 꼬레아’였다. 그러니까 우리말로 하면 ‘한국 엄마 식당’이다. 

한식당 '맘마꼬레아'의 '시원한 생맥주 입하'

간판도 한글임은 물론이고, 출입문에 ‘시원한 생맥주 입하’라고 써 붙인 것까지 영락없는 한국 식당이었다. 점심시간이라서인지 손님은 만원이었다. 젊은 한국인 관광객뿐 아니라 중국 관광객과 서양인들도 제법 많았다. 아무려나 우리는 2주 만에 만나는 한식이 더없이 반가워 숟가락과 젓가락을 번갈아 구사하며 오랜만에 포식을 했다. 예전부터 분식집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던 나는 로마 한복판에 한국식 분식집을 하나 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떡볶이와 어묵을 주로 하고 김밥도 맛나게 말아서 팔면 대박이 날 것만 같았다.(이 아이디어도 단돈 500원에 팔 용의가 있다.) 

우리는 2주 만에 숟가락과 젓가락으로 한식을 포식했다

시칠리아의 궁벽한 산골과 바다까지 곳곳을 열흘이나 쑤시고 다녔는데, 세계 도시 로마에서 길을 잃을 일은 없었다. 배도 부르겠다, 산책 삼아 간 곳이 식당 근처에 있는 산타마리아마조레 성당이었다. 이 또한 로마의 대표적인 성당 가운데 하나였다. 규모도 어마어마했고, 천장과 창문, 기둥은 모두 화려하고도 고풍스러웠다. 그런데, 화려한 대리석 바닥에 식당에서나 쓸 법한 의자들을 깔아 놓은 것이 독특했다. 유럽은 가는 곳마다 성당이 대표적인 관광명소인데, 자세히 보면 저마다 특색이 있다.(그렇다고 '식당의자'가 그 성당의 특징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유럽 여행을 하면서, “또 성당 간다고? 성당이 다 거기서 거기지.”라고 말하면 안 된다. 

식당의자(?)가 깔려있는 성마조레성당 내부

성당 안팎을 느긋하게 구경했는데도 해는 중천에 있었다. 로마시내 관광에 자신이 붙은 우리는 7년 전에 패키지여행으로 갔던 트레비분수와 판테온신전을 보러가기로 했다. 앱을 검색해 보니 다행히 근처 정류장에 그곳으로 가는 버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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