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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샘 Dec 20. 2022

본조르노, 시칠리아-23.트레비분수의 추억

7년 만에 우리는 트레비분수를 다시 찾았다. 그땐 패키지여행이라 버스 타고 가이드의 깃발만 주시하며 따라다녔지만, 이번에는 75번 버스 타고 큰길에서 내려 구글 지도를 보며 직접 찾아갔다. 그런데 분수 주변은 그야말로 人山人海였다. 제대로 사진도 찍을 수 없을 만큼 사람이 미어터졌다. 코로나로 3년 가까이 갇혀 있다가 갑자기 풀리자 봇물 터지듯 터진 여행객들이었다. 게다가 주말이라 그 나라 사람들도 이 명소에 몰려들었을 것이 분명했다. 낭만이고 역사고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우리는 간신히 인증샷을 하나씩 남기고 얼른 분수 가를 벗어났다. 대신 나는 7년 전에 쓴 여행기에서 트레비분수를 호출했다.     

나는 7년 전의 트레비분수를 다시 호출했다

트레비 분수는 로마의 베네치아 광장 건너편, 옷가게들이 진열된 거리를 지나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왼쪽 골목으로 나가면 나타난다. 가이드는 그곳에 대해 안내하면서, 오드리헵번과 그레고리팩이 나왔던 영화 <로마의 휴일>에 등장하는 곳이라 했다. 그리고 분수 옆에 있는, 바로 오드리헵번이 먹었던 그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을 것이라 했다. 물론 나는 오래 전에 본 그 영화는 기억에 거의 없고, 오드리헵번의 아름다운 얼굴만 기억하고 있다. 

영화는 기억에 없고 오드리햅번의 아름다운 얼굴만 기억하고 있다

가이드는 덧붙였다. 트레비 분수에 가면 꼭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있단다. 분수를 등지고 서서 동전을 던지는 것이다. 던지는 방법은 오른손에 동전을 들고 왼쪽 어깨 너머로 분수 안에 넣으면 된다는 것이다. 동전을 하나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올 수 있고, 두개 던지면 지금 함께 하고 있는 사람과의 사랑이 이루어지며, 세 개 던지면 새로운 사랑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함께 간 팀 가운데 젊은 부부가 있었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밥도 함께 먹으며 친해진 신랑이 내게 물었다. “몇 개 던지실 거에요?” 곁에 있는 아내를 0.1초 동안 의식하며 난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두 개.” 그리고는 아내가 안 볼 때 얼른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였다. 우리는 음흉한 미소를 주고받았다.

가이드는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 주고는 자유 시간 10분을 주었다. 분수대 근처에서 사진도 찍고 동전도 던지라는 시간이었다. 나는 주머니에 있는 동전들을 만지작거렸다. 우리 돈 100원짜리, 1유로짜리, 50센트짜리가 있다. 가장 싼 건 물론 100원짜리다. 트레비 분수가 아무리 용하다 한들 동전의 국적과 가격까지 알아보진 못하겠지... 막 동전을 던지려는 순간, 하필 눈에 들어온 것은 깡통을 목에 걸고 상반신을 끌며 구걸을 하는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었다. 그는 일어설 수 없었고 손도 하나밖에 없었다. 아무리 보아도 구걸 외에는 먹고 살 길이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에게 허리를 굽히고 1유로짜리 동전을 그의 깡통에 가만히 넣었다. 그는 머리를 조아리며 무어라고 인사를 했다.

끝내 분수에 동전은 하나도 던지지 않았지만 나는 왠지 그런 확신이 들었다. 나는 로마에 다시 돌아올 것이고, 거기서 사랑을 이룰 것이며, 어쩌면 새로운 사랑을 만날 것이다.(그이가 오드리헵번일지 어찌 알겠는가?)     


7 years after.(영화에 보통 그렇게 나오지 않던가?)

나는 그 확신대로 로마에 다시 왔고, 가족들의 사랑을 확인했으며, 새로운 사랑은...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나의 로마행은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 것이라고 또 다시 믿는다.     

트레비분수 가는 여전히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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