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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샘 Dec 22. 2022

본조르노, 시칠리아-24.헤어질 결심

왜 그런 남자랑 결혼했어요? 

다른 남자와 헤어질 결심을 하려고요.     

영화 <헤어질 결심> 포스터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생양아x와 결혼한 서래(탕웨이)에게 해준(박해일)이 묻자 서래가 대답한 말이다.      

영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제 이탈리아와 헤어질 결심을 할 때가 다가온 것이다. 타오르미나 하늘에 처음 나왔던 초생달이 아그리젠토에서는 지중해의 잔물결에 윤슬을 만드는 반달이 되었다가 로마로 돌아올 즈음에는 둥근 보름달이 되어 있었다. 서울로 돌아가면 다시 이지러진 하현달이 되리라. 월만즉휴(月滿則虧)라. 이탈리아와 이별을 앞둔 지금 나는 달도 차면 기우는 것이 세상의 이치임을 새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굳이 결심할 것도 없이 이미 예정된 헤어짐이지만, 나는 왠지 내가 헤어질 결심을 한 것처럼 또 다시 조금은 비장해진 것이다.

대부분의 헤어짐이 그렇듯이 모든 낯선 것들이 익숙해질 때 즈음 우리는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한다. 타오르미나, 에트나, 시라쿠사, 라구사, 오르티지아, 마니아체, 아그리젠토, 팔레르모...이런 이름들이 입에 익숙해질 즈음이면 어김없이 이들과 헤어져야 했다. 이탈리아의 막돼먹은 도로와 운전 습관들도 익숙해져서 이제는 운전이 재미있어질 즈음 우리의 애차 안토니오와도 헤어졌다.

우리 인생도 그럴 것이다. 좀 살 만 하면, 인생 좀 알 만 하면 헤어져야 한다. 그러니 사람이든 사물이든 인생이든 언제든 헤어질 준비가 되어 있다면 굳이 아쉬울 것도, 아등바등할 일도 없을 것이다. 60갑자가 한 바퀴 돌아 환갑이 된 올해, 보름 동안의 이탈리아 여행에서 나는 너무 평범하고 뻔해서 맥 빠지는 진실 하나를 얻은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마침표가 아닌 쉼표로 글을 맺겠다는 호기를 부려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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