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동백꽃
선운사 간지럼나무 사이로
연등이 무수하다
부처님은 오시는데
동백꽃은 지는구나.
선운사에서 바닷길을 끼고 20분 거리에 고향집이 있습니다. 선운사는 어릴 때부터 하도 많이 가 본 곳이라 그냥 그렇지 좋은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고향 가는 길에 늘 지나치면서도 잘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선운사 좋다 하면 뭐가 좋으냐고 반문하곤 했지요. 나이 들어서야 선운사가 왜 좋은지 알아 갑니다. 어릴 적에 심상하게 보았던 것들마저 지금 돌아보면 모두 아름답고 좋습니다.
선운사는 동백이 유명하지요. 사실 동백으로 유명한 곳은 선운사 말고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심지어 그런 곳의 동백이 선운사 동백보다 더 화려하고 나무도 많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동백’ 하면 선운사가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그곳이 고향인 시인 서정주가 선운사 동백을 두고 읊은 시들과, 송창식의 노래, 그리고 또 최영미 시인의 ‘선운사에서’ 등의 시가 유명해지면서 굳어진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무려나 저 또한 선운사에 갈 때마다 시랍시고 끼적거린 것이 몇 편 됩니다만 어디에 내어놓기는 부끄러운 것들입니다.
위에 올린 시는 몇 년 전 부처님오신날에 선운사에 갔다가, 선운사 뒤꼍에 떨어지는 동백을 본 느낌을 끼적거린 것입니다. 선운사 대웅전 앞에는 고목이 된 배롱나무가 두 그루 있는데 우리는 어릴 적부터 그 나무를 ‘간지럼나무’라 불렀습니다. 배롱나무는 굵은 줄기를 손톱으로 조금만 긁어도 그 줄기에 붙은 모든 가지들이 움직이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지요. 마치 겨드랑이를 살짝만 건드려도 온몸을 뒤틀며 간지럼을 타는 간지럼쟁이처럼 말이지요. 올해는 윤달이 끼어서 부처님도 거의 한 달은 더 있어야 오시겠네요. 그때쯤이면 동백은 흔적도 없이 다 떨어졌을 겝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