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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샘 May 11. 2023

흰샘의 漢詩 이야기 - 패랭이꽃

石竹花(석죽화) 패랭이꽃 / 鄭襲明(정습명)    

  

世愛牧丹紅(세애목단홍) 세상에선 붉은 모란 어여삐 여겨

栽培滿院中(재배만원중) 집집마다 온 뜰에 가꾼다지만,

誰知荒草野(수지황초야) 뉘 알리오 우거진 풀숲 속에도

亦有好花叢(역유호화총) 아름다운 꽃 떨기 있다는 것을.

色透村塘月(색투촌당월) 시골 연못 달빛인양 투명한 꽃빛

香傳隴樹風(향전농수풍) 언덕 나무 바람결에 풍기는 향기

地偏公子少(지편공자소) 땅이 외져 귀한 분들 찾지 않으니

嬌態屬田翁(교태속전옹) 고운 모습 늙은 농부가 독차지했네.         

[번역: 흰샘]

  

패랭이꽃은 나의 '최애화'이다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꽃을 좋아하는 것에도 사람마다 취향이 있다. 나는 꽃이란 꽃은 아무리 작은 풀꽃이라도 다 좋지만 가장 좋아하는 것은 패랭이꽃이다. 내가 찍은 꽃 사진 가운데 가장 많은 것도 패랭이꽃이다. 무덤가에든 담장 밑에든 돌짝밭에든 사는 곳을 가리지 않고, 추위나 더위도 잘 참아내는 꽃이다. 무엇보다 그 청초한 빛깔과 은은한 향기는 화려한 빛깔과 진한 향기를 지닌 여느 꽃보다 아름답다. 그러한 꽃들이 양반들 쓰는 커다란 갓이라면, 이 꽃은 그야말로 소인들 쓰던 패랭이에 맞춤한다. 게다가 생김새도 패랭이와 너무도 유사하고 보면 패랭이꽃은 제 이름을 제대로 얻은 셈이다.

패랭이는 종류가 많기도 하다. 예전에는 산야에 아무렇게나 피는 야생화로 대표적인 종류가 서너 가지 정도였지만, 최근에는 정원용으로 개량하여 크기도, 모양도, 색깔도 다양한 것들이 수십 종도 넘는다. 하지만 너무 색깔이 진하거나 인조(人造) 같은 모습을 한 것들은 마음에 썩 들지 않는다. 그것은 ‘청초하고 은은한’이라고 내가 규정한 ‘패랭이 본색’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또한 나의 편견일 뿐이지 패랭이의 잘못은 아니다. 아무려나 나는 패랭이를 너무도 좋아하여 어딜 가든 마음에 드는 패랭이꽃을 보면 꼭 씨앗을 받아 온다.(씨앗이 맺히지 않았을 때는 씨앗 맺힐 즈음에 그곳에 다시 가기도 한다.) 그 씨앗들을 여름이나 가을에 옥상의 화분에 뿌려두면 머지않아 움이 트고 자라서 겨울을 나고, 이르면 이듬해 봄이나 늦어도 가을부터는 꽃을 볼 수 있다.

옥상텃밭에는 채소와 패랭이가 함께 자란다

오늘은 옥상에서 자란 채소를 수확하면서 패랭이꽃도 몇 송이를 꺾어와 빈 병에 꽂아 놓았다. 이 패랭이는 흰색 바탕에 은은한 보랏빛이 도는 것과, 작은 크기에 진한 분홍빛이 어여쁜 것들인데, 수년 전 가평에 있는 <아침고요수목원>에 갔다가 씨를 받아다 심은 아이들이다. 커다란 화분에 있는 패랭이는 10년도 넘게 나와 함께 사는 ‘원조 패랭이’다. 지난겨울에 묵은 뿌리와 줄기를 다 솎아내고 분갈이를 해 주었더니 올해는 이렇게 꽃다발처럼 방사형으로 피었다.      

패랭이의 원조_살아있는 꽃다발

아, 나의 ‘패랭이 편력기’를 떠벌이다 보니 정작 오늘의 주인공인 漢詩는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고 말았다. 패랭이꽃의 본래 이름이 석죽화(石竹花)이다. 아마도 대나무처럼 줄기가 마디로 되어 있어 붙은 이름일 것이다.

이 시를 지은 정습명은 고려 중기의 문신이다. 성품이 결곡하여 인종의 신임을 받았지만, 그 때문에 시기와 견제도 많이 받았다. 인종이 특별히 믿고 태자(의종)의 스승으로 삼았다. 늘 엄하고 바르게 가르치는 스승을 의종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인종이 죽고 의종이 즉위하자 주변에 아첨하는 신하들이 모여들었고, 정습명은 인종의 유언대로 의종에게 따끔한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결국 의종의 미움과 간신들의 계략으로 벼슬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임금이 마음을 돌리기를 기다렸지만, 오히려 임금의 마음이 완전히 떠난 것을 알고는 자결함으로 자신의 마음을 보였다. 의종이 후에 무신란을 겪게 되자 비로소 후회하고 정습명을 찾았으나 이미 세상에 없었다. 900년 전의 일이다.

정습명은 워낙 결곡한 성품 때문에 정치적으로 부침(浮沈)을 많이 겪었다. 여러 번 등용되고 여러 번 쫓겨났다. 아마 이 시는 그렇게 관직에서 물러나 초야에 있던 시절에 지은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패랭이꽃에 자신의 처지와 마음을 담은 셈이다. 붉고 화려한 모란만 좋아하는 세태는 듣기 좋은 말하는 간신만 좋아하는 임금을 은근히 풍자하는 말이다. 다음은 자신의 모습과 마음을 패랭이의 꾸밈없는 아름다움에 빗대었다. 정습명은 실제로 나처럼 패랭이꽃을 좋아했던 모양으로, 패랭이를 자세히 보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묘사이다. 시의 말미에서는 궁벽한 시골이라 찾아올 공자(公子)는 없으니 저 어여쁜 패랭이와 더불어, 패랭이처럼 살겠다는 다짐으로 마무리했다.      


<군더더기>

1. 정습명은 바로 충절의 표상인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선조이다. 정몽주의 결기가 어디서 왔겠는가? 피는 못 속이는 법이다.      

정습명과 정몽주를 함께 모신 포항 오천서원_네이버블로그에서

2. 옛 그림에 패랭이꽃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름에 돌[石]과 대나무[竹]가 함께 들어있어 장수(長壽)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신사임당의 초충도에 패랭이는 단골손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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