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흰샘 May 15. 2023

교단에 서서 교편을 잡으면 안 되는 이유

'스승의날'에 부쳐

교단(敎壇)과 교편(敎鞭)


교단과 교편은 교직을 상징하는 두 단어다. 그래서 ‘교단에 선다’나 ‘교편을 잡는다’ 하면 모두 교사가 되어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의미가 된다.

  국어사전에는 '교단'의 뜻이 “교실에서 교사가 강의할 때 올라서는 단.”이라 나온다. 심훈의 소설 <상록수>에 보면 “영신은 찬찬히 교단 위에 올라섰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교실마다 교단이 있었다. 주로 교실 칠판 아래 나무로 틀을 짠 교단이 있었는데, 교실 바닥보다 30cm 정도가 높았다. 그러니 키가 좀 작은 선생님도 그 위에 올라서면 모두가 올려다보아야 했다. 물론 예전에는 수업 내용의 거의 전부를 선생님의 필기에 의존했으니 높은 칠판의 꼭대기부터 필기를 하려면 높은 단이 필요하기도 했으리라. 하지만 또한 교단은 교사의 권위의 상징이기도 했다.

  내가 교사가 되어서는 여러 학교를 거쳤는데, 세 번째 학교까지는 교단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2천 년대 들어서면서 교단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 같다. 교단이 권위주의의 산물이며, 따라서 교단은 교사와 학생 사이에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이제 어느 학교에서도 교단을 찾아보기는 어렵게 되었다. 그러니 교사가 교단에 설 일도 없어졌다. ‘교단에 선다’는 말은 이제 그저 관용적이고 화석화된 말에 지나지 않는 표현이 되고 말았다.

김홍도_서당도

  교편은 글자 뜻대로 하자면 ‘가르치는 회초리’라는 말이다. 국어사전에 나온 교편의 뜻은 “교사가 수업이나 강의를 할 때 필요한 사항을 가리키기 위하여 사용하는 가느다란 막대기.”이다. 서양 속담에 “회초리를 아끼면 자식을 망친다.”는 말이 있다. 예로부터 사람을 가르치는 데 가장 유용한(?) 도구가 회초리였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말이다. 다시 심훈의 <상록수>다. “영신을 도와주는 청년들이 아이들을 끌어내리고, 교편을 들고 을러메건만...”

  나의 학창시절로 돌아가면 선생님께 매를 맞는 것은 일상적이고 당위적이기까지 했다. 그 누구도 선생님의 회초리에 위법성이나 비인간적, 비교육적이라는 토를 달지 않았다. 가끔 화풀이로 아이들을 때리거나 너무 심하게 체벌을 하는 ‘나쁜 선생들’도 있었지만, 그 또한 대개는 ‘교육적인 충정’으로 용납이 되었다. 그래서 그 시절에 교사의 폭력으로 인해 아이가 심각한 상해를 입는 정도가 아니라면 회초리로 아이들을 때렸다고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거나 징계를 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아이들은 대부분 학교에서 맞았다는 말을 부모에게 하지 않았다.(나의 경우에는 항상 그랬다.) 공연히 집에 가서 그런 말을 하면 학교에서 맞을 짓을 한 것에 대해 부모님께 더 혼나는 경우가 허다했으니 말이다. 매를 맞는 일은 군대에까지 이어졌다. 지금이야 군에서 구타가 거의 사라졌지만, 당시에는 학교와 더불어 구타가 일상화된 곳이 바로 군대였다.

  하지만 내가 맞은 매에 모두 당위성과 불가피성을 인정할 수는 없다. 중학교 때 체육선생님에게 당한 주먹질과 군에서 술 취한 어린 상급자에게 맞은 일은 두고두고 폭력의 상처로 남아있다.

  내가 교사가 되어서도 잘못한 학생을 벌하거나 잘 하라고 권고하는 데 회초리만큼 훌륭한 도구는 없었다. 한창 혈기왕성할 때는 대걸레 자루를 부러뜨릴 만큼 아이들을 때린 적도 있었다. (그때 나에게 맞은 아이들에게는 정말 미안하다.) 그래도 내가 당한 ‘폭력’을 거울로 삼아, 혹 내가 나중에 아이들을 때리게 되더라도 절대 아이들이 ‘폭력’으로 여기지는 않게 해야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그래서 내가 사용하는 ‘교편’에는 내가 지은 글귀가 늘 쓰여 있었다. 바로 ‘嚴而不暴, 愛而不放(엄이불포, 애이불방)’이 그것이다. “엄하되 포학하지 않으며, 사랑하되 방종하지 않는다.” 제법 멋지다고 자부하면서 한번씩 바라보며 ‘교편’의 의미를 되새기곤 했더랬다.

  때로 매는 ‘잘못’에 대한 ‘대가’, 즉 벌을 ‘해결’하는데도 매우 유용한 도구였다. 매를 몇 대 맞는 것으로 끝이었으니 말이다. ‘너는 맞을 짓을 했고, 그걸 맞았으니 이제 너의 죄는 이것으로 사함 받았다.’ 그런 안도가 때리는 자와 맞는 자의 암묵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길게 끌 것이 없었다. 어린 시절 나도 그랬거니와 내가 가르친 어린 아이들도 매가 무서워 매 맞을 짓을 하지 않으려 노력했던 시대였다.

  이제 학교에서 교사가 ‘교편’으로 아이들을 때리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심하면 가장 중한 벌칙인 해임이나 파면까지도 가능하다. 매보다도 무서운 법이다. 한때 일부 교사들이 매를 교육 아닌 용도로 ‘남용’하거나 ‘오용’했거니와, 이제는 일부 학부모와 아이들이 그것을 교사에 대한 협박과 금품갈취의 용도로 남용 혹은 오용한다고 한다.

  아무려나 ‘교편’은 더 이상 잡아서는 안 되는 위험한 물건이 되었으며, ‘교단’은 아예 올라설 기회조차 없게 되었다. 상전벽해의 변화는 오래도록 관용적으로 써 온 말(言)에도 예외가 없다. 이제 교사가 되는 것을 무엇으로 표현할까?

작가의 이전글 흰샘의 漢詩 이야기 - 패랭이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